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영화축제의 막이 올랐다.

4일 저녁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영화축제의 막이 올랐다. ⓒ 최윤석


거센 빗발도 '영화의 바다'로 떠나는 항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후 4시께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행사를 앞두고 더욱 거세졌으나 출항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졌다.

4일 저녁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간의 축제의 막을 올렸다. '아시아 영상시장의 허브'를 꿈꾸며 '경계를 넘어서(Beyond Frame)'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모두 64개국에서 초청된 275편. '관객과의 대화' 등 다채로운 행사도 마련된다.

오후 4시 30분,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앞 도로가 차량들로 북적였다. 행사장 밖 레드카펫 주변에는 우산을 받치거나 신문으로 고깔을 만들어 쓴 300여 명의 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행사장 안에선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입구에서 두 줄로 늘어선 자원봉사자들은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는 인사를 연방 연습했다.

오후 5시 30분이 지나며 빈 객석이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먼저 일본 단체관광객들의 모습이 띄었다. 대부분 중년 부인의 모습이었다. 무대의 대형스크린과 좌우 화면에 지난해 PIFF의 주요 행사장면이 비쳤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졌다. "비가 오더라도 비옷을 나눠드리고 개막식을 진행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를 피하기 위해 신문으로 고깔을 만들어 쓴 여학생들이 레드카펫 주위에서 스타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신문으로 고깔을 만들어 쓴 여학생들이 레드카펫 주위에서 스타들을 기다리고 있다. ⓒ 최윤석


비 오는 밤에도 별들은 빛나고

오후 6시 30분이 조금 지났을까. 드디어 수영만에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이날 사회를 맡은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오아시스>의 배우 문소리씨 부부가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과 개막작 <집결호>의 펑 샤오강 감독 일행이 등장하기까지 1시간이 넘게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됐다.

스타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옆 자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은 서로 이름과 출연작들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정일우를 보곤 잠시 갸우뚱 하더니 "하이기꾸" "하이기꾸"하며 좋아했다. <마이 파더>의 다니엘 헤니가 등장했을 때는 객석에서 가장 큰 큰 탄성이 터졌다. 뒷자리의 한 여학생은 "정말 잘 생겼다"는 환호와 함께 "다니엘 헤니, 비 맞으면 안 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스타들의 레드카펫 행진

스타들의 레드카펫 행진 ⓒ 최윤석


레드카펫에 올라선 국내 영화인들은 대부분 남녀가 함께였다. 특히 심성일·엄앵란 부부와 전노민·김보연 부부가 나란히 등장해 부부애를 과시했고, 김주혁·김지수 커플도 다정스런 모습으로 둘 사이를 다시 한번 '공인'받았다. 영화 속 인연인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의 이동건 엄정화, <식객>의 김강우 이하나 등도 함께 레드카펫을 걸었다.

여배우들의 아슬아슬한 의상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소연은 가슴이 거의 드러나는 '19금'에 가까운 드레스로 카메라 플래시의 집중세례를 받았다. 자신 역시 조금 부담스러운지 레드카펫을 걸을 때는 손으로 가슴 부위를 살짝 가리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

감독으로는 <천년학>의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평생 영화동지'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했다. 또 이번 영화제에서 뉴커런시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같은 심사위원인 중국 여배우 위 난과, <사랑>의 곽경택 감독은 주연배우 주진모 박시연 등과 동행했다.

연예행사의 '단골손님'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도 특유의 복장과 함께 등장해 많은 환호를 받았다.

또 조배숙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그리고 다소 뜬금없이(?)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등 정치인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등장하자 객석에서 "다 나오네, 다 나와"라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해외에서도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크리스찬 문주 감독 등 여러 영화인이 참석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참석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을 때는 객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로 거장의 방문을 환영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오히려 좋은데요"

저녁 7시 50분, 예정에 비해 20분 늦게 장준환·문소리 부부의 사회로 개막 본행사가 시작됐다. 거센 빗발을 의식한 듯 문소리씨는 "촉촉히 비도 오고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오히려 좋은데요"라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장준환 감독도 "아름다운 색시와 사회를 보게 돼 너무 좋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미처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비옷을 얻지 못한 관객들은 뒷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우산도 쓰지 못한 채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안내를 맞은 젊은 여성 자원봉사자들 역시 비로 몸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한 일본 관광객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조금이라도 비를 막으라는 듯 신문을 건네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무대에 오른 허남식 PIFF 조직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영화의 허브로 12년의 연륜이 쌓여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 세계적인 영화제가 됐다"며 "이제 지역과 장르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고 개막선언을 했다. 그에 맞춰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객석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개막작 <집결호>의 감독과 주연배우들

개막작 <집결호>의 감독과 주연배우들 ⓒ 최윤석


축하공연에선 전제덕씨의 하모니카 소리가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울려 퍼졌다. 엔니오 모리코네 앞에서 그가 작곡한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와 <시네마천국>의 '사랑의 테마'가 연주되는 뜻깊은 풍경이었다. 장준환 감독이 "작년에 해운대 바다를 거닐던 생각이 난다"고 하자, 문소리씨가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을 만큼 감미로운 음악"이라고 화답했다.

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이 이란의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을 비롯해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들을 무대 위로 불러 소개했다. 이어 개막작 <집결호>의 펑 샤오강 감독과 제작자, 주연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했다.

문소리씨의 "영화로 인해 나날이 행복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는 말로 행사 끝을 알렸다. 다시 불꽃들이 수영만 하늘을 수놓으며 '영화의 바다'로의 출항을 축하했다. 저녁 8시 10분이었다. 빗줄기는 어느새 가늘어져 있었다. 관객들은 개막작 상영을 기다렸고, 스타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개막작 <집결호>는 어떤 영화?
중국 최초 블록버스터 전쟁영화... 펑 샤오강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 모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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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집결호(Assembly)>. 중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로 중국 상업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948년 중국 회해ㆍ방부 지역에서 벌어진 인민해방군과 국민당군 간의 치열한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9연대 소속 구지디 중대장은 47명의 병사들과 함께 고지에서 국민당군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집결호'(퇴각 나팔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는 절대 퇴각해선 안 된다는 명령과 함께. 결국 그만 살아남고 부하 병사들은 모두 전사한다. 그는 포탄 소리에 귀가 먹어 자신이 '집결호'를 듣지 못하는 바람에 부하를 모두 잃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 이후 '실종' 처리된 부하의 명예회복을 위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된다.

<집결호>는 '중국판 <태극기 휘날리며>'로도 알려진 영화로 실제 <태극기 휘날리며>의 특수효과팀이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4일 개막식에 앞서 해운데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출연배우들과 함께 참석한 펑 샤오강 감독도 "<집결호>를 만들 때 <태극기 휘날리며>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펑 샤오강 감독은 "강제규 감독에게 '전쟁영화를 찍으려는 데 할리우드 스태프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만큼 제작비 안된다'고 솔직히 말했더니 강 감독이 '고민하지 말라'며 한국 스태프들을 소개해줬다"며 강제규 감독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펑 샤오강 감독은 또 "특수효과, 특수분장 등 한국인 스태프 25명이 중국에서도 가장 춥다는 동북부 지방에서의 4개월 촬영 동안 아무 불만 없이 따라줬기에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전쟁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그분들을 보면서 아시아에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인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집결호>에 참여했던 한국 스태프들은 현재 오우삼 감독의 신작 <적벽> 촬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집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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