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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중국인 방문객

며칠 전 김씨 집 사랑방 객으로 온 낯선 중국인은 잠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사랑방에서 같이 자고 있던 김씨는 깊은 잠에 빠진 듯 일부러 모른 체 하고 누워있었다. 중국인은 옆의 김씨가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가을 추수도 끝나고 바깥에는 찬바람이 몰려오는데 이 추운 겨울밤 어디를 저렇게 나다니는 것일까?

덕룡산 자락 길게 뻗어내려 봉황 고을 미륵사 넘어 둥그런 터를 만들어 준 운곡 마을에 사는 김씨는 같이 잠자던 중국인이 밤마다 몰래 나다니는 것을 알고는 요사이 깊은 의문에 빠져 있었다.

달걀을 구해 달라는 중국인

아침에 날이 밝자 밤에 나갔다 새벽에 돌아온 중국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여느 날처럼 세수를 하고 김씨 아내가 들고 온 밥상을 받아 아침 저녁으로 소죽 끓이는 사랑방에서 김씨와 같이 아침을 들었다. 밥 수저를 들며 중국인이 다른 날 같지 않게 김씨에게 의외의 부탁을 했다.

"주인장 저에게 달걀을 하나만 구해 주시오."
"달걀은 거 뭐에 쓰려고 그러시오?"

김씨는 은근히 물어 보았다.

"그건 알 것 없습니다. 그냥 쓸 데가 좀 있어서 그럽니다."

중국인은 대답을 슬그머니 회피해 버렸다. 김씨는 그 날 오후에 암탉이 갓 낳은 싱싱한 달걀 하나를 중국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오늘밤에는 기필코 중국인을 미행하여 무슨 수작을 하나 알아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 덕룡산과 용제산이 아래 자리한 전남 나주시 봉황면 운곡마을 골짜기
ⓒ 강형구
은밀한 미행

이윽고 밤이 되었다. 중국인은 김씨가 잠이 든 줄 알고 여느 때처럼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갔다. 뒤이어 김씨도 일어나 조심조심 중국인의 뒤를 밟았다. 중국인은 마을을 빠져나가 뒷산 맷돌바위가 있는 산언덕으로 가더니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섰다.

중국인은 호주머니 속에서 김씨가 건네 준 달걀을 꺼냈다. 그리고는 땅을 파더니 그곳에 달걀을 묻는 것이었다. 달걀을 묻은 중국인은 그 자리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낌새였다.

김씨도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자리에 몸을 숨긴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시간여쯤 흘렀을까. 서쪽 하늘로 중천에 뜬 차가운 달도 넘어가고 온 몸이 얼어붙을 듯 오슬오슬 떨려왔다. 도대체 중국인이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수차례 들었다.

순간 중국인이 달걀을 묻었던 땅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자 김씨는 눈을 의심하며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때 연기가 솟아오르던 땅에서 큰 닭이 '꼬끼오오!'하고 홰를 치며 나오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비스런 일이었다.

"호오! 여기가 진짜 명당이로구나!"

중국인이 무릎을 치고 기뻐하며 혼잣소리를 했다. 그리고는 일어서 돌아가려 했다. 엿보던 김씨는 슬그머니 몸을 빼고 그 자리를 얼른 빠져 나왔다. 방에 들어온 김씨는 자는 체 하고 누워있었다. 잠시 후 중국인이 돌아와 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다음날 중국인은 아침을 들더니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꾸렸다. 김씨에게 그간의 숙박에 대한 값을 치른 중국인은 석 달 후에 다시 오겠다며 영산강 포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영산강 포구에서 배를 타고 목포 앞 바다로 빠져나가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명당에 묘를 쓰고

떠나는 중국인을 배웅하며 김씨는 석 달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며 어젯밤 중국인이 달걀을 묻던 그 자리로 가보았다.

'음…. 이곳이 명당이라!'

속으로 깊은 생각에 잠긴 김씨는 그 즉시 서둘러 날을 잡아 자기 부모 유골을 파와 그 자리에 새로운 묘를 썼다.

▲ 도강김씨 장군대좌 묘소
ⓒ 강형구
돌아온 중국인

이듬해 어느 봄날 오후 그 중국인이 자기 부모 유골을 가지고 돌아왔다. 중국인이 자신이 봐두었던 자리에 부모 묘를 쓰려고 보니 이미 그곳에는 새 묘가 들어서 있었다. 그날 밤 저녁을 먹은 후 중국인은 김씨에게 그 묘의 내력을 물었다.

