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1000여 명의 대의원

 

.. 전국에서 모여든 1000여 명의 대의원들의 발언은 참으로 싱싱하고 유모어가 풍부한 것이었다 .. <미혼의 당신에게>(다나까 미찌꼬/김희은 옮김, 백산서당, 1983) 107쪽

 

‘발언(發言)’은 ‘말’로 다듬습니다. ‘유모어(humor)’는 ‘우스개’나 ‘익살’로 다듬고요. ‘풍부(豊富)한’은 ‘넘치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 1000여 명의 대의원들의 발언은

 │

 │→ 1000여 대의원들이 한 말은

 │→ 대의원 1000 사람 남짓이 한 말은

 └ …

 

“대의원들의 발언”이 아니라 “대의원들이 한 말”입니다. “대의원들 말”이나 “대의원들 이야기”로 손봐도 어울립니다. ‘명의’를 아예 덜고 글을 적어도 좋아요. “대의원 천 사람”처럼 적어도 괜찮고요.

 

ㄴ. 2만 8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 보스턴 외곽에 있는 이 공장 지대에는 약 2만 8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프랭키 오스키/이효순 옮김, 이지북, 2003) 65쪽

 

‘변두리’라는 우리 말이 있으니 ‘외곽(外郭)’ 같은 말은 안 써도 됩니다. ‘공장 지대(地帶)’는 ‘공장 둘레’나 ‘공장 마을’로 다듬습니다. ‘약(約)’은 ‘얼추’나 ‘거의’로 다듬어 줍니다.

 

 ┌ 약 2만 8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

 │→ 인구가 2만 8천 명쯤 된다

 │→ 2만 8천 명쯤 살고 있다

 └ …

 

어느 곳에서 사는 사람 숫자가 ‘인구(人口)’입니다. 그러니 “인구가 살고 있다”처럼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구’라는 말을 쓴 까닭은 앞에 나온 ‘2만 8천 명’이란 숫자를 뒤에서 받으려고 했기 때문 같군요.

 

번역하신 분이 우리 말을 제대로 몰라서 이렇게 적었을까요, 이렇게 적는 일이 알맞거나 올바른 우리 말이라고 생각하거나 느끼기에 이렇게 적었을까요. 학교에서 이처럼 배웠고 출판사에서도 다른 말이 없었으니 이렇게 적었을까요.

 

ㄷ. 20∼30명의 노예

 

.. 카누마다 20∼30명의 노예가 실려 있다 .. <아프리카의 역사>(존 아일리프/강인황,이한규 옮김, 이산, 2002) 241쪽

 

‘20∼30’으로 적는 분은 많으나, ‘스물∼서른’으로 적는 분은 보기 힘듭니다. ‘20∼30’으로 적은 말은 어떻게 읽을까요. 거의 ‘이십∼삼십’으로 읽지 않을까요?

 

 ┌ 카누마다 20∼30명의 노예가 실려 있다

 │

 │→ 카누마다 스물에서 서른씩 노예가 실려 있다

 │→ 카누에는 노예가 스물에서 서른씩 실려 있다

 └ …

 

학문하는 분들이 쓴 글을 보면, 우리 말로는 학문을 하기 어렵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올바르거나 깨끗한 말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듯한 느낌입니다. 쉬운 말은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쓸 만하고, 교과서에 쓰는 말부터 논문에 쓰는 말까지는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로만 써야 한다는 느낌 또한 듭니다.

 

어쩌면, 자기가 파고드는 학문에 담긴 줄거리만 잘 알리면 될 뿐, 자기가 파고드는 학문 줄거리를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하는 말이나 글은 그냥저냥 써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모르겠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명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