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가이드] 이 책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등록 2006.01.02 09:34수정 2006.01.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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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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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2005년 한해 동안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더불어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라는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이 새삼 가슴을 저며오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하지만 일본의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이 쓴 몇몇 역사서들이 그나마 아쉬운 대로 위안을 주었던 2005년 한 해이기도 했다.

기존에 소개되었던 <미래를 여는 역사> <세계의 역사 교과서> 등이 쟁점 혹은 일본 근현대사에 편중된 데 반해 이번에 출간된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봤다. 또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맞물리는 주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크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곡되고 편향된 일본의 기존 역사서들 속에서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려는 일본의 참된 시민들의 모임인 역사교육자협의회의 노력이 낳은 진정한 '대안 교과서'라 할 수 있다(동아시아/1만6천원).

[역사] <오랑캐의 탄생>-니콜라 디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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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오늘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중국사의 범위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범주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중국 고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에 기인한 것이 현재 한중 관계에 있어서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문제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변방 땅까지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하여 통일된 중국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사기(史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집필 의도에 저해가 되는 변방의 흉노족을 '오랑캐'라는 야만민족으로 치부해 중국적 세계질서에 종속된 존재로 탈바꿈해 버렸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랑캐의 탄생>은 2000여 년간 전해 내려온 이러한 '중화와 오랑캐'라는 화이사관(華夷史觀)에 이의를 제기하며 <사기>에 기록된 변방 민족의 실제모습을 추적, 유목민들의 '참' 역사를 밝혀 냄으로써 "종래의 중화(中華)주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중국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며 학계의 극찬을 받은 책이다.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 연구소에 재직 중인 니콜라 디코스모 교수.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중국사라는 점 또한 우리들의 충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이 때까지 보지 못했던 참신한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사다. 나아가서는 아시아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과 기준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황금가지/2만원).

[역사]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안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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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중앙

10·26을 소재로 한 한석규·백윤식 주연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을 앞두던 지난 2005년 초, 박지만씨의 상영 가처분 신청은 자식된 도리로 어느 정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에 삽입된 부마 민주항쟁과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등 다큐멘터리 장면이 영화가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며 삭제를 명령한 법원의 판결에 의해 영화가 누더기 필름으로 개봉할 수밖에 없었던 사태를 보면서 불편함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제주 4·3 사태, 인혁당 사건, 6·25 기간 중의 민간인 학살, 5·18 광주 항쟁 등 최근 들어 과거사 청산과 진실 규명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부분은 '완전한 규명'을 떠나 일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전 국민들이 반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으로 1979년의 바로 그 10·26 사건의 주요인물인 김재규 등을 직접 변론했던 안동일 변호사의 생생한 재판기록지라 할 수 있다. 안 변호사는 재판을 위해 모든 사실적 기록과 자료 등을 직접 작성, 확인했다. 우리 나라 현대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이제서야 남기게 되는 안타까움과 후세에도 전할 수 있다는 반가움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랜덤하우스중앙/1만5천원).

[역사] <우리말의 탄생>–최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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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함께

이 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50여년 간 민족 격동기에 오직 우리말 사전인 <조선말 큰 사전>의 완성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사전 제작 편찬사다. 이 책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책의 제목이 <우리말 사전의 탄생>이 아닌 <우리말의 탄생>이라고 제명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우리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식민지 시절, 우리의 민족혼을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곧 '언어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발로로서 우리말 사전 편찬 사업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이 사업은 해방 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현재 우리 민족의 생각과 정신을 표현해 낸 최초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편찬된 우리말 사전인 <조선말 큰 사전>은 진정한 의미의 '제2의 우리말 우리글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험난했던 <조선말 큰 사전>의 편찬과정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저자 최경봉 교수의 노고가 어려있는 수많은 자료와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50년간의 큰 사전 편찬사를 살피기에는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빼앗겨 영원히 사장될 뻔한 조선말 큰 사전의 원고 뭉치를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의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찾게 되는 시작부터가 흥미진진함을 넘어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책과함께/1만4900원).

[문화] <끝나지 않는 신드롬>-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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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역사

전작 <근대의 책 읽기>를 통해 책 읽기의 근대사를 밝힘으로써 문학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호평을 받은 저자 천정환이 스포츠 민족주의를 통해 조선의 근대성 형성과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든 대중적인 신드롬에 주목한다.

그 중심에는 단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보여준 손기정 선수의 우승이 있다. 식민지 민족의 열등감은 손기정 선수의 우승으로 말미암아 우월감으로 환치됐고, 우리 민족 모두가 단번에 자랑스런 '민족'으로 새삼 거듭날 수 있었다.

이 때 발생한 일장기 말소사건은 바로 스포츠 민족주의를 통해 완성될 수 있었던, 식민지 체제하의 조선인들이 보여준 '민족'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극일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한 예가 아니었을까?

'식민지 조선 시대사'라는 다소 암울하고 딱딱한 주제를 스포츠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이용해 풀어나감으로써 교양과 재미를 적절히 버무린 기내식 비빔밥과 같은 이 작품은 짜증나는 삼복더위에도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의 탁월한 역사교양서가 아닌가 싶다(푸른역사/1만5천원).

[문화]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비교역사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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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스트

전통적으로 '영웅'이란 존재는 민족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반 대중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소수의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영웅의 존재가 근대의 특정한 한 시기인 파시즘(독재)체제에서 새로운 존재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대중 영웅'이다.

파시즘 체제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민들에 대한 효율적 지배와 규율화였다. 이를 위해 탄생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대중 영웅. 대중 속에서 탄생한다는 친숙함과 동시에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국가와 민족이란 대의를 위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바람직한 삶의 가치와 자세로 재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권력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만나는 상징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는 이처럼 파시즘 체제를 통해 만들어진 대중 영웅의 이미지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그들이 국민 정체성 형성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독일·프랑스·구 소련·중국·북한·한국 등 역사적 실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아울러 기존의 역사적 영웅들이 함께 전유되고 있는 특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한 때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비춰졌던 이승복 어린이를 오랜만에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휴머니스트/2만원).

[문화] <국보 이야기>–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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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박물관

10년간 문화재 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이광표 기자가 자신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국보 1호 숭례문부터 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좌상까지 정리한 책.

기존의 도록이나 백과사전류에서도 접할 수 있었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문체로 쓰여져 접근이 쉽지 않았던 국보 문화재에 대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보에 얽힌 사연이나 궁금했던 점들을 흥미로운 이야기식 구성으로 펼쳐내고 있다.

2005년 한 해 이슈화 되었던 숭례문 국보 1호 논쟁과 일제의 석굴암 팔부중상 부가(附加) 문제를 비롯하여 '숭례문은 국보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일까?' '개인소장품도 국보로 지정될 수 있을까?' '가짜 국보 거북선별황자총통의 전말은?' 등 해답을 얻기 힘들었던 궁금증들이 이 한 권을 통해 말끔히 해소된다.

더욱이 문화재 전문기자다운 세련된 안목과 500여장이 넘는 풍부한 사진 자료를 통해 우리의 국보 문화재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 훼손 문제 및 도난과 약탈, 심지어 가짜 국보 등장 등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처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전문기자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우리의 국보 문화재를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 외에도 '국보'라는 상징성 보다는 소중한 우리 문화 유산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접근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작은박물관/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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