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버러 추모공간이 리버풀FC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 마련돼있다.
Ken Biggs
판결에 따르면, 경찰이 출입구를 개방해 버린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경찰은 관중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저지선도 갖추지 않았고, 응급 치료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정부가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축구팬들 잘못'이라고 책임을 덧씌웠던 사실 역시 드러났다.
앤 에이어(58, Anne Eyre) 박사는 이 '힐즈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의 생존자다. 참사 당시 25세였던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재난 관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다. 사회학자가 된 그는 현재도 영국의 재난참사 피해자 연대 '참사 행동(Disaster Action)'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족과 생존자,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냐'고 물었다. 최악의 참사를 겪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하냐고도 물었다. 그는 긴 편지로 답을 보내왔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영국에서 온 편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는 모습.
권우성
이것은, 힐스버러 참사의 생존자가 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선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제 마음과 기도, 애도를 전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음을, 당신의 깊은 슬픔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이 편지를 준비하면서 '유족·생존자·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을 고통을 표현할만한 말은 없음을 알지만, 재난과 그 후유증을 겪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위로와 지지를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것에 대한 성찰들이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생존자입니다
저는 1989년 영국의 힐즈버러 축구 경기장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군중 사고의 생존자입니다. 당시 나는 25세였습니다. 내 팀인 리버풀의 컵 준결승전 승리를 지켜보는 즐거운 하루가 됐어야 했지만, 그 날은 나와 그곳에 함께 있던 친구들, 우리 가족들, 그리고 더 넓은 지역사회 모두에게 최악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적 비극이었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양심(마음)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습니다.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면, 힐즈버러 참사와 소름끼치는 유사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좁은 지역에 매우 많은 사람들(매우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고, 군중 관리에 실패해 결국 육체적, 감정적으로 큰 인명 피해 및 부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사회 공동체의 양심(마음)을 흔들어 놓았죠.
비록 그 당시에는 소셜 미디어가 없었지만, 우리의 재앙은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포착됐습니다.(토너먼트는 매우 핵심적인 국가 행사입니다.) 그래서 초기 뉴스와 루머가 더욱 빠르게 퍼졌죠. 지난 주말 한국의 재난으로부터 보고된 초기 보고서와 새로운 통계가 발표되는 것을 보자, 곧장 힐즈버러 참사 당시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이 편지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깊은 충격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내게 일어난 일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는 데 적어도 3일이 걸렸습니다. 나중에, 이런 트라우마로부터 우리 뇌가 우리를 보호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원, 조문, 꽃, 그리고 다른 추모와 의례의 메시지들은 처음 며칠 동안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나를 붙잡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충격이 사라지자, 현실에 대한 대안적인 이야기들이 뉴스 및 다른 매체에서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책임이 없었지만, 당국과 그곳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재난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난은 예측 가능하고 예방 가능하며, 심지어 예견된 것이라고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또 한번의 충격을 주었어요. 단순히 안전에 대한 영역 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직하게 공개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영역, 그리고 이에 대한 그들의 역할까지 저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경찰 등의 역할이 빠르게 주목 받고 있을 겁니다. 참사 초기단계에는 상충되는 주장들로 정치적인 어젠다를 만드는 무대가 손쉽게 만들어진다는 걸 저는 이제야 알겠어요.
그 당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 즉 그곳에 있으면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증명할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접근할 소셜 미디어도 없었고, 우리의 계정과 이미지를 공유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몇 주 전 발생한 인도네시아 경기장 참사와 마찬가지로, 지난 주말 여러분들은 그런 접근(소셜미디어 등)이 가능했지요. (여러분은) 정보와 증거를 신속하게 수집, 분석 그리고 공유해 무슨 일이 언제 있었는지 증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힐스버러 참사 직후,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처음 며칠과 몇 주는 비난의 목소리가 바뀌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 때 명백한 진실이 무엇인지, (참사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됐는지 소리치고 싶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은폐가 이뤄지고 있었거든요.
생존했다는 죄책감... 그러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게 최악의 지점은, '생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시작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반복할 수 없는 고통의 장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공포가 사방에 펼쳐졌을 때,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무작위로 일어났을 때, 당신이 움직일 수조차 없음에도 다른 사람을 구해야만 한다고 느꼈을 때, 혹은 당신 자신만을 구할 수 있었을 때...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고 그 상황을 계속 떠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상황을 겪고 있다면... 비록 압도적으로 고통스럽게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정상이고, 이런 생각과 감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통제하지 못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때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쓰지 마세요 |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군중 패닉' 또는 '우르르 몰림' 등의 상처 주는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면서 틀린 용어가 이렇게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또한, '군중 범죄'와 같이 느슨하게 정리된 개념이 얼마나 많은 왜곡된 인식을 형성하는지도요.
이와 같은 표현은 이같은 압사 참사에 휘말린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암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확하며, 의도했건 아니건 피해자들에게 책임감과 죄책감을 씌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군중 관리 전문가들이 이같은 용어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게으른 언론인과 무지한 논객들을 질책해도 괜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다면, 숙고해보길 바랍니다. 이같은 용어 사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이해하길 바랍니다. 제발, 이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마세요. |
힐스버러 참사 뒤 나를 도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