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다 빠져 병원에 갔더니... "무슨 일 하세요?"

고속도로 위 여성노동자 87명 실태조사... 친절·감시 스트레스 심해

등록 2015.01.18 13:16수정 2015.0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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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위 톨게이트 ⓒ 김혜란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업소는 총 341개가 있다. 현재 도로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국고사업 노선은 31개이고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노선은 7개다.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톨게이트 지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요금징수 여성노동자는 약 7천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모두 한국도로공사에 간접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로, 사실상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비정규직 꼬리표를 달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톨게이트 영업소 전체를 도급으로 전환 시켰기 때문이다. 즉 이전에는 한국도로공사가 이 여성노동자들을 직고용한 데 반해 도급으로 전환하면서 구간별로 하청을 준 것. 따라서 2년 단위로 하청업체 사장과 재계약을 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극도의 '고객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들의 '인격 무시' 언행이나 욕설, 성희롱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성 노동자들을 실제 만나 이야기하고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더욱 심각한 스트레스는 사업주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사업주는 이 여성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 걸까? <일과건강>이 지난 2014년 11월 한 달 동안 민주연합노조와 함께 진행했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연령은 42.8세, 85%가 기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총 87명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가 조사에 참여했다). 잠시 이들의 일터를 들여다 보자.

근무시간 9시간 동안 수시로 감시당하는 여성들

그녀들이 가장 심각하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바로 감시였다. '고객에게는 반드시 친절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친절 수준 감시'였다. 그런데 사업주의 친절 강요 수준이 도를 넘는다.

"차량이 도착하면 몸을 완전히 틀어 고객을 바라보며 고객에게 눈을 마주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고객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불쾌하지 않게), 약간 고음으로 응대하며..."


이는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가 차량 1대 당 응대시간 7초 안에 해야 하는 20가지의 친절 동작 중 일부다. 만약 평가 점수가 낮으면 퇴근 후 남아서, 또는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교육(CS) 등을 받아야 한다. 무급으로. 노조에 따르면, 월 평균 1.3회 정도 받는다고.

여기에 더해 '미스터리 쇼퍼'가 등장한다. 가짜 고객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이 사람들은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을 수시로 감시한다.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원형탈모를 겪게 되었다는 한 여성노동자는 눈물을 보였다.

"머리카락이 완전 다 빠져서 병원에 갔더니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기에 이렇게 심각해졌느냐'고 의사가 묻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이렇게 이루어진 친절 평가는 재계약에 영향을 미친다. 정직원(매년 계약하는 이 여성노동자들은 다시 정직원과 임시직으로 구분된다. 정직원은 풀타임 노동을 하고 임시직은 파트타임 노동을 한다.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있는 정직원이 되고 싶어 한다)이 되는데도 악재로 작용한다.

고객 불만이 발생하면 '업무 외 시간에 추가교육', '임금 불이익', '시말서 작성', '남들 앞에서 모욕 주기', '고객에게 직접 전화해서 사과'하거나 심지어 '집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가장 높은 사측의 징계는 '업무 외 시간에 추가교육'(80%가 경험)으로 나타났다.

근무 끝나면 매연에 찌든 까만 얼굴... 공기질 관리 전혀 없어

하루 8시간 노동시간 동안 이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약 1시간. 보통 하루 2~3회에 걸쳐 쉰다. 심지어 밥도 먹는 게 아니라 '마셔야' 할 정도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조사 결과,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경험을 일 주일에 평균 2.5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광염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짧은 휴게시간도 대체해줄 여유 인력이 없는 상황이니 동료가 병가를 내거나 집안에 행사가 있어 휴가라도 내면 그 시간도 채워야 한다. 이른바 대근. 그런데 이럴 경우 꼬박 16시간을 연거푸 일할 수밖에 없다고. 3교대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내 앞 뒤로 누군가가 빠지면 결국 그 빠진 8시간을 내가 대체해야 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런 대근은 대부분 발생하며 월 평균 2.5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고속도로 내 톨게이트 요금소는 그야말로 창고 수준이다. 우선 너무 좁은 데다가 회전도 잘 되지 않는 의자가 놓여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근육긴장이 더 커져서 근골격계질환이나 피로도가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고객과 소통하는 거대한 창은 항상 열려 있어 (춥거나 더운) 바람이 세차게 들어온다. 더한 것은 시동 걸린 차량이 공회전하면서 내뿜는 매연을 하루 종일 앉아서 마셔야 한다는 점이다. 피부도 매연을 먹는다. 퇴근길 이들의 얼굴에는 매연이 점딱지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참고로 매연에 포함되어 있는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는 1급 발암물질이다. 이들 노동자들 중 근골격계질환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성대결절 정도는 쉽게 겪는 질병이라는 설명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근골격계질환 관리', '유해물질 등 작업환경관리', '실내공기질 관리'라는 현행법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 의무로 위의 내용들을 이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통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거나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3교대 근무로 주기적으로 야간근무에 들어가는 이 여성노동자들 가운데 2명은 유산(자연유산, ILO  "Pregnant woman at work" Annex 4에 따르면 자연 유산의 원인으로는 물리적·생물학적·화학적 요인 등이 있다. 또한 교대근무가 자연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2배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연구들도 있다)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68.0%는 지난 1년간 생리불순(생리주기가 20일 이내이거나 35일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분류별 연령별 급여현황' 자료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여성 연령 전체합계(2012년, 14%)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다양한 업무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인 탈진이나 우울을 호소하기도 했다. 조사결과 이들의 탈진 수준은 우리나라 서비스 여성노동자 집단과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우울 수준에 있어서는 '심리상담'이 필요한 집단 규모가 무려 67.8%에 이르러 매우 심각한 수치를 보였다. 우울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더 높았다. 친절 점수 평가로 인한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높은 우울 수준을 나타냈다.

게다가 64%가 지난 1년간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주 가해자는 고객이었다. 그러나 가해자 중 상사도 약 6%로 나타났다. 최근 일부 상급자가 드러내놓고 여성 노동자들을 성희롱하여 노동조합에서 강력히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지 7개월. 그러나 아직 단체교섭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전보건과 관련한 법규제가 있는지도 몰랐고 비인간적 대우에 슬퍼하기만 할 뿐 아직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도급 사업주도 이들의 권리를 모르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행정 당국의 책임이다.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한인임은 (사)일과건강 사무처장입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고 세상을 위한 ‘일과건강’ 웹진222호 시론에 게시됩니다.
#감정노동 #톨게이트 #요금징수 #여성노동자 #일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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