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는 '고급 문화'일 수밖에 없다

[사진말 29 : 사진에 말을 걸다 172~177] 사진을 찍는 내 꿈

등록 2008.12.08 14:45수정 2008.12.09 11:35
0
원고료로 응원
a

예전 사진기 한창 부지런히 들고 다니면서 내 몸과 다를 바 없던 사진기를 잃어버리거나 도둑을 맞으면, 사진기 다시 장만하는 데에 들어가는 돈보다 여러 해 손때가 묻은 자국을 더 만질 수 없기 때문에 가슴이 쓰립니다. ⓒ 최종규


[172] 사진기 도둑 : 그동안 사진기를 세 번 도둑맞았습니다. 사진기를 도둑맞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기계 하나 장만하려고 한두 해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산 기계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사진기에 담긴 필름 때문에 속이 쓰려서입니다. 기계에 돈을 모으면 다시 장만할 수 있지만, 사진기에 담긴 필름은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는 모습이거든요.

a

책읽는 아이 사진 책읽는 사람이 있고, 저 스스로 책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책방 나들이를 그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책방 나들이를 그치지 않는 동안에는 책방 모습과 책읽는 사람과 책시렁 발자취는 제 사진에 차곡차곡 담기게 됩니다. ⓒ 최종규


[173] 잊어버리고 있던 필름 : 책상 위에 얹어놓고 있던 책을 갈무리하다가 반 해쯤 앞서 찍었던 필름 한 통을 보았습니다. 스캐너로 긁으려고 책 위에 얹어놓았다가 그만 깜빡 잊고 그 위에 다른 책을 하나 올리고 둘을 올리는 사이 잊어버렸지 싶어요. 뜻밖에 만난 필름을 가만히 살피니 하나같이 제 뜻대로 잘 담은 사진,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게 웃었던 사진입니다. 그런데 왜 이 필름이 사라진 줄 모르고 있었을까요. 스캐너로 필름을 긁으며 왜 ‘이상하다. 그때 이런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안 보이네.’ 하고만 생각하고, 안 보이던 그 필름을 안 찾고 그냥 지나쳤을까요. 늘 제 곁에 있었던 셈인데, 안 보이니 없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그 헌책방에 다시 찾아가서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을는지. 다음에 그곳에 다시 가서 그 모습을 거의 똑같이 찍는다고 해도 아주 비슷한 사진일 뿐, 지난날 그 자리에서 찍은 그 사진이 아닌데.


a

사진찍기란 오래도록 살아온 고향마을을 사진에 담다 보면, 즐겁게 웃음짓는 모습과 함께, 슬프게 울밖에 없는 모습을 담아야 합니다.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해’라는 목소리에 따라 허물리는 골목집과 골목가게를 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 최종규


[174] 사진 찍기 쉬움 : 자기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으면 되지요. 자기가 보기에 좋다고 느껴서 찍으면 되고요.

a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웃고 싶은데, 웃으면서 찍을 골목이며 헌책방이며 사람이며 자꾸만 자취를 감춥니다. 눈발 살짝 흩뿌린 낮에, 눈이 아직 골목에 남아 있는 모습을 좇으며 골목길을 헤매면서, 겨우나기를 하는 빈 꽃그릇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 최종규


[175] 내가 찍고 싶은 사진 :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내 키높이와 내 손느낌을 살리면서 한 장 두 장 찍으며 차곡차곡 모아 놓고 싶습니다. 뽐낼 마음은 없으나 누구한테나 탁 트인 자리에 열어 놓으면서 나누고 싶습니다. 부러 깎아내릴 마음은 없으나 언제까지나 고개숙이고 배우며, 사진 찍는 내 매무새와 눈길을 추스르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176] 사진찍기는 고급 문화 : 예전부터 ‘사진찍기’는 고급 문화나 고상한 취미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돈 많은 이들이 한갓지게 누리는 놀잇감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사진찍기에는 돈이 적잖이 듭니다. 먼저 기계값이 들고 필름값이 듭니다. 요사이는 디지털사진기가 나와서 필름값은 안 들지만 메모리값이나 다른 부속 값이 듭니다. 그리고 디지털사진기를 보려면 셈틀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난날 필름으로 사진 찍던 때하고 그다지 ‘돈 나갈 일’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a

