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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에 강황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카레를 사러 장에 갔다. 아버지께서는 카레를 즐기지 않으시지만 엄마는 좋아하시니 카레와 돼지고기, 당근, 양파를 장바구니에 넉넉히 담았다. 카레가루도 50인분으로 1kg을 샀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생각나실 때마다 드시라고 해야겠다.

큰아이도 카레를 즐긴단 생각에 아침을 차렸다. 사과도 한 개 썰어 넣고 고기도 넉넉히 넣었더니 달콤하고도 든든한 맛이 난다. 상품성이 없는 작은 감자를 한 상자 주셨던 게 생각나 상자를 열어보니 싹이 일제히 팔 뻗듯이 나 있었다.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나는 살아 있다'며 자신을 주장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거늘 나는 왜 감자가 매끈하기만을 기대했을까? 일일이 싹을 자르고 껍질을 벗겨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몇 번 굴렸다. 양파도 당뇨에 효능이 있다니 자주자주 드시면 좋겠다면서 혼잣말을 했다.

햅쌀로 새로 지은 말랑한 밥에 카레를 뜨끈하게 부어서 살살 비벼 먹었다.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식구들이 싹싹 먹었다.
 
자이푸르 사막에서 모래가 들어간 카레를 먹던 날
 자이푸르 사막에서 모래가 들어간 카레를 먹던 날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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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20루피 짜리 탈리를 먹던 생각이 난다. 카레에 병아리콩을 넣은 반찬과 갈릭난, 밥을 곁들여 팔던 서민 음식. 집에서 해먹던 맛이 아니라고 처음에는 뜨악했지만 점점 빨려들어가듯 즐겨먹던 음식. 탄두리 치킨도 시키고 라시도 곁들여서 실컷 먹어도 4인 가족 한 끼 식사가 몇천 원에 불과했던 빠하르간즈, 타지마할, 바라나시. 

낙타사파리를 신청하고 자이푸르 사막에서 모래가 들어간 카레를 먹던 기억이 난다. 양탄자를 깔아놓고 우리를 앉힌 뒤,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돌아가면서 춤추고, 남자들은 둥둥 손으로 작은 북을 치던 캄캄한 밤. 우리들도 일어나 모닥불 사이에서 원무를 추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코끝을 간질이는 매콤한 카레가 선사하는 십구 년 전 추억이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아, 언제든 꺼내서 맛볼 수 있는 여행의 시간들. 당뇨를 앓으시는 부모님과 양배추, 견과류, 잡곡, 토마토, 강황, 양파를 자주 먹어야겠다. 언제든 꺼내서 이 시절을 맛보게.

태그:#인도, #낙타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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