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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하루 중 가장 기다렸던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과 반찬 다퉈가며 도시락을 까먹기도 하고, 급식을 먹으며 옆 학교는 국에서 벌레가 나왔네, 우리 학교는 철 수세미가 나왔네 하는 식의 괴담을 나누기도 했다. 4교시 수업만 되면 시계를 수없이 쳐다보며 기다렸던 그 점심 시간을, 대학생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대학생들에겐 공식적인 점심시간도, 도시락과 급식도 없지만 급식용 판에 아침 백반을 담아 파는 학생식당은 있다. 오늘도 캠퍼스 내의 학생식당에는 구름처럼 인파가 몰린다. 야자 시간 친구들과 함께 비벼먹던 비빔밥의 재미는 없겠지만 대학생들의 학생식당, 맛은 있을까? 음식이 제 값은 할까?

밥 어디서 먹을까? 당근 학생식당이지!

상록샘에서 돈까스를 먹고 있는 학생.
 상록샘에서 돈까스를 먹고 있는 학생.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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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 재학 중인 박태윤(21)씨는 학생식당을 자주 이용한다. 학교 주변에서 살기 때문에 하루 한 끼 이상을 학생식당을 통해 해결한다. 심지어 토요일에도 점심을 먹으러 온다. 이렇게 자주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싸니까.

학생식당 밥이 먹을 만 했던 건 딱 한 달. 그 이후엔 "국물, 돈가스 모두 다 아무 맛이 안 느껴진다"고. 박씨는 "그냥 살기 위해 먹는다. 조미료 엄청 넣을 것 같다"고 투덜대며 한 끼를 때우러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박씨가 주로 이용하는 학생식당은 학생회관에 위치한 '고를샘'(고르는 재미가 있다!)이다. 원래 학생회관엔 맛나샘(맛있으니까!)과 부를샘(배가 부를 걸?)이라는 학생식당도 있었으나 지난 9월부터 리모델링 중이다.

뭐, 애초에 고를샘, 맛나샘, 부를샘은 그 메뉴나 가격, 맛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던 곳은 아니었다. 고를샘 내부엔 가마, 인터쉐프, 뽀글뽀글이라는 한식 메뉴 담당 코너와 피자, 스파게티, 그라탕 등을 판매하는 곳이 들어서 있다. 가격은 대략 2500원~3500원 선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금지혜(23)씨가 이곳에서 점심을 위해 선택한 메뉴는 깐쇼새우 오므라이스였다. 어라, 어디선가 본듯한 이 느낌은? 몇 주 전에 내가 먹었던 새우튀김 오므라이스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밥, 똑같은 계란 지단, 똑같은 소스에 곁들이는 메뉴들만 달라진다. 금씨는 학생식당 이용 이유로 "가까우니까 온다"며 그 이외의 이유는 딱히 없다는 반응.

학교 정문 밖으로만 나가면 갖가지 음식점이 가득한 번화가 신촌이 버티고 있지만, 촌각을 다투는 공강 시간엔 바로 그 코 앞으로 나가는 일도 쉽진 않다. 무조건 가깝고, 빨리 나오고 그나마 싼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학생식당을 찾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금씨는 금씨는 30분 만에 점심을 해결하고 남은 공강 시간 동안 시험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간단히 때울 수 있는 분식은 학생식당 최고의 메뉴

점심시간, 학생식당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주문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 끝에 주문에 성공하면 그 때부턴 매의 눈으로 빈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점심시간, 학생식당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주문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 끝에 주문에 성공하면 그 때부턴 매의 눈으로 빈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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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무개(23)씨의 화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의로 빼곡히 차 있다. 딱 한 시간, 12시부터 1시까지가 아침을 먹지 못해 주린 배를 달래고, 오후 강의를 위한 에너지를 비축할 유일한 기회다. 유씨는 수업을 듣는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학생식당인 청경관으로 향했다.

고를샘에서 한 학생이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를 먹고 있다. '깐쇼새우 오므라이스'나, '새우튀김 오므라이스'나, '오므라이스' 부분은 다 똑같다.
 고를샘에서 한 학생이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를 먹고 있다. '깐쇼새우 오므라이스'나, '새우튀김 오므라이스'나, '오므라이스' 부분은 다 똑같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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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0분, 수업이 끝나자 마자 식당으로 향했기 때문에 당연히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줄이 건물 입구까지 늘어져 있다. 유씨는 "일찍 왔는데 당연히 자리가 있을 줄 알았다"라며 한숨을 내쉬곤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었다.

