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소비자 "로켓배송에 익숙한 생활을 바꾸겠다"

쿠팡 택배노동자 정슬기(서울)씨가 5월 28일 과로사한 가운데,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15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쿠팡은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소비자 이미연(창원)씨는 울먹이면서 발언했다. 다음은 발언 전문이다.

서상동에서 1학년, 2학년 연년생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저는 쿠팡으로 아이들을 키웠어요. 처음 큰 애를 낳고 3층에 살면서 아기를 데리고 무겁고 큰 장을 볼 수도 없었고, 또 예상할 수 없는 아이들 생리현상에 기저귀, 분유, 생수, 기타 아기용품은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똑 떨어져서 당장 필요할 때도 많았습니다. 온라인 택배를 주문하고 필요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하면 발을 동동거리다 아이를 메고 버스를 타고 나가 기저귀를 사온 적도 있습니다. 매장가격은 깜짝 놀라게 비싸더군요. 그런 저에게 쿠팡의 로켓배송은 구세주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좀 커가면서, 늘 바쁜 엄마라 여유를 놓쳐버린 저는 소풍, 준비물, 우산 등등 문제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집으로 오는 쿠팡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쿠팡의 시스템과 로켓배송에 길들여진 수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 쿠팡을 알면 알수록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여러분 그 유명한 ‘유체이탈 화법’ 아시죠?? 머리가 시키는 것과 실제 몸이 하는 게 다른거 그 화법. 쿠팡을 쓰는 제가 바로 그래요. ‘클렌징’이란 단어가 이슈가 됐을 때, 전 쿠팡을 탈퇴했습니다. 실적을 근거로 한 대리점과 기사들을 다 청소한다니.. 가족들 생계를 위해 뛰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청소한다는 그 발상이 너무 기가 막히고 이런 일은 용납해주면 안된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바쁘다보니 또 급해지면 사용하게 되더군요. 물건이 좋아도 지인들에게 쿠팡에서 샀다는 말도 못합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도 영 불편한 이 소비자의 마음을 쿠팡은 아시나요.

지난달에 저희 2학년 딸과 함께 마을에서 만나는 직업 인터뷰 숙제를 했습니다. 전화로 하는 인터뷰에서 택배 기사님은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때 가장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정해준 것에 없는 질문을 했어요.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이기시나요?” 그 기사님이 “딸 생각하면서 이긴다”고 대답했어요.

택배 기사도 사람입니다. 자식 생각에 힘든 것도 이기고 일하셨을 정슬기님 기사를 보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로켓배송이란 이름으로 기사들의 목숨을 쥐어짜는 현실, ‘개처럼 뛰고 있다’는 그 압박과 초조함과 스트레스. 천하장사도 그렇게 살면 쓰러집니다. 트럭에서 운전대를 잡은채 쓰러지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쓰러지고.. 내 가족과 아이들 위해 사용하는 쿠팡이 다른 아이들에게 아빠를 영원히 뺏아가는 시스템이라면. 이런 쿠팡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로켓배송에 익숙한 생활을 바꾸겠습니다. 그러니 쿠팡도 바꾸십시오. 천천히 와도 됩니다. 신속한 배송 뒤로 가려진 이 추악한 쿠팡을 규탄하는 일을 저 또한 멈추지 않겠습니다. 정슬기 님의 명복을 빕니다.

ⓒ윤성효 | 2024.07.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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