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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9월 14일 수종: 핑그랜드

▲ 키우는 내내 작은 연보라색 꽃들이 피었다 지는 것을 반복해 저를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 김희경
첫 직장에 다닐 때 키웠던 화초입니다. 일 년 넘게 길렀지요. 조그만 보라색 꽃이었는데 나중에는 머리채(?)가 길게 자라서 하얀 실로 묶어 주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복학하면서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이 화초를 선물했던 친구에게 되돌려 줬는데 얼마 후 말라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물도 잘 주고 볕도 쪼여 주었는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날 어찌나 종일토록 마음이 아프던지, 화초도 손길이 달라지면 외로움을 타다가 죽나 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이구아나 같은 애완동물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지요. 충무로에서 내리면 애완동물 가게들이 대로를 따라 죽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마시안, 시추, 시베리안허스키, 페르시안 고양이 등… 수많은 ‘털’을 가진 짐승들이 있습니다. 청계천에 가면 ‘비늘’ 달린 물고기를 파는 가게들이 또 죽 늘어서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식인 물고기인 피라니아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일상이 된 지금, 저는 화초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화초’ 키우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화초에 대한 저의 사랑은 좀 유별납니다.

화초를 사온 날, 저는 날짜와 이름을 적습니다. 그래야 내가 그 화초를 몇 달째 키우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물을 주지요. '水'요일의 약속, 수요일이 물 수 자이기 때문에, 잘 잊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적의 노래 <레인>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오지요. ‘기다림은 방 한구석 잊혀진 화초처럼 조금씩 시들어 고개 숙여가고~’ 물을 주지 않아 화초를 죽이는 경험이야 모두에게 있겠지만 그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습니다. 강아지는 배고프면 밥 달라고 낑낑거리고, 고양이는 와서 애교라도 부리지만 화초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12월 3일 수종: 줄무늬 벤자민

▲ 집들이를 갈 때도 세제용품 대신 애완식물과 함께 마음까지 선물합니다.
ⓒ 김희경
얼마 전 집들이에 갔는데 화초를 선물했습니다. 큰집은 아니었지만 나이 서른이 넘어서 처음 독립하는 지인의 집이었지요. 저녁 퇴근길에 화초를 사와서 종이에 화초를 산 날짜와 이름을 정성스레 쓰고 잘 기르는 법을 적어 넣었습니다.

전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초를 기르고 싶은데 내가 키우면 다 죽는단 말이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적어준 대로만 한다면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2004년 11월 5일 수종: 은테사철

▲ 요새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화초입니다. 은빛 테두리가 잎사귀 곁에 있어 은테사철이라고 한다는군요.
ⓒ 김희경
지금 기르고 있는 화초입니다. 컴퓨터 오른편에 놓여 있어서 항상 제 눈을 즐겁게 하지요. 제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돼 시작해서 이제 한달 조금 넘게 키우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날 꽃집에서 끝에 ‘규’자가 들어간 사람에게 선물 받아 이름을 ‘규’라고 지었습니다.

정을 붙인 지 겨우 한 달이건만 출근했을 때 연둣빛의 잎사귀가 올라와 있으면 그렇게 즐거운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손으로 솔솔 쓰다듬어 주고, 여전히 수요일에 물을 주는 철칙은 변하지 않았지요.

화초들은 따뜻한 심장도 없고, 다가와서 꼬리치는 애교도 없습니다. 다만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맛있는 물을 주면 녹색의 푸른 잎사귀로 보답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화초에 더욱 정감이 가는 것은 ‘나의 사소한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심한 마음에 물을 안 주면 말라 죽고, 햇빛도 너무 과하면 타 죽어 버리는 연약함이 있기에 작지만 소중한 것입니다.

비록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내가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귀가하거나 출근했을 때 꼬리를 치며 달려오는 포근한 몸을 가졌다거나, 얼굴을 부볐을 때 온기가 느껴지는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린 왕자가 기르던 장미를 생각해 봅니다. 연약한 장미를 위해 유리 플라스크를 씌워 주고, 작은 가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던 어린 왕자의 마음처럼, 저도 연약한 화초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애완식물’로 키우고 싶습니다.

▲ 연둣빛 잎사귀가 나올 때마다 희망이 돋아나는 것 같아 절로 행복해집니다.
ⓒ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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