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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 아내와 남도의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쌍봉사를 찾았다.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산을 감돌지만 제법 깊은 산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길, 그 길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사자산 쌍봉사는 약 1200년 전의 역사를 간직한 절집이다.

산세에 맞게 아담하고 작은 절집, 그러나 쌍봉사는 특별한 절집이다. 우선 그곳에는 우리나라 보물 163호였던 목탑형식의 대웅전이 있기 때문이다. 1984년 신도의 부주의로 화재가 나는 바람에 건물은 잃었으나 그 안에 모신 목조삼존불은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업어서 구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에 새로 복원한 대웅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해탈문 자리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 날렵하면서 아름답다.
▲ 쌍봉사 대웅전 해탈문 자리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 날렵하면서 아름답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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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로 내세의 기원을 담은 아미타여래불이 계시는 극락전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염원을 담은 지장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그 내력을 새기는 일도 전생의 인연에 따른 길일 것이다.

그러나 쌍봉사에는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구름 위의 집이 있다. 새롭게 단장한 서편의 대숲 길을 따라 오르면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비신을 잃은 거북이가 이수를 지고 앉아 지켜주는 철감선사탑이 이승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름 위의 집이다.

균형잡힌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 철감선사탑 전경 균형잡힌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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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면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강물에 스친 달빛처럼 찰나의 만남으로 끝난 긴 이별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부도에 대한 설명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부도에 대한 자세히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 자료에 올라 있는 설명을 내 것인양 늘어놓을 염치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라고 했던 유명인들의 찬사를 일일이 소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팔각형의 하대석은 그야말로 구름의 바다이다. 구름속에 용이 자세히 보이지 않아 유감이다. 지대석은 도굴범들에 의해 파손되어 시멘트로 만들었다고 한다.
▲ 탑의 하대석 팔각형의 하대석은 그야말로 구름의 바다이다. 구름속에 용이 자세히 보이지 않아 유감이다. 지대석은 도굴범들에 의해 파손되어 시멘트로 만들었다고 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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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를 살았던 철감선사의 행적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 그가 언제 낳고 언제 죽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떻게 중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밝히는 것도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중생들이 지어준 아름다운 집을 차지한 것만으로 선사의 깊은 수행과 중생을 위한 자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천 년 후에도 많은 중생들이 기억하는 집, 그러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집을 갖기란 쉬운 일이던가!

국보라는 사실은 단순히 숫자 표시에 불과하다. 땅 위에 지대석을 받치고, 용이 지키는 구름으로 기초를 하고, 그 위에 부도를 지키는 사자들을 8면에 새기고 다시 그 위에 연화대를 꾸미고, 그 위에 중대석을 얹어 사천왕상과 비천상을 새기고 다시 상대석에 머리와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가릉빈가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집이 세상에 몇이나 될 것인가!

가릉빈가는 불경속의 상상의 새로  머리와 상체는 사람이요 하체는 새라고 한다. 조각은 볼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연화세상위의 중대석 가릉빈가는 불경속의 상상의 새로 머리와 상체는 사람이요 하체는 새라고 한다. 조각은 볼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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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도 조각을 새기고 지붕의 막새기와에도 나무에 그림을 그리듯 연꽃을 새겨 넣은 장인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집이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림을 그린들 이보다 더할까. 인간의 솜씨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요하다.
▲ 막새기와의 연꽃 그림을 그린들 이보다 더할까. 인간의 솜씨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요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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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세월의 풍상에 마모되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부조도 있고, 무지한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부분도 있지만 지금도 천년 전의 정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집을 보며 선사의 영혼을 위해 그토록 아름다운 집을 지어준 사람들의 뜻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용이 노니는 구름 위에 지어진 철감선사탑을 나는 구름 위의 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구름 위의 집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팔각형의 상대석에 양각된 부조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이다.
▲ 사천왕과 비천상 팔각형의 상대석에 양각된 부조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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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자기를 낮추고 중생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나누어주는 부처님의 제자는 적고, 돈으로 천국을 약속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세속의 이해에 따라 편을 가르는 종교인들도 많은 세상이다. 극락정토나 천당에 가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목자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뿐인가. 백성을 위해 자기를 던지는 정치인보다 백성의 고통은 안중에 없는 패거리들의 이익만 쫓는 정치인들이 무리를 이루어 앞자리를 다투는 세상이다. 땅 위의 정의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겠다는 법관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제 배를 채우는 기업인들이 주름잡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 세상을 보면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문 채 숨만 쉬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내 모습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영혼을 위해 기원을 담은 집을 짓기란 쉬운 일이던가. 또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이룩한 아름다운 집에서 영혼이 머물기를 바라기란 또 쉬운 일이던가.

그러나 나는 비록 그런 집에 들 수 없을지라도 자비롭고 정의로우며 깨끗한 영혼을 가진 그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구름위의 집을 짓고 싶다.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 있음을 아는 인간, 욕심과 집착을 버린 인간들이 많다면 눈을 뜨고도  극락정토를 볼 수 있으련만……!
쌍봉사 해탈문은 지금 보수중이다.

비신을 잃어버린 거북은 이수만 업고 있다. 우리것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 철감선사비 비신을 잃어버린 거북은 이수만 업고 있다. 우리것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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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쌍봉사는 자주 가는 절이다. 갈때마다 그곳의 부도를 보면서 과연 인간의 솜씨인지를 의심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집의 주인인 철감선사는 누구인가?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그렇게 정성을 쏟은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인과 종교인들도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이글은 한겨레 필통에도 옮긴다.



태그:#쌍봉사, #철감선사탑, #구름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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