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2~13일 서울시 성북구로 꿈틀버스 6호가 달려갔습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탑승객들은 성북구서 아파트 전기요금을 낮춰 경비원 임금을 높인 석관두산아파트, 주민참여가 활발한 새날도서관, 마을이 함께하는 정릉시장, 이웃을 만나는 장수마을, 대안교육공간 민들레, 주민이 만드는 방송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 등을 차례로 누비며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잊고 지내던 사람을, 외면했던 이웃을 만났습니다. 공동체 복원의 희망씨앗이 싹 트고 있었습니다. [편집자말] |
좁은 골목이 시끄럽다. 평상에 잔치국수와 전, 수육을 푸짐하게 차렸다. 바닥에 돗자리 몇 개 깔고 아무렇게나 섞여 앉아 음식을 나눠먹는다. 누구는 이웃집 계단에 걸터앉아, 또 누구는 서서 면발을 집어 삼킨다. 모양새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표정은 진수성찬을 마주한 이들 못지않다. 어느 시골 마을의 풍경이 아니다. 지난 7월,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열린 골목잔치 모습이다. 12월 13일, 꿈틀버스 6호차가 장수마을로 향했다.
장수마을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동네다. 한양 도성 성곽 아래, 근현대 저층 주거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엔 이웃 주민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상이 있고, 자전거는 튼튼한 철 자물쇠 대신 노끈으로 묶어 놓는다. 이웃 간의 교류와 신뢰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정착민의 마을, 재개발에 맞서 대안적 삶을 고민하다 "전쟁 직후인 60년대 피난민과 도시 빈민들이 주거지로 삼은 곳이에요. 성곽을 끼고 있어서 유서 깊어 보이지만, 사실은 정착민들의 마을입니다." 꿈틀버스단을 맞이한 장수마을 마을기업 '동네목수' 부대표 배정학(48)씨는 장수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웃의 정이 살아있는 동네, 장수마을도 십여 년 전만 해도 재개발 예정 지역이었단다.
장수마을은 2004년 6월 삼선4 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재개발을 시작하면 오래도록 이곳에 터를 잡고 있던 건물과 사람이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뿐만 아니다. 사람이 떠나면, 수십 년간 쌓아온 관계도 무너진다.
실제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된 후 장수마을엔 빈집이 늘었다. 마을 환경도 나빠졌다. 주민들은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공간을 가꾸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수마을 재개발정비 계획은 문화재 보호 등의 이유로 사업성이 결여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몇몇 주민은 마을을 떠났지만 2008년, 남아있던 주민과 마을활동가, 녹색사회연구소 등의 시민단체가 모여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재개발이 원주민들을 외부로 나가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이왕이면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의 공동체를 깨지 않고 대안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의 모형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지요."주민자치모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부녀회를 비롯해 마을의 자생적인 조직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니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조직이 무너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엔 마을 실태조사를 벌였다. '마을주민 5명이 모이면 골목이 바뀐다'는 모토로 시작한 일이다. 어르신들에게 '마을의 불편한 점을 찾고 이웃 5명의 동의를 받아오면, 문제점을 고쳐주겠다'고 제안했다.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이 수첩 종이에 지장을 찍어 동의서를 받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구청과 협의해 마을 환경을 정비했다. 가파른 골목길에 난간이 생긴 것도, 낡은 계단을 정비한 것도 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뭔가 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모임을 반장이나 통장 체계가 아니라 '골목통신원' 체계로 만들었어요. 마을의 6개 골목에 한분씩, 매주 골목 소식을 전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지요."'언젠가 곧 떠날 마을'이라는 무관심이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주민들은 공간을 가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수마을 주민의 상당수는 65세 이상 노인. 노후한 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직접 수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부업체에 맡기기엔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컸다. 2011년, 미장 기술이 있는 마을 주민 몇 명을 고용해 '동네 목수'라는 이름의 마을 기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개발 될 날만 기다리며 '빨리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주민들이 빈집이 마을 카페나 공방으로 리모델링되는 모습을 보면서 재개발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게 된 거지요."또 동네 목수는 단순히 집수리를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행정과 주민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행정이 개입 하지 않았는데도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해온 장수마을은 2013년 4월, 주민들의 동의 50% 이상을 얻어 재개발 예정구역 해제했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벽화도, 상업 시설도 NO! 이제 장수마을은 단순히 '살만한 마을'을 넘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마을'을 꿈꾸고 있다. 마을에 그려진 벽화도 지우고 있다. 주민들의 소중한 주거공간이 외부인이 마음대로 들어와 사진을 찍는 관광지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2년에 장수마을에서 역사문화보전 연구용역을 실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을이 주목한 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입니다.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떠나게 되는 현상이지요. 그래서 장수마을 같은 경우엔, 저렴하고 안정된 주거 공간을 연구의 기본 목표로 잡았습니다."장수마을은 지구단위계획 시안에 '장수마을 주민 협의회 동의 없이는 장수마을 내에서 사적인 목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배씨는 "이것이 실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을에 성곽 등의 문화재가 있는 만큼 인근에서 장사를 하려는 시도가 많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마을 공동체가 깨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저희가 마을 활동하면서 느끼는 건, 주거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장수마을 주민협의회는 주거 안정을 위한 마을 기금을 모으고 있다. 배씨는 "마을 사랑방에 가스비를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으고 있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장수마을의 많은 가구는 국가에 토지 사용료 명목의 변상금을 내고 있다. 한 가구당 변상금이 2억 원 넘게 체납된 경우도 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세상을 뜨고, 자손들이 상속 포기한다면 그 집들이 공매로 넘어간다. 배씨는 "공매 현실화 됐을 때, 마을의 빈집이 외부에 넘어가지 않고 주민협의회가 자산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공매가) 앞으로 마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겠다"며 옅은 걱정을 내비쳤지만,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장수마을의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최근에 장수마을엔 예술가 서너 명이 이사왔다. 배씨는 "이들이 단순히 마을에 들어와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거점 공간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인근 대학교 미대 학생들과 함께하는 마을 박물관 전시도 추진했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그려나가는 이 동네, 마을 이름처럼 '장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