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을 연재하는 최병성 목사(cbs5012@hanmail.net)는 10만인클럽 회원이자 시민기자입니다. [편집자말] |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 강원도 삼척항. 일본에서 실어온 폐기물 하역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시커먼 가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일본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폐기물인 석탄재입니다.
삼척항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을 잡았지만 편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밤중에라도 하역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 밤새 항구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이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서울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달려왔고 일본 쓰레기를 실어온 배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잠이 올 리 있겠습니까?
동이 트자 석탄재가 배에서 항구 바닥으로 옮겨졌습니다. 석탄재는 다시 덤프트럭에 담겨 시멘트공장으로 운반되었습니다. 삼척항 바닥에는 석탄재가 넘쳐났고, 석탄재 침출수가 바다로 유입됐습니다. 2008년, 제 두 눈으로 본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는 일본 고철 수입이 증가했다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지난 기사(관련기사 :
방사능 나오는 아파트... 이런 '비밀' 숨겨져 있다)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일본의 화력발전소 쓰레기인 석탄재를 수입하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본 환경성은 매년 홈페이지에 폐기물 처리 현황을 발표합니다. 이 중 석탄재 처리 현황을 보면 수출 대상국 명단엔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만 끝없이 이어집니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여 시멘트를 만드는 나라는 유일하게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석탄재, 이렇게 위험합니다10월 말, 추수가 한창인 서산 천수만 들녘에 다녀왔습니다. 농경지 사이에서 한창 도로 건설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붉은 흙으로 덮고 있는 까만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석탄재입니다.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석탄재를 도로건설 기층재로 사용한 것입니다.
도로를 건설하며 쌓은 석탄재가 수로와 만나면서 시커먼 침출수가 생겼고, 이게 주변 농경지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농경지로 흘러드는 석탄재는 주변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석탄재의 위험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2002년 11월 18일, 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화력발전소의 석탄재가 인근의 표고버섯 재배 농가까지 날아가 생산량을 감소시켰으니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표고버섯은 ph4.5~6.5 약산성에서 잘 자라는데, 석탄재 먼지의 ph는 8.1 약알칼리로서 표고버섯 성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겨레>는 석탄재가 물을 만날 때 얼마나 위험한지 <석탄재로 지은 건축물 '우리 곁으로'>(2002년 5월 1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높은 재활용성에도 불구하고 석탄재 안에는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비소(Cs)나 셀레니움(Se) 등 중금속과 다환방향족화합물이 들어 있어 석탄재 재활용 제품에 대해서도 환경안전성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경남 김해시 인제대학교 환경시스템공학부 황인영 교수는 '석탄재 적치장 근처 하천 등에서 수서 생물의 번식률 저하, 어린 개체의 기형 발생, 사망률 증가, 성장률 저하 등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석탄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고 말했다."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석탄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해외논문도 찾아냈습니다. 엘 라이힌더스(L. Reijnders)가 쓴 <Disposal, uses and treatments of combustion ashes : a review>입니다. 이 보고서는 해외 170여 개가 넘는 보고서들을 인용하여 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데, 특히 석탄재 사용의 위험에 대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석탄재는 상당한 양의 우라늄(U), 토륨(Th), 라돈(Ra)과 같은 방사성 원소들을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재들이 실내 노출로 이어지는 건축자재로 사용될 때 문제는 심각하다. (중략) 석탄재는 동물들의 기형아 출생을 유발하며, 식물성 동물성 플랑크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략) 석탄재를 물속에 넣을 때, 비소(As), 붕소(Be), 베릴륨(Be), 크롬(Cr), 망간(Mn), 몰리브덴(Mo), 납(Pb), 안티몬(Sb), 셀렌(Se), 바나듐(V)과 아연(Zn) 등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중략) 폴란드에선 석탄재에서 아연, 텅스텐, 베릴륨과 카드늄이 고도로 침출되는 사례가 있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석탄재에서 게르마늄을 추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중략) 폴란드에서 석탄재는 지금까지 알루미늄 생산을 위해 사용되었다."국내에도 넘쳐나는 석탄재를 왜 수입할까요?국내 화력발전소들도 쌓이는 석탄재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매립장이 포화상태라 석탄재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화력발전소가 많습니다. 보령화력발전소가 천수만 농경지 도로 건설에 석탄재를 보낸 것도 석탄재 처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국내 화력발전소들에도 석탄재가 가득 쌓여 있는데, 시멘트공장들은 일본에서 석탄재를 수입해오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일본에서 쓰레기 처리비로 많은 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석탄재를 수입하는 시멘트공장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요?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2013년 지난 한 해 동안 쌍용시멘트가 61만톤, 동양시멘트가 41만톤, 한라시멘트가 11만톤, 한일시멘트가 17만톤의 일본 석탄재를 수입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 공장들이 일본에서 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받은 돈이 쌍용 296억 원, 동양시멘트 85억 원 등 총 443억 원에 이릅니다. 국내 시멘트공장들은 시멘트를 만들어 팔기도 전에 일본에서 받는 쓰레기 처리비용만으로 엄청나게 큰 돈을 번 것이지요.
