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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미국 사람에 대해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믿으면 안 됩니다. 무턱대고 겁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가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지요. 내가 그를 가슴 깊이 경멸했음을 나는 이렇게 부모님 전상서에 털어놓았습니다. 

"푸트 공사는 희대의 겁쟁이 보스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저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서울을 떠나버렸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조선 정부에 고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겁니다. 세상에, 국왕과 백성들이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결과, 권력을 잡고 있는 보수파들은 지금 그가 일본에서  반역자들을 돕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조선 조정이 미국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그간 미국이 애써 구축해 놓은 조선과의 관계가 깡그리 허물어지고 만 것이지요. 

평화로울 땐 조선으로부터 선물과 영예를 받으며 무사안일로 소일하더니 정작 일을 해야 할 땐 회피하고 말았으니 본분을 내팽개친 배신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외교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해있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구출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만 맺어야겠군요, 아직 써야 할 다른 편지들이 많습니다, 자정이군요." - 1885년 2월 23일 자 편지에서


"저는 푸트공사가 일본으로 떠난 뒤 그로부터 한 마디 연락도 받은 바 없습니다. 어떤 지시도 없으며 공사관을 운영할 어떤 자금도 없습니다. 아직은 박봉으로 겨우 꾸려가고 있지만 몇 조금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트렌턴호와 오시피호로부터 의복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그러지 못했다면 큰 곤란을 겪었겠지요." -1885년 3월 12일 자 편지에서

1885년 3월경에 조선에는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조선에서 갑신정변 시 이루어진 청군에 의한 일본인 학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이 3월 3일 중국에 사절을 보냈다는 소식이 공포감을 조성한 것입니다. 서울에 청군은 900명 내지 1300명을 헤아렸고 일본군은 600명 있었습니다. 여기 중국인들은 일본과 전쟁이 일어나면 일병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거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할 거라는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습니다. 무지하고 겁많은 중국인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거지요. 중국인들의 공포감은 의지가지없는 조선인들에게 쾌속으로 전염되어 패닉에 가까운 상황을 자아냈답니다, 사람들은 피난을 떠났으며 도성 밖 지방 사람들은 식품을 팔러 성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돌발적이고도 극심한 병증에 시달렸지요. 그 상황을 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상황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바깥 정세를 정학히 알지 못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에는 지금 영국인 두 명, 독일인 한 명 그리고 미국인 세 명이 살고 있는데 지금은 별 사고 없지만 여기는 좁은 동네라 사소한 일이 태산으로 금방 변할 수 있지요.

저는 안면 신경통에다 위통까지 겹쳐 병상에 누웠습니다, 탈진한 거라고 의사(다행히 한 명이 있습니다)가 말하더군요. 정확한 병인은 알지 못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나았으며 다시 일할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부모님께 뭐라고 써야 할지 난감합니다. 저의 위치와 처해있는 상황은 너무 기이합니다. 지난 인생 역정에서 결코 겪어보지 못한 그런 것입니다. (중략) 제가 가장 기괴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는 푸트 공사가 줄행랑을 친 일입니다. 만일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여겨 떠났다면 한마디 말도 없이 저를 여기 남겨 둔 것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는 저의 안전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자신의 재산관리를 저에게 떠 맡겨 놓고 있습니다. 공사관이 그의 개인 소유물이거든요. 아마 그의 전 재산일 겁니다(미국 정부에서 예산 배정이 되지 않아 푸트가 개인 돈으로 산 것임- 역자). 앞으로 어느 날 그는 그 문제로 큰 곤경에 처할지 모르며 저도 골치 아파질지 모릅니다." -1885년 3월 12일 자 편지


가련한 민영익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건강을 회복한 그는 서울 밖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던데 그 까닭은 그가 피신을 가면 그러잖아도 겁을 먹고 있는 일반 백성이 식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위인이었습니다. 그는 떠날 채비를 하면서 시종들을 무장시켰습니다.

그런데 시종 중 한 명이 오발탄을 쏘아 청나라 군인의 오른쪽 폐를 관통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연히 큰 소동이 일어났지요. 그 와중에 민영익은 도망치고 말았지요. 나는 일찍이 그가 겁쟁이임을 간파했는데 역시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엔 그런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 포크 #민영익#푸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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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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