"주인장, 저기 뒷산 맷돌바위 있는 곳에 들어선 새 묘는 누구 묘입니까?"
"아! 그 묘요? 그 묘는 우리 부모님 묘요. 지난 겨울에 새로 자리를 보아 내가 자리잡아 쓴 거요."

김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 자리는 칼을 왼쪽에 차고 있는 장군대좌 자리라 외국사람이 무덤을 써야 발복(發福)을 한다오. 조선사람이 그곳에다 무덤을 쓰면 뜻을 펴지 못하고 결국 화를 당해 일찍 죽게 될 것이오. 더구나 조선에서는 훌륭한 장사가 나면 그 사람을 잘 길러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게 하기는커녕 역적이라고 여겨 붙잡아서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삼족(친가, 외가, 처가)까지 모두 처참하게 죽이지 않소. 그러나 우리 중국은 장사가 나면 그 사람을 보호하고 장군으로 길러서 세상에 훌륭한 일을 하게 한다오. 그러니 주인장 그 자리는 나에게 주시오. 그럼 삼정승 육판서가 줄줄이 날 명당자리를 내 일러 주겠소. 어떻소. 그러니 그 명당 자리를 바꿉시다."

"묘를 옮긴 지가 언젠데 다시 또 묘를 옮겨 쓰라는 거요? 됐소. 돌아가시오."

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무지 김씨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 중국인은 노발대발하며 김씨 집을 뛰쳐나왔다. 그날 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중국인은 그 즉시 커다란 쇠말뚝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미륵사가 있는 창룡주령과 장군대좌를 이은 산줄기에 쇠말뚝을 박아 혈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덕림리 신창마을 근처 앙천대소(仰天大笑)자리에 자기 부모 묘를 썼다. 묘를 다 쓰고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중국인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마련한 술과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중국인이 입을 열었다.

"마을 분들, 추석 전날 이 묘를 벌초해 준 사람은 그 해 가뭄도 안타고 농사를 아주 잘 지을 것이오."

중국인은 돌아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이 앙천대소 묘에 음력 팔월 열 나흗날 밤 첫닭이 울자마자 가서 벌초를 하면 아들을 얻는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앙천대소 묘를 벌초하려고 추석 전날 밤을 거기서 꼬박 지새우기도 하는 것이었다.

▲ 장군대좌에서 바라본 전경-왼쪽 좌청룡 산맥 안으로 칼의 혈맥이 뻗어 놓여있고, 멀리 영산강이 가로로 흘러가고 금성산이 보인다.
ⓒ 강형구
태어난 아기 장사

한편 장군대좌에 묘를 쓴 김씨의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더니 열달만에 떡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낳았다. 김씨는 명당에 묘를 쓴 효험이 바로 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심히 가슴이 설렜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이 건강하게 생긴 아들은 아주 잘 자랐다. 감기 몸살 한번 앓지 않고 이렇다 할 잔병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란 것이다.

김씨 아이가 열일곱 되던 해 아이는 그 날도 서당에 들러 공부를 하고 오후에 바람 같이 병풍 바위에 올라 집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미륵사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 아이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다.

작은 오솔길 옆 느티나무 밑에 웬 가마가 놓였는데 그곳에서 큰일났다며 가마꾼들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김씨 아이는 가까이 가서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한숨을 짓고 있나요?"
"말마라. 화순에서 영암으로 대갓집 신부를 모시고 신행을 가는 길인데 다도고을 깊은 범만이 골짜기에 사는 사나운 산적 패들이 가마를 덮쳐 신부를 납치해 가버렸다."

김씨 아이는 그것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범만이 골짜기에 사는 산적들이 여자가 없어 시집가는 가마를 덮쳐 신부를 훔쳐간다는 소문은 간간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당하는 사람을 보니 참으로 분이 치받쳤던 것이다.

김씨 아이는 산골짜기 안에 은밀하게 짚과 나무로 움막을 친 산채 안으로 들어가 두목을 만났다. 십여 명 남짓한 산적들이 도끼나 칼을 쥐어들고 빙 둘러선 가운데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온 얼굴을 검게 뒤덮은 집채만한 몸집의 두목이 나타났다.

순간 김씨 아이는 잽싸게 피하며 두목의 등 뒤로 돌아가 뒷목덜미와 허리춤을 붙잡고 번쩍 들어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잠시 후 아래 저수지에서 풍덩! 소리가 났다. 두목이 아래 저수지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김씨 아이의 이런 엄청난 힘을 본 산적들은 대번 무릎을 꿇어 버렸다.

