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의 생산라인. 제조업 공장에서 흔히 보이는 컨베이어 시스템은 사라지고, '로봇팔'들이 금형, 조립, 접합, 운반, 도색까지 모두 처리하고 있다.
Steve Jurvetson
새로운 유행어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4차산업혁명'이다. 이 말이 인기를 얻으면서 클라우스 슈밥은 하루아침에 스타로 부상했고, 덕분에 그의 (논문에 가까운) 따분한 책까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슈밥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창립한 뒤 스스로 회장을 맡으며 재계와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해 오기는 했으나, 결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6년 다보스포럼의 주제를 '4차산업혁명'으로 정한 뒤, 그 생소한 개념이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나팔을 분 격이기는 하나, 그 덕분에 슈밥은 한국에서도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고, "4차산업혁명과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까지 열었다. 슈밥 회장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보며 칭찬하기도 했다.
예상할 수 있듯, 한국 정부는 즉각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언론도 가세해 '4차산업혁명' 특집 보도를 열심히 쏟아냈다. 이 유행어가 얼마나 '핫'했는지,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까지도 슈밥의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박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된 1인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4차산업 기반 조성'을 자신의 업적으로 꼽았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지금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취임하면서 창조경제, 문화융성 이런 것을 통해서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4차산업혁명 대비책'을 자신들의 공약집에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좀 '김 새는'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한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당연히 이 '무식한 질문'에 열띤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 뜨겁던 '3차산업혁명' 열기는 언제 다 꺼졌을까
올해 초 <한겨레>는 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대담을 열었다. 여기 참여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틀림없이 곧 '4차산업혁명은 없다, 가짜다, 허구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며, "우리는 지금 '혁명의 전야'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단단히 못박았다.
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사회가 '3차산업혁명'으로 들끓었던 게 고작 한 두 해 전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주고 싶다. 제러미 리프킨이 2011년에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썼고, 이것이 이듬해에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지금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리프킨은 2015년 말까지도 한국을 방문해 '3차산업혁명론'을 역설했고, 언론은 이를 대서 특필했다. 기술의 진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한두 해 만에 '3차'를 졸업하고 '4차'로 넘어간 것일까? 아니면 아예 건너 뛰고 '4차'로 직행한 것일까?
리프킨은 그동안 에너지 네트워크, 산업 간 융합, 공유경제,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터를 활용한 제조업 혁명이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3차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해 왔다. 리프킨이 에너지를 특별히 강조한 점과, 앞의 숫자가 '3'이라는 점을 빼면 슈밥의 주장과 판박이다.
이 둘은 '혁명'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표한다. 슈밥은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영향으로 미국 일자리의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옥스퍼드대학 연구를 인용하며, 다가올 실업과 양극화 문제를 제기한다. 리프킨 역시 자신의 책에서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구매력 감소가 경제 성장에 타격을 입힐 것을 염려한다.
두 저자가 한국 대통령의 관심을 끈 것까지도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슈밥의 애독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리프킨을 초청해 직접 만났다. 차기 대통령은 '5차산업혁명'의 저자와 조우하게 될지 모르겠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산업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