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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진언에서 깨달음을 얻다

부석사 안내도
 부석사 안내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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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가는 길에도 봄은 왔다. 일주문을 지나 좌우로 펼쳐진 은행나무는 아직 움을 틔울 생각을 안 하지만, 주변 복숭아밭에는 연분홍 꽃이 피기 시작했다. 길은 부석사 당간지주를 지나 천왕문으로 이어진다. 천왕문을 지나 산쪽으로 올라가면 대석단을 만나게 된다. 이 대석단은 신라시대 처음 쌓은 것으로, 승과 속을 구별해 주는 차단물이다. 높이가 4.3m, 길이가 75m나 된다.

석단으로 오르기 전 속계의 물을 빼기 위해 화장실에 잠시 들른다. 그곳에 보니 화장실에 들어가며 외우는 다섯 가지 진언(入厠伍呪)이 적혀 있다. 진언을 외우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몸이 건강해 진단다. 그 중 첫번째 진언과 네번째 진언이 인상적이다.

부석사 화장실: 오른쪽 위로 진언이 보인다.
 부석사 화장실: 오른쪽 위로 진언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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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더러움 씻어내듯 번뇌도 벗자.
이 마음 맑아지니 평화로움뿐
한 티끌 더러움도 없는 세상이
이생을 살아가는 한 가지 소원.

스님들의 공간에 펼쳐진 꽃들의 향연

부석사의 봄
 부석사의 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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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통해 석단 위로 오르니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산수유는 완전히 끝물이고, 목련, 매화, 벚꽃은 한창이다. 이들 꽃이 산사에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꽃들은 아우성치지 않고, 그냥 미소 짓는 듯하다. 부처님이 보여주신 꽃에 가섭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듯이. 석단 위는 승(僧)의 공간으로 승려들만이 거주할 수 있다. 왼쪽에 종무소로 쓰이는 요사채가 있고, 가운데는 석탑 2기가 동서로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이다. 이 쌍탑 사이로 난 길을 위쪽으로 오르면 다시 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을 올라야 2층 누각인 범종루를 지나 불(佛)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 범종루는 스님(僧)과 부처님(佛)이 만나는 공간이다.

안양문
 안양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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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 밑으로 해 다시 계단을 오르면 범종루 2층 마당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범종루에는 법고, 운판, 목어만 있고, 범종은 없다. 그렇다면 부석사 범종루는 중국식의 고루(鼓樓)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범종각은 서쪽으로 치우진 곳에 있으며, 이곳에는 1980년에 만든 범종이 있다. 범종루에서 안양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취현암과 음향각이 있다. 이들 건물은 현재 스님들의 거처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지은 장경각도 보인다.

이들 건물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역시 2층 누각 형태로 되어 있는 안양문에 이른다. 안양문은 말 그대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2층의 안양루 석축 가운데로 나 있는 계단을 통해 우리는 안양문을 지난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 앞으로 석등과 무량수전이 나타난다. 안양문을 통해 우리는 아미타불이 지배하는 극락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무량수전

무량수전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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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전각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셨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린다. 무량수는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량수전은 고려 불교 전각의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최근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나, 건물의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무량수전은 고려 현종 7년(1016) 중창된 것으로 나와 있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건물 내부 높은 기둥 안의 직사각형 공간에 불단을 마련했다. 내부 공간 기둥 밖으로는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어 보인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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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 형식으로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무량수전의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계로 매우 안정감 있고 건실하게 짜여졌다. 법당 안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고 한다.

무량수전 내부 바닥에는 원래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선묘낭자 영정
 선묘낭자 영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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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주변에는 이제야 신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조사당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길은 등산로처럼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다. 그렇지만 이 절을 창건한 의상스님을 안 만나고 갈 수는 없다. 조사당 안에는 의상대사의 조소상이 있다. 그 유명한 조사당 벽화는 떼어내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조사당 밖 선비화도 잎이 파랗게 돋았다.

이곳 조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선묘각이 있다. 선묘낭자 설화에 근거해 후대에 만든 전각으로 규모도 작고 초라하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의미 있는 전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에는 1975년에 제작된 선묘낭자의 영정이 걸려 있다. 낭자의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하다. 의상대사의 조소상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부석사를 내려오면서 갖게 된 봄꽃들에 대한 생각

부석사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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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봉황산을 올려다보고 부석사를 내려다본다. 산에는 아직 봄이 덜 왔다. 그러나 부석사 쪽으로는 하얀 산벚꽃이 밝고 화려하다. 벚꽃은 요사채 뒤쪽으로 이어진다. 내려오면서 보니 개나리와 진달래꽃도 보인다. 금년에는 봄이 늦게 와서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그렇지만 아직 길 주변 사과나무 과수원에는 꽃의 기척이 없다. 사과꽃과 배꽃은 2주쯤 지나야 필 모양이다. 5월이 되면 부석사에 철쭉과 모란 그리고 수국이 피어날 것이다. 모란은 동양에서 꽃중의 왕으로 여겨져 왔고, 절집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조선 후기의 가객 김수장은 <해동가요>에서 모란을 꽃중의 왕이라 노래했고, 배꽃을 시 짓기 좋아하는 시인이라 불렀다.

부석사의 곷
 부석사의 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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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요 행화(杏花) 소인(小人)이라
국화(菊花)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梅花) 한사(寒士)로다
박꽃은 노인(老人)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少年)이라
규화(葵花)는 무당(巫堂)이요 해당화(海棠花)는 창녀(娼女)이로다
이 중에 이화(梨花) 시객(詩客)이요 홍도(紅桃) 벽도(碧桃) 삼색도(三色桃)는 풍류랑(風流郞)인가 하노라.

여기서 봄꽃인 매화를 차가운 선비로 노래한 이유가 뭘까? 차가운 선비는 냉정한 선비가 아니라, 추위에도 절개를 지키는 고고한 선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사는 대단히 긍정적인 표현이다. 사실 한시에서는 매화가 가장 사랑받는 꽃중의  꽃이다. 그리고 복숭아꽃을 풍류를 아는 젊은이에 비유한 것도 특이하다. 그것은 아마 무릉도원의 전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꽃은 그 색깔과 향기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처럼 시와 노래로도 즐거움을 준다.

덧붙이는 글 | 봄꽃을 찾아 목조건축이 유명한 산사를 여행했다. 4월에는 영주 부석사와 안동 봉정사를 찾았고, 5월에는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를 찾았다. 이들 절에서 만난 봄꽃들의 얘기를 네번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태그:#영주 부석사, #봄꽃 , #무량수전, #매화, #화장실 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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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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