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의 불임치료까지 반대한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박재원의 건의에 대해 홍국영이 발끈한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박재원이 중전에게 양의를 구해주자고 한 배경에는 홍국영의 세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홍국영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재원의 건의는 신하의 입장으로서 쉽게 반대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박재원이 어떤 의도에서 건의했건 간에, 그 내용은 주군의 부인인 중전의 불임증을 치료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신하 된 사람이 함부로 반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홍국영이 공식석상에서까지 박재원을 비난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홍국영이 중전을 미워하는 한편 무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중전의 불임증을 치료하기 위해 좋은 의사를 붙여주자는 제안까지 결국 무산시킨 점, 또 원빈의 양자인 이담(완풍군 혹은 상계군)을 정조의 후사로 세우려 한 점 등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홍국영이 어떻게든 효의왕후의 몸에서 정조의 후사가 출생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점이다. 자신과 무관한 효의왕후의 몸에서 혹시라도 후계자가 출생하면, 홍씨 가문의 세도에 부정적 영향이 생기리라는 계산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효의왕후에게 양의를 붙여주자는 제안에 대해 정조 임금이 당시에는 거부 입장을 밝혔지만 그것이 정조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점은, 훗날 정조 재위기에 박재원이 홍문관부제학(정3품)으로 추증된 데에서 드러난다.
정조 임금 역시 박재원의 충정을 잘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그의 제안을 배척한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부인의 불임증을 치료하자고 나선 박재원을, 정조 임금은 속으로는 고맙게 생각했던 것이다. 박재원의 건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지만, 홍국영의 세도 하에서는 정말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홍국영이 죽고 난 뒤에 정조가 박재원을 홍문관부제학으로 추증한 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건의를 올린 박재원에 대한 고마움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순조실록> 순조 21년(1821) 8월 7일자 기사에 수록된 '효의왕후 행장'(행장은 망자의 일생을 기록한 글)에서도 "홍국영이 패한 후에 (정조가) 특별히 박재원의 관직을 추증함으로써 그 충성을 드러내었다"(國榮敗特贈在源官以旌其忠)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예들을 통해, 정조 임금도 홍국영의 전성기 때에는 홍국영 앞에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동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전의 불임증을 치료하기 위해 좋은 의사를 붙여주자는, 이 너무도 당연한 제안을 올린 박재원에 대해서까지 공식 석상에서 비난을 퍼부을 만큼, 홍국영은 효의왕후를 한편으로는 미워하고 한편으로는 무시했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에 하나라도 효의왕후가 임신을 하는 날에는 자신의 세도가 무너질 수 있다'는 홍국영의 과도한 우려가 낳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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