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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4세로, 지난 100년간 그의 집안이 힘들게 지켜온 한국 국적을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일본으로 바꾼, 추성훈 선수. 그가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고 난 후 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선에서 그는 그동안 맘고생이 심했던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추성훈을 보면서 예전에 만났던 또 다른 추성훈을 기억해 냈다. 

내가 나오미를 만난 것은 2005년 10월이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호주의 작은 마을에서였다. 당시 나는 언니와 함께 우프(Wwoof : 농가에서 하루 4시간 정도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제도)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간 우프 집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재일교포인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교포 3세로 그의 조부모가 전쟁당시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의 부모님과 그의 형제들은 일본에서 나고 자라 사실 한국말을 전혀 못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21살 때는 어머니마저 잃어, 사실상 한국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은 '직미'라며 어설프게 발음했다. 자신의 이름이 적혀진 수첩을 보여주었는데, 사실은 진미(眞美)였다. 예전에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한자로 밖에 몰랐는데 전에 만난 한국인에게 물어봐서 한글로도 적어 두었던 것이다. 그는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에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좋아해서 자신의 이메일 주소도 'jikmi'를 넣어 사용하고 있었다. 또, 그는 엄마가 아빠의 여동생을 '꼼'이라고 불렀다며 도대체 '꼼'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고모'가 그렇게 변형 된 것 같다고 했다.

나오미는 많은 재일교포가 그러하듯 여러 모순적인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말하며 살고 있고 직업도 일본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복지사다. 또 동시에 국적은 한국이며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말을 못하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가 호주로 오기 위한 워킹홀리데이비자와 여권발급을 위해 일본 관공서를 가니 직원이 한국 대사관으로 가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다시 한국 대사관으로 갔지만, 자신이 한국말을 못해 한국 대사관 직원한테도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단다. 어쨌든 나오미는 호주 비자 를 신청하기 위해 한국에 꼭 와야 했고, 때문에 몇 번 서울을 방문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 그가 원했던 것은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단다. 하지만 뉴질랜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에 최소 3개월 이상 있었다는 거주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단다. 왜냐면 나오미는 한국에 친척이 한 명도 없었고 3개월 동안 지낼 돈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일본 영화 < GO >는 재일조선인인 10대 남자 주인공이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는 과정 속에서 겪는 정체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 일본 영화 < GO > 재일 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일본 영화 < GO >는 재일조선인인 10대 남자 주인공이 재일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는 과정 속에서 겪는 정체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 스타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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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그럼 왜 아직도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일본으로 귀화했다면 위와 같은 귀찮은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됐지 않은가. 특히 재일교포들은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는 이상 투표권도 없기 때문에, 나 같았으면 아마 벌써 일본으로 귀화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으로 귀화하면 사는데 더 편해지지 않겠나. 일부러 큰 돈 들여 더 살기 좋은 국가로 이민도 가는 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국적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자신은 일본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에 나와서는 더욱더 일본인이라고 봐야 할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한국말도 못하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자신은 일본으로 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하지만, 자신처럼 한국 국적을 소지한 재일교포 사촌 언니는 이번에 일본으로 귀화하려고 고민 중이란다. 그 이유는 미국 영주권이 있는 남편을 따라 하와이로 가서 살려고 하는데 한국 국적으로는 미국 영주권을 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일본 국적으로는 훨씬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단다.

나오미가 자신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으로 귀화할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할 때, 목소리가 커지며 행동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그를 포함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힘들게 살 때, 그들을 지탱해준 한마디가,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네들이 그저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았다면 겪지 않았을 힘든 상황과 모순들이 더욱더 그들을 강한 한국인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재일교포에게 한국이라는 국적은 마치 종교와도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평범하게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 그들을 지탱해 주지 않았을까. 마치 나치의 핍박 때문에 더 똘똘 뭉치게 된 유태인들처럼 말이다. 만약 일본이 재일교포들에게 좋은 대우를 하고 사회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까지 한국 국적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반대로 추성훈 선수가 한국 유도계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다른 한국 선수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면 자신의 신념대로 한국 국적을 지켰을 것이다. 그의 귀화를 놓고 종교 심판을 하듯 그에게 한국인이냐 아니면 일본인이냐고 따져 묻는 글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많이 올라온다.

추성훈 선수 본인도 그 사이에서 난감해 하는 것 같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자신의 국적기인 일장기와 한국 선수의 은메달 수상으로 걸린 태극기 중 어느 하나를 보지 못하고 그 중간을 봤다니 말이다. 내가 만약 추성훈 선수였더라면 일장기와 태극기 두 개 다 번갈아 보고 나는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가 한국 국적을 지켰던 것이 죄가 아니듯이 일본 국적으로 바꾼 것도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추성훈, #재일교포, #일본국적, #귀화, #한국계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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