자는 방과 아기와 깊어가는 밤, 오줌을 누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달래며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깊은 밤이 되어야 비로소 일손을 붙잡게 되는데, 깊은 밤에마저 아기는 자기 옆에서 안 자면 울음을 그치지 않겠다면서 저를 부릅니다. ⓒ 최종규

그런데, 자동차 타고 다니는 이들을 두고 ‘고급 문화’라느니 ‘고상한 취미’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자동차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사진찍기와 견줘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차값과 보험삯과 기름값과 ……) 자동차 몰기를 놓고는, 얄궂게도 ‘돈 많이 쓰는 고급 문화’라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필름값에 들이는 돈을 헤아리면, 여느 사람들 한 달 옷값하고 비슷하거나 이보다 적은 셈입니다. 여느 사람들 술값과 견주면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옷 사입는 사람들을 보고, 술 사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고급 문화’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화장품 사서 바르는 아가씨를 가리켜 ‘고급 문화’를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십만 원 안짝 되는 신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분들이 필름 한 통에 몇 천 원(흑백필름)이나 만 원 안팎(슬라이드필름) 한다고 이야기하면 화들짝 놀랍니다.


다른 사진쟁이들은 모르는 노릇이지만, 제가 사진 찍는 매무새를 돌아보면, 사진 한 장 찍는 데 쓰이는 돈크기로 따져 보았을 때, 사진찍기는 그다지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자기 몸에 익숙하게 붙지 않았으니까 필름 한 통 값이 비싸다고 느낄 뿐입니다. 필름 두어 통 값이, 또는 서너 통이나 대여섯 통 값이 요즈음 책 한 권 값입니다. 책 한두 권 값이, 또는 서너 권 값이 술자리 한 번 마련할 때 쓰는 돈크기와 비슷합니다(가볍게 소주나 맥주 한잔 하는 사람들과 빗댈 때). 두툼한 겨울옷이라든지, 양복 한 벌 값하고 견주면, 사진기 몸통 값하고 비슷하거나 이보다 싸곤 합니다. 썩 좋은 렌즈 하나 값은 꽤나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렌즈 하나로 스무 해뿐 아니라 서른 해도 그대로 쓰는 일을 생각한다면, 옷값과 댈 때에는 대단히 적은 돈을 들이는 셈입니다.

고급 문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문화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제 생각으로 문화란, 써야 할 자리에 알맞게 돈을 쓰고, 군더더기나 쓰잘데없는 곳에는 돈을 안 쓰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기 눈길과 눈높이로 세상을 부대끼는 일거리나 놀잇감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사진은 ‘문화가 맞’고, ‘고급 문화가 맞’구나 싶습니다. 적은 돈으로도 오래오래 즐길 수 있는데다가, 우리 살림살이가 허튼 데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알뜰히 추스를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하는 문화이니까요.


a

김유정역 간이역이 된 ‘김유정역(옛 신남역)’에 서는 기차는 많지 않지만,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뀐 뒤로는 제법 섭니다. 그러나 기차 시간을 맞추기 수월하지 않기에, 인천에서 길을 나선 때는 아침이었어도 김유정역에 닿을 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역이름 나오게 사진을 담고 싶었으나, 역 알림판에 불이 들어오면서 그만 ‘여기에 왔노라’ 하고 또렷하게 남기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사진에 제대로 못 담게 되더라도, 우리 세 식구는 김유정역에 닿아 춘천 다른 모습을 몸으로 받아들였으니, 이대로도 좋습니다. ⓒ 최종규


[177] 사진을 찍는 내 꿈 :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를 일이다만, 내가 사진감으로 삼은 헌책방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현직을 떠나게 되는 그날,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하는 말과 함께, 그 헌책방에서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하나하나 엮어서 은퇴선물로 드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사진 #사진말 #사진찍기 #사진기 #사진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딸이 바꿔 놓은 우리 가족의 운명... 이보다 좋을 수 없다
  5. 5 전화, 지시, 위증, 그리고 진급... 해병 죽음에 엘리트 장군이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