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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27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과를 굳이 꼽자면, 한·중·일 3국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 정도일 것입니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의 제8차 회의 이후 무려 4년 반 만에 3국 정상회의가 재개된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박한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 나라가 돌아가면서 매년 개최하는 회의가 4년 반 동안이나 열리지 못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2020년부터 3년여 동안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던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들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국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니 정상회의를 차일피일 미룰 좋은 핑곗거리가 된 셈입니다.

코로나 사태와 대결적 국제정세로 4년 반 만에 개최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다음 발언자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통역기를 착용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다음 발언자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통역기를 착용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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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질적인 회담 중단 이유는 국제정세의 큰 변화입니다. 코로나 사태 와중이라도 서로 의지만 있으면 화상회의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것도 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미-중 대립이 격화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 편에 가세해 중국을 압박·견제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 2월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과 중-러 사이의 진영 대립이 더욱 심해졌고, 이것이 동북아 정세에도 그대로 투영됐습니다. 2022년 11월의 프놈펜 한·미·일 정상 선언과 2023년 8월의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 성명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입니다.

이번에 서울의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기본적으로 이같은 구도, 즉 '한-일과 중의 2대 1 대결 구도' 속에서 열렸고, 내용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회담이 이뤄지게 된 데는 3국 각자의 동상이몽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3국의 속셈... 한국-경제, 일본-전략적 호혜 관계, 중국-포위망 탈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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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윤석열 정권은 집권 이래 '미국·일본 추종 - 중국 배척'의 외교·안보 정책을 선명하게 취해왔으나 이런 정책에 대한 반동으로 가장 무역 의존도가 큰 중국과 척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중국 수출이 격감하고 경제가 나빠졌습니다.

윤 정권으로서는 일정 정도 중국과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것이 바로 윤 대통령이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에서 했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 발언이라고 봅니다.

양국의 회담 내용 발표에서 이 표현은 중국 쪽 발표에만 나오고 한국 쪽 발표에는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중국이 윤 대통령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듯한 발언에 가장 크게 반발했고, 한국 정부도 중국 발표를 부인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이 한국과 차관급 외교·국방 전략대화를 하기로 합의한 것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크다는 점은, 한국과 사정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중국과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일본은 한국처럼 미국 추종으로만 달리지 않고 나름대로 중국과 '전략적 호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달라도 양국의 공동이익에 관해서는 협력한다는 뜻의 '전략적 호혜 관계'에 기초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한 데 이어 이번에도 그런 차원에서 리창 총리와 첫 회담에 임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가장 시급한 사안이 후쿠시마 원전 폐수 방류를 계기로 전면 중단된 대중 수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리창 총리로부터 명확한 답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3국 정상회담의 재개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중국으로서도 마냥 한국·일본과 만남을 거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안보 면에서는 미국과 한국·일본 세 나라가 스크럼을 짜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을 흐트러뜨릴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한국과 차관급 외교·안보 대화를 하기로 한 것에서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중국의 경제 침체를 해소하고 첨단 기술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일본과 협력할 요인이 있었습니다.

'한국·일본 대 중국'의 2대 1 구도 못 넘은 공동성명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발언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발언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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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3국 정상회의 뒤 나온 공동성명은 세 나라의 각기 다른 속셈과 '한·일 대 중국의 대결 구도'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인적교류, 기후변화 대응, 경제·통상, 보건·고령화, 과학기술·디지털 전화, 재난·안전 6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 세 나라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실현을 위한 협상을 가속하기로 합의한 것이 눈에 띄는데, 가속화가 곧 실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6개 합의 과제 중에서 FTA 추진 가속화와 함께 시장 개방성 유지와 공급망 협력 강화를 적시한 경제·통상 분야가 가장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큰 한계를 드러낸 지점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분야입니다. 한국이 가장 역점을 둔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끝내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공동성명 가장 마지막에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라고 적는 데 그쳤습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 각각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를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2019년 제8차 회의에서 "우리는(3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라고 한 내용에서 아주 많이 후퇴한 것입니다. 한국·일본과 중국 사이에 한반도 정세 인식에서 서로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이런 정세에 대한 시각 차는 3국 정상회의 직전에 나온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예고를 둘러싸고 더욱 극적으로 표출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을 적시해 강하게 비난했지만, 리창 총리는 "각자가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라고만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라인 야후 사태에서 '친일 본색' 재차 드러낸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마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마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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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은 5월 26일 기시다 총리와 양자 회담에서도 친일적인 태도를 되풀이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라인 야후' 사태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대응입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한국에서 가장 첨예한 관심사로 등장한 일본 총무성의 라인 야후에 대한 '자본 관계 검토' 행정지도에 대해 "네이버 주식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한다. 외교관계와는 별개의 문제다"라고 먼저 얘기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참 어리둥절했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해야 할 말을 윤 대통령이 대신해줬다는, 한국이 먼저 나서 일본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인상을 받은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또 윤 대통령은 최근 한일 사이에 불거진 사도 광산 유네스코 유산 등록 문제,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교과서 검정 통과 문제, 우키시마호 폭침 사망자 명단 발견 문제 등도 전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속도 없는지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도록 준비하자'라는 등 상대가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회담장에 '한·중·일 정상회의'라고 써오던 회담장 걸개 막도 '한·일·중 정상회의'로 처음으로 바꿔 달았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일·중·한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알아서 기니 일본이 마음 놓고 한국을 쉽게 깔보고 행동하는 겁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한일 사이에 여러 가지 난제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윤 대통령의 태도를 간파했기 때문인지 윤 대통령과 회담보다는 리창 총리와 회담에 진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지금 한국은 외교에서도 지도자를 잘못 뽑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게 아니라, 말로 주고 하나도 받지 못하는 윤 대통령의 '친일 굽신 외교'에 속이 터집니다.

태그:#한중일정상회의, #윤석열, #기시다, #리창, #한반도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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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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