30일 천하로 끝난 '일본 쓰레기 독립'그러나 한때 일본 쓰레기로부터 독립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2006년부터 쓰레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해온 덕에 2007년 11월, 환경부가 쓰레기 시멘트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 민관협의회 회의에서 외국에서는 시멘트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유럽을 견학가자 했더니, 유럽은 비용이 많이 든다며 환경부가 일본으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환경성을 방문한 2008년 1월 31일, 일본 쓰레기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시멘트공장들이 석탄재, 철슬래그, 폐타이어 등의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는 현장 사진들이었지요. 일본 쓰레기를 수입하며 하역 과정에서 바다를 오염시키고, 수입한 일본 폐기물을 공장 뒷산에 불법 야적해 시퍼런 침출수 오염을 일으킨 사진들을 커다란 도화지에 종류별로 붙였습니다. 일본 쓰레기가 수입되는 현장을 찍으려고 동해항과 삼척항 등에서 날밤을 세우고, 시멘트공장에 몰래 들어가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일본 환경청 직원들과 사전에 준비된 질문과 설명을 나눈 뒤, 제가 일어나 일본 쓰레기 수입 현장 사진을 펼쳐 보이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질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낸 석탄재, 철 슬래그, 폐타이어 등의 쓰레기들이 이렇게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 더 이상 일본 쓰레기를 한국으로 보내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그리고 일본 환경청 직원들에게 다가가 준비해 간 사진자료를 선물이라며 넘겨주었습니다. 시퍼런 침출수가 줄줄 흐르는 사진을 본 일본 환경청 직원들이 충격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선물로 준 사진은 지금도 일본 환경청에 잘 보관되어 있겠지요.
이런 충격 요법을 쓴 덕에 일본 폐기물의 한국 수입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얻어낸 일본 쓰레기로부터의 독립은 겨우 한 달로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환경부에서 일본 환경청으로 일본 쓰레기를 보내주십사 하는 구걸 공문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가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일본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환경부는 민간 기업들의 이익 때문에 수입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환경부가 민간 기업의 쓰레기 수입을 위해 일본 환경청에 쓰레기 구걸 공문을 보낸 것일까요?
정답은 딱 하나입니다. 일본 쓰레기 수입은 큰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쌍용시멘트와 동양시멘트는 매물로 나와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영이 어려운 시멘트공장들에게 일본으로 부터 받는 쓰레기 처리비는 엄청난 돈입니다. 또 일본의 입장에선, 대한민국으로 석탄재를 보내지 않으면 화력발전소 가동을 멈춰야하는 중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유일한 석탄재 쓰레기 처리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 쓰레기 수입 구걸 공문을 환경부의 과장 혼자서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힘들게 중단시킨 일본 쓰레기 수입을 누가 왜 다시 수입하도록 지시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쓰레기 시멘트 해결방법, 아주 간단합니다혹시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일본 쓰레기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재팬'은 아닐까요? 양회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3년 시멘트 출고량에 따른 시멘트 회사별 국내 점유율은 쌍용시멘트(20%), 한일시멘트(13.2%), 동양시멘트(12.5%), 한라시멘트(12.3%) 등 총 58%에 이릅니다.
일본에서 쓰레기를 수입해오는 4개 회사의 시멘트 점유율이 58%니, 국내 아파트 중 58%는 일본 쓰레기로 건설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일본 고철의 슬래그가 사용된 시멘트까지 따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대부분 일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생산되는 모든 물건엔 원산지와 성분 표시를 하도록 법으로 의무화 돼 있습니다. 그런데 시멘트는 원산지뿐만 아니라 성분표시도 없는 특혜를 누려왔습니다. 그 덕에 외국 쓰레기까지 수입하며 발암물질과 유해 중금속이 포함된 시멘트를 만들어 왔던 것이지요.
쓰레기 시멘트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시멘트 제품에 원산지와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최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새천년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일본에서 수입되는 석탄재에 세슘 등의 방사능 위험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환경부는 이인영 의원 지적에 대해 석탄재에 든 방사능이 미량이라 안전하다며 일본 쓰레기 석탄재 수입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석탄재는 결코 안전한 건축 재료가 아닙니다.
국내 석탄재는 하늘 높이 쌓여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일본에서 쓰레기 처리비를 더 준다는 이유로 마구 수입해오는 국내 시멘트업계의 황당한 행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몇 개 시멘트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언제까지 '일본 석탄재 쓰레기의 유일한 처리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써야하는 것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일본 석탄재 수입에 관해 숨겨진 나머지 진실은 추후 밝혀드리겠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지난 주 대한민국 최초로 실시한 쓰레기 시멘트에 대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국민들은 쓰레기시멘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안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곧 이어질 다음 기사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