청경관은 연대 내의 학생식당 중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워낙 공간이 협소한 데다, 위치가 좋아서 주로 이용하는 문과대, 사회과학대, 신학대 학생뿐만 아니라 상대, 경영대 학생들까지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맛나샘과 부를샘의 리모델링이 시작되자 청경관엔 손님이 더 늘었다.

자리 양보에 대한 안내문이 나붙고, '야외테라스'라 명명된 건물 앞 공간에 플라스틱 테이블도 여러 개 놓였지만 모든 사람이 편히 자리를 잡기엔 역부족이다. 점심시간에 이 곳에 끼니를 해결하러 들른 유정은(23)씨는 "자리가 부족하다. 야외테라스랍시고 해놓은 것 보단 실내 공간을 늘려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런 불편함에도 학생들은 청경관을 많이 찾는다. 학생회관에 위치해, 한식 판매에 주력하는 '전형적' 학생식당인 고를샘에 비해 메뉴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청경관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김밥, 떡볶이, 순대 등의 분식과 그라탕, 스파게티, 피자빵, 샌드위치 등이 있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분식류는 늘 바쁜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싸기만 한 학생식당? 5900원 스파게티도 있는 걸

청경관의 대표 메뉴인 그라탕. 4500원짜리 그라탕과 3200원짜리 그라탕은 크기부터가 다르다.
 청경관의 대표 메뉴인 그라탕. 4500원짜리 그라탕과 3200원짜리 그라탕은 크기부터가 다르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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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의 여유라도 있는 학생들에겐 리조또 위에 치즈를 얹고 오븐에 구워 낸 그라탕이 인기가 좋다. 사학과의 정재윤(23)씨는 "가격이 비싸서 자주 먹지는 않지만 오늘은 갑자기 먹고 싶어서 골랐다. 4500원이라는 가격이 조금 부적절하긴 한 거 같으나, 맛있긴 한 거 같다"고 말했다.

대학교 학생식당에 4500원 하는 메뉴가 있다니! 놀라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청경관의 최고가 메뉴는 이 그라탕이 아니란 것. 해물 스파게티와 쇠고기 토마토 스파게티가 5900원의 가격으로 최고가 메뉴 자리를 당당히 꿰찼다.

신학계열의 나호림(22)씨는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기본 메뉴 빼고는 다 비싸다. 다른 데 스파게티 파는 데가 어딨냐"고 묻기도. 최경훈(24)씨는 "밥 값을 500원만 더 내리면 학생회관만 가겠다. 싸게 많이 주는 걸로 바꿨으면" 하는 소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금 가격이 세더라도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상경대학 지하에 위치한 상록샘을 찾았다. 이 곳은 분식이 아닌 식사는 3100원, 3400원 두 종류가 있다.

경제학을 전공중인 이나단(23)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상록샘을 찾는다. 이씨는 돈까스를 먹으며 "하루에 두 번 먹기엔 좀 질린다 뿐, 맛은 있다. 학교 밖에 나가도 뭐 비슷하고, 학교가 그나마 저렴하고 시간도 절약되어 좋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밥 먹고 싶을 땐? 교직원 식당

교직원 식당의 출입구에는 손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다.
 교직원 식당의 출입구에는 손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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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에 성이 안 찬다면 교직원 식당을 살짝 넘볼 수도 있다. 교직원 식당의 가격대는 4500~6000대로, 학교 내의 물가 수준은 이미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걸출한 메뉴가 요일마다 새롭게 제공되고 맛과 질이 꽤 좋다.

비빔밥을 비비던 하아무개(23)씨는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교직원 식당에 온다. 여기가 더 맛있다"고 말했다. 사학과의 정혜원(22)씨는 "평소엔 자주 오지 않지만, 오늘은 약속이라서. 후배랑 밥을 먹을 땐 맛있는 거 먹는다. 아니 맛있다기 보단 제대로 된 밥이란 뜻"이라며 교직원 식당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일주일에 수 차례, 한 학기엔 수십 끼를 학생 식당에서 먹는다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들이 학생 식당에서 해결하는 끼니는 얼마나 많을까? 아마 원하든 원치 않든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단골집 중의 한 곳이 학생식당일 것이다.

바쁘다고, 돈이 없다고 "이 가격에 뭘 더 바라나"라며 대충 때우고 넘어가기보단 좀 더 신경 써서 맛있게 끼니를 챙겨보자.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태그:#학생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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