산채 움막에 불을 놓아 버린 후 김씨 아이는 신부를 데리고 가마꾼들에게 갔다. 저수지 옆에 숨어 있다가 누가 하늘을 날아와서 물 가운데 풍덩 빠지자 어떻게 되었는지 대개 궁금해진 가마꾼들은 이제나 저제나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신부를 구해 오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김씨 아이 혼자서 십여 명이 넘는 흉악한 산적을 때려눕히고 신부를 구해내자 그가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 장사라는 소문이 일대에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아기장사의 죽음

김씨는 몹시 두려웠다. 어디서든 아기 장사가 나면 왕조를 때려 엎을 역적의 기운을 타고 났다고 하여 나라에서 잡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친가, 외가, 처가 사람들조차 모조리 잡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며칠 후 김씨 문중 사람들이 회의를 열고 난 직후 김씨를 찾아왔다. 문중 사람들 앞에서 김씨가 흐느끼며 아들에게 말했다.

"나라법이 지엄하여 네가 죽어야 삼족을 멸하지 않는다니 너를 죽일 수밖에 없구나!"

"나는 이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으려 했는데, 제가 꼭 죽어야 한다면 제 겨드랑이에 있는 날개를 등잔불로 태우고, 삼 년 묵은 저립대(삼 껍질 벗겨 말린 것)로 세 번만 때리면 됩니다. 자 나를 죽이시오."

김씨 아이는 토재 마루에 웃옷을 벗고 누웠다. 그러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등잔불로 태우고 저립대로 세 번을 때리자 김씨 아이의 숨이 넘어갔다. 그렇게 죽은 아들을 김씨는 흐느껴 울며 장군대좌 못미처 야산에 묻어주었다.

▲ 용마가 나왔다는 용제산
ⓒ 강형구
용마와 의병장 김덕령 장군

사흘 뒤 용제산 병풍바위 위에서 용마가 났다. 아기 장사가 나면 용마가 함께 난다더니 주인을 잃은 그 용마는 아흐레를 울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주인 잃은 서러움을 달래지 못하고 광주고을 김덕령 장군에게로 갔다.

김덕령 장군은 용마를 본 순간 첫 눈에 영물임을 알아보고는 사장(射場)터로 데려가 내기를 했다. 김덕령 장군은 말을 보고 멀리 과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저 과녁에 활을 쏜 순간 나를 태우고 달려서 네가 화살보다 먼저 도착하면 내 말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너를 단칼에 베리라."

이렇게 말하는 김덕령 장군을 보고 용마가 알아들은 듯 울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덕령 장군이 말 등에 올라 활을 쏘고 바람처럼 달려 과녁에 도착해 보니 거기에 화살 한 개가 박혀 있었다. 순간 화가 난 김덕령 장군은 말에서 내려 단칼에 용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막 용마의 목을 칼로 날리는 찰나 피잉 하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아오던 화살이 과녁에 쿵박혔다.

"아니, 이럴 수가! 전에 쏜 화살을 뽑지 않은 걸 내 미처 몰랐다니. 아아! 나는 이제 장군으로 성공하지 못하겠구나! 내가 장군으로 성공할 것 같았으면 이 말을 얻었을 텐데 으흐흐흑!"

임진왜란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은 훗날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밀고로 역적으로 몰려 29세에 고문으로 죽고 마는데 마치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었다. 어디선가 용마의 슬픈 울음소리가 무등산을 메아리쳐 울리는 듯했다.

봄 산에 불이 나서 못다 핀 꽃 다 타죽는다
저 산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연기도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김덕령이 이몽학의 모함으로 투옥되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노래한 시-

▲ 광주시 동구 무등산 충장사에 있는 김덕령 장군의 묘
ⓒ 강형구

덧붙이는 글 | -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설을 발굴 취재하여 우리의 정신사를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밝혀 우리 후손의 미래 삶을 아름답게 함과 동시에 문화사적인 해석과 지평의 폭을 넓히고 싶다.

-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강형구는 우리 전설과 설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수년간 직접 취재하여 소설형식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독자에게 선보여 왔다. 저서로는 <운주사 그 신비로운 전설과 설화>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 <재미있는 미륵이야기>(상·하)가 있고, 광주 MBC 창사 33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천년의 신비 운주사'구성, KBS 뷰티플 코리아 '운주사 천년의 신비' '전국은 지금' '한국의 탑이야기' 등에 다수 출연하였다. 불교방송에서 '가람속의 전설을 찾아'를 2년간 방송하기도 했다. 현재는 격월간 <초원>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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