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백성들이 마냥 가엽다

[누가 이 나라를 지켰는가 29] 함평 - 심남일 의병장 (3)

등록 2008.03.12 18:13수정 2008.03.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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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신광 덕동재에 있는 남일공원 ⓒ 박도

전남 함평 신광 덕동재에 있는 남일공원 ⓒ 박도

 

남일공원

 

올해 아흔한 살이신 심남일 의병장 며느님 백옥련씨의 배웅을 받으며 월야면 계림리를 떠났다. 손자 심만섭(65)씨가 자청해서 할아버지 기념공원을 안내하겠다고 우리 차에 함께 탔다. 심한 청각장애로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고 필담이나 손짓, 또는 눈치로 대충 알아들을 뿐이었다.

 

그가 손짓하는 대로 가자 차는 함평 읍내를 거쳐 신광으로 향했다. 함평은 자그마한 고장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시가지가 깨끔하고 정비가 잘 돼 있었다.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 일정을 기획하면서 함평군에 심남일 의병장 후손에 대해 전화로 문의하자, 담당공무원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준 탓인지 무척 정감이 갔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자 핸들을 잡은 고영준씨가 한 말씀 거들었다.

 

"함평 대단한 곳이여. 나비축제로 유명하제. 군수도 국회의원도 똑 소리 난당께."

 

심만섭씨의 손짓에 따라 신광으로 가는 고개를 넘자 곧 계곡 깊숙한 곳에 남일공원이 나왔다. 언저리 조경도 잘 돼 있었다. 심만섭씨는 뭔가 많은 얘기를 했지만 절반 정도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동문서답인 경우가 많아 거기서 비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 일행은 기념비 앞에 묵념을 드린 뒤 언저리를 한 바퀴 돌고는 귀로에 올랐다. 이 고을 사람들에게 좀 더 장군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고개를 넘어 동네를 찾았다. 하지만 여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로 빈 집이 더 많았고, 어쩌다가 만난 이들은 남일공원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었다.

 

수난 삼대

 

고영준씨가 오후에 집안일로 서울에 가야 한다기에 함평군청에 들르지 못하고, 심만섭씨조차도 집까지 모시지 못한 채 함평읍에서 택시를 잡아 태워 드린 후 광주로 달렸다.

 

“어찌 의병 후손이나 독립투사 후손들은 지지리도 못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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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마루에 걸려 있는 심남일 의병장 영정 ⓒ 박도

후손 마루에 걸려 있는 심남일 의병장 영정 ⓒ 박도

고영준씨는 심만섭씨 뒷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닌 양 탄식했다. 당신 증조할아버지 녹천(鹿川) 고광순(高光洵)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키자 일제는 녹천의 집에다가 불을 질렀다.

 

녹천의 벙어리 아들 재환(在桓)이 항거하자 일군들은 칼로 하체를 마구 찔렀다. 악랄한 일제 칼날이 재환의 고환을 상하게 했다. 외아들 재환은 사내구실을 할 수 없어 대가 끊어지자 하는 수 없이 양자를 들였다.

 

시간에 쫓겨 충분한 답사를 하지 못하고 강원 산골 내 글방에 돌아와 이 답사기를 쓰면서 부족한 점을 함평군에 문의하자, 곧장 친절하게 이천수 신광면장을 연결해 주었다.

 

이 면장은 나와는 생면부지인데도 남일공원 일대 지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나는 신광면으로 가는 고개가 ‘덕동재(일명 갓점)’라는 것도, 기념비가 선 자리가 거의(의병을 일으킨) 장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남일 장군 후손들도 하나같이 반일투사로 감옥을 드나들었다는데, 해방되기 전해인 1944년 장군 손자 상국(相國)씨의 아들(銘燮)에게 징병 영장이 나오자 아버지 심상국씨는 일제 영장을 찢어버리고 봇짐을 싸 지리산 깊숙이 들어갔다고 한다(누구는 일군에 입대하는 걸 영광으로 알고 자원하였는데).

 

그 무렵 심만섭씨는 일제 군경의 눈을 피해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잠자다)하다가 그 후유증으로 청각장애를 일으켰다니 세간에서 나도는 “독립가문 후손은 삼대가 망하고, 친일파 후손은 삼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예라고 하겠다.

 

새로운 을사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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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에 있는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 ⓒ 박도

광주공원에 있는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 ⓒ 박도

누가 이 나라를 지켰는가?

일제에 강점당한 나라를 어떻게 찾았는가?

 

빼앗긴 나라와 우리말 우리글을 찾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이나마 반 토막 난 나라를 우리 겨레 힘으로 이를 생각보다 실용을 내세우며 벌써 과거에 얽매지 말자고, 우리말 우리글을 제치고 초등학교 상급학생들부터 영어로 교육하자는, 새로운 을사오적 같은, 국적에 의심이 가는 정신 나간 이들을 나라의 지도자로 받드는 이 땅의 백성들이 마냥 가엽기만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새, 고영준씨는 나를 광주공원에다 내려다 주고 서울 가는 채비를 하고자 급히 당신 집이 있는 창평으로 떠났다. 마침 양진여 의병장 후손 양일룡씨가 광주공원 시립복지회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공원에 있는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에 절을 드리고자 함이었다. 내가 무심코 '참배'라는 말을 쓰자, 양일룡씨는 그 말이 일제의 찌꺼기라고 못 쓰게 하셨다. 의병장 후손답게 항일정신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철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적당히 처신하여야 잘 사는 나라에서, 아직도 항일정신에 똘똘 뭉쳐 있으니, 사대주의자들이 마구 행세하는 세상에 여태껏 매우 구차하게 사시나 보다.

 

나라야, 백성이야 어찌 되었건, 제 입 치레나 처자식 호의호식에 혈안이 된 이들이 주류로 행세하는 세상에 어찌 양심과 도덕이 뿌리를 내릴 수 있으랴. 앞으로 더욱 기상천외한 범죄와 야바위꾼들이 번창하다가 또 이 나라를 망칠까 산골 서생은 몹시 염려스럽다.

 

우리 두 사람은 광주공원 어귀에 있는 ‘의병장남일심공순절비(義兵將南一沈公殉節碑)’에 깊이 절을 드리고, 나는 다음 순례지인 매천 황현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고자 광양행 광양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호남 현지답사로 이번 회가 늦었습니다. 다음 회는 심남일 의병장 생애편입니다. 이 기사는 김철수 지음 <의병대장 심남일 장군>, 이태룡 지음 <의병 찾아가는 길>을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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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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