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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동 동네 식당 수라간의 고기.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어우러진, 삼겹살, 목살, 항정살.
▲ 서홍동 동네 식당 수라간의 고기.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어우러진, 삼겹살, 목살, 항정살.
ⓒ 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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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벌어진 '비계 삼겹살' 논란을 보며 제주도민으로서 걱정도 되고, 안타까웠다. 비싼 흑돼지 집에 가서 저런 고기 먹고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좀 더 현명한 여행을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돼지고기는 어디나, 어떤 고기나 맛있다. 동네 정육점에서 사다 구워 먹어도, 동네 맛집에 가서 백돼지 삼겹살이나, 숯불갈비나 근고기, 뭐로 먹어도 맛있다. 그래서 제주도민은 굳이 흑돼지 안 찾는다. 나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면 흑돼지 고깃집에서 먹는다.

여행객이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면, 무엇보다 관광객 상대하는 유명 맛집에는 가지 말기 바란다. 요란하게 네이버에 광고하고, 인스타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집들보다 동네 맛집을 찾아가면 제대로 먹을 수 있다. 비싼 광고료 내는 집들은 광고비 뽑아야 하니 값도 비싸고, 고기 품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동네의 도민 맛집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제주에 이주하기 전, 우리는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래에 우리가 살 땅을 찾았다. 한 동네에 도착하면 가게나 마트에 가서 '동네 맛집'을 물어본다. 고깃집도 마트 주인이 추천하는 집에 간다. 한 번은 펜션에 머물면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 샀다.

"상추도 천 원어치 주세요."

순간 아저씨가 버럭 했다.

"뭔 상추를 사! 저 옆에 있는 텃밭에 가서 먹을 만큼 뽑아가!"

우리는 웃으면서 딱 먹을 만큼 상추를 뽑았다. 그게 제주 사람 인심이다. 무뚝뚝한 듯하면서, 인정스러운 사람들이다.

관광 불편에 대한 도 자체의 자정 노력도 있다. 제주도는 7월 15일 '제주 관광 불편 신고센터'를 개소했다. 여행객들은 전용 전화(1533-0082)나 제주국제공항, 연안여객터미널, 국제여객터미널, 성산항 관광안내소를 통해 불편 사항을 신고할 수 있다.

또 제주도 자치경찰단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오는 7월 1일부터 19일까지 먹거리 안전을 위한 특별단속을 벌였다. 백돼지를 흑돼지로 속여 파는 행위나, 국산과 외국산을 혼합해 국내산으로 위장 판매하는 행위 등을 단속했다.

내가 사는 서귀포시 서홍동과 인근 동홍동에만 해도 얼마든지 양심적인 도민 고깃집들이 있다. 내가 가본 곳 중에서 몇 집을 추천한다. 이른바 '내돈내산'으로 정직하게 쓴다.

1. 제주 흑돈세상 수라간(서귀포시 중산간동로 8051). 흑돼지 전문집이라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집이다.
2. 복덩이(서귀포시 중산간동로 8025). 숯불 양념갈비가 맛있다. 값싸고 맛있는 집이라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3. 돈사촌(서귀포시 동홍중앙로52번길 4). 근고기 전문집이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두툼한 근고기는 또 나름의 맛이 있다.
4. 종명 식당(서귀포시 천지로 58). 정육점도 있고, 도민이 주 고객이다. 저렴하고, 고기도 좋다. 양념갈비도 나름의 맛이 있어, 가끔 사다 먹는다.
5. 상록식당(서귀포시 토평로 24). 연탄 위에 불판을 두 개 올리고 고추장 베이스 양념 삼겹살을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수라간 주인 김민주 씨 주인이 직접 기른 쌈 채소가 늘 다양한 집이다. 주인이 직접 고기를 구워준다.
▲ 수라간 주인 김민주 씨 주인이 직접 기른 쌈 채소가 늘 다양한 집이다. 주인이 직접 고기를 구워준다.
ⓒ 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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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단골식당이지만 이정도면 여행객들도 만족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오래간만에 수라간에 가서 고기를 구워주는 주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13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한, 수라간 주인 52세 김민주씨는 말한다.

"비계 삼겹살 파동 이후, 관광객이나 이주민 손님이 줄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선 돼지고기 먹지 말자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오시는 손님도, 이 비계조차 많다고 없애달라는 분도 계신다. 하지만 화제가 되었던 그 삼겹살도 달랑 그 부위만 나오지 않았을 텐데, 그것만 나온 것도 이상하다.

통고기를 썰었을 때 일부분만 보면 비곗덩어리로 보일 순 있지만, 모든 부분이 그렇지는 않고, 위에는 분명 살이 있었을 것이다. 살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하는 의문을 가져볼 만도 한데, 제주도 고기가 다 그런 것처럼 싸잡아 말하니 안타깝다.

요즘 출하되는 고기는 시기를 조절하여 지방을 거의 없게 한다. 지방이 적당히 있어야 급수가 높아지는데, 비계 논란 때문에 돼지고기 맛이 떨어진다고 보는 업계의 분들도 많다. 지방이 없는 고기를 숯불에 구우면 뻑뻑해지고 굽기도 어렵다. 그래도 지방이 많으면 안 팔리니까 지방을 조절한다.

마케팅 비용을 10% 써야 네이버에 나오는데, 저희같이 작은 동네 식당은 비싸서 못 하고 덩달아 외국인 손님도 줄었다. 고기도 사람도 숯불도 변함없는데 동네 상권이 많이 죽었다. 이건 우리 탓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본다."


7년 전만 해도 줄 서서 먹던 집이다. 작년 겨울만 해도 실내에 빈자리 하나 없던 집이다. 그랬던 식당에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저녁 7시까지 다른 손님들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주 고깃집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관광객이 줄었다. 이제는 진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올 시간이다. 도민들도 그런 분들이 방문해 주기를 기다린다. 오셔서 동네 맛집에서 돼지고기를 먹고, 숲과 바다를 즐길 시간이다. 사실 렌터카 한두 시간 타고 다니면서, 이 모든 자연과 음식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만한 곳이 잘 있을까. 제주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제주#비계삼겹살#서귀포#도민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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