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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숙
병실에 있는 준수를 만나러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한 달 넘게 병실에 입원해 있는 녀석에게 뭔가 재미있는 얘기라도 해주어서 잠시라도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요.

어린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되어 침대에 누운 채로 한 달을 보낸 준수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을 향한 버스 안에서 준수에게 해줄 얘기를 미리 생각해 둡니다.

이번에는 사촌동생 경남이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원주에 있는 광수를 돌보기 위해 동생 내외가 애를 씁니다. 사흘에 한 번씩 반찬을 준비해서 동생 내외와 조카 경남이와 정은이가 집에 옵니다. 그래서 함께 저녁을 먹고 집안 청소며 빨래를 해주고 갑니다.

유치원 다니는 경남이가 집에 와서 사촌형인 광수와 장난을 치다 뭐가 그리 웃긴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다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습니다. 오줌을 싼 녀석은 부끄러워 징징대고 함께 장난을 치던 광수는 속으로는 웃긴데 웃음을 참느라고 힘들었다며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 얘기를 준수에게 해주면 준수가 웃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보다 어린애들을 유독 귀여워하고 잘 놀아주던 준수였습니다. 우스운 일이 있으면 저 혼자 낄낄대는 게 아니라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던 게 준수 녀석의 평소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병원에 온 후로는 그렇게 웃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웃을 일도 없었고 설령 웃고 싶어도 하반신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가능하지도 않았지요.

병원에 도착해보니 병실에 준수가 없었습니다. 물리치료실에 치료받으러 갔다고 합니다. 병실에 짐을 풀어놓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물리치료실에 가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치료에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수없이 열리고 닫혔습니다. 그때마다 휠체어를 탄 많은 환자들이 타고 내렸습니다. 그게 재활 병동의 풍경입니다.

한참 후에 드디어 준수와 아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습니다. 준수는 휠체어를 타고 아내는 뒤에서 밀고 엘리베이터를 나오다가 나를 발견했습니다. 준수 녀석은 "아빠" 하면서 반겼습니다. 물리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빠가 왔나 병실에 가보라고 엄마를 재촉했다고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기다리지 말고 물리치료실로 가볼 걸 그랬다 후회했습니다.

독한 약을 투여한 탓으로 얼굴이 붓고 얼굴 여기저기에 붉은 반점이 생겼습니다. 그런 녀석의 휠체어 옆에 서서 녀석의 손도 만져주고 얼굴도 쓰다듬어주면서 고생한 녀석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얘기를 해줬습니다.

사촌동생 경남이가 오줌을 쌌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녀석은 그냥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말주변이 변변치 못해 재미가 없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녀석은 사촌 동생이 오줌 쌌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오줌을 제 힘으로 눌 수 없어 관으로 뽑아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던 겁니다.

"나도 오줌 좀 싸봤으면 좋겠네."

녀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녀석의 얘기를 듣고는 아차 싶었습니다. 척수 종양의 증상이 하반신 마비와 함께 방광 신경에 장애가 온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그저 다리의 신경만 돌아오길 바라기만 했습니다.

기독교 병원 응급실에서 오줌은 마려운데 오줌을 눌 수 없어 애를 쓰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 힘으로 오줌을 눈 적이 없던 준수 앞에서 공연한 얘기를 해서 녀석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자책해봐야 이미 늦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아내가 얼른 상황을 바꾸려 애를 썼습니다.

"준수야, 아빠가 오셨으니 작업치료실 가서 운동하는 모습 아빠께 보여드리자."

"맘대로 해요."

준수의 휠체어를 밀고 작업 치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주말이라 환자와 가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준수가 오늘 배운 운동은 '누워서 좌우로 구르기'라고 했습니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아이가 상체의 힘만 가지고 구르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안간힘을 써서 구르기를 하는 준수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도와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침에는 구르기를 시도하다 안되어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아빠 앞에서 구르는 모습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던 녀석은 두어 번 성공하더니 그 뒤론 구르는 속도가 약간씩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치료 담당 선생님이 오후에 500번 정도 구르기 연습을 하라고 시켰다며 아내는 옆에서 횟수를 세어가며 계속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스무 번 정도 구르기를 하던 녀석이 축 늘어졌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빨리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좀 쉬었다 하게 내버려두라고 해도 아내는 막무가내입니다.

엄마의 닦달에 못 이겨 힘든 구르기를 계속하던 녀석이 갑자기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나 오줌 싼 거 같아."

녀석을 눕혀 놓고 바지를 살펴보니 과연 젖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아내는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준수 스스로 오줌을 눌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급히 녀석을 휠체어에 싣고 병실로 왔습니다. 바지를 갈아 입히려고 아내는 환자복을 가지러 간호사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준수가 오줌이 나올 거 같다며 아빠를 불렀습니다. 일주일만에 찾은 병실에서 오줌통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어 머리맡에 있던 종이컵을 녀석의 고추에 가져다 대고 오줌을 누어보라고 했습니다.

준수가 한참을 끙끙대더니 오줌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왔습니다. 종이컵이 넘칠 정도로 오줌이 나왔습니다. 오줌이 종이컵을 넘쳐 손등을 적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오줌 줄기가 그렇게 맑을 수 없었습니다.

한 달만에 오줌을 눈 준수를 데리고 샤워실로 가서 씻겨주며 준수에게 얘기했습니다.

"준수야, 고맙다. 이번 주말에 준수는 아빠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었구나.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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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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