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이승만 "관우 장비가 사령관이라도"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12회] '반달'

등록 2009.02.27 13:04수정 2009.02.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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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애인을 둔 좌익 간호사

 

"오 간호사는 좋겠네. 평양에 낭군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

"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참, 그런데 우리 인민군이 간 곳마다 너무 참혹하여 눈을 뜨고 다닐 수가 없대요."

 

"그렇게 전투가 비참했나?"

"국군과 미군은 전투는 하지도 않고 도망치기에 바쁘답니다. 일본에서 온 미군은 경비나 서며 일본 여자들을 건드리던 건달들이라서 제대로 총을 쏠 줄도 모른다고 해요. 하기야 그러니까 벌써 대구까지 밀려났겠지요."

 

김성식은 오현자의 말이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뭐가 참혹하다는 건가?"

"인민군에게는 총 한 번 제대로 못 쏘고 도망치는 것들이 내려가면서 좌익들의 씨를 말리고 있대요. 그러다 보니 무고한 양민들까지 마구 학살해서 그 끔찍한 현장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거죠."

 

김성식은 오현자의 말을 죄다 믿을 수는 없었다. 오현자가 북측의 교양교육에서 들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현자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 나온 좌익들이 인민재판으로 남한 군경을 무자비하게 처단했다는 소문이 내려갔는지 국군과 미군의 좌익 소탕도 도를 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남한 군경의 좌익 소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워낙 많이 벌어지다 보니 서방 기자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해 7월 초 AP통신 기자 킹 특파원은 '공산주의자거나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 60명을 총살했다'는 수원경찰서장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맥아더가 수원을 방문한 이틀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킹 특파원은 미 육군 군사고문단에게, "이 같은 강제 처형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 질문했지만 미군 장교들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아 충격적이었다"고 술회했다.

 

남한 군경은 수천 명의 정치· 사상범을 대전 외곽으로 끌고 가 즉결 처형한 후 구덩이에 매장했다. 그리고 미군 소령이 이 처형 장면을 촬영했다. 그 후 주한 미국대사관 무관 밥 에드워드 중령은 워싱턴의 육군본부 정부참모부에 낸 보고서에서, "1950년 7월 첫째 주 대전에서 1,800명의 정치· 사상범이 3일 동안 처형당했다"고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의사 고정술이 들어오자 오현자는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고정술의 얼굴에는 깊은 시름이 배어 있었다. 고정술은 불안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교수님, 이거 시국이 무섭습니다."

 

고정술은 교회 장로로서 평소 이승만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임을 김성식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인민군에게 당할 줄 알았더라면 그는 필경 피난을 갔을 것이었다. 고정술은 라디오 방송을 믿고 서울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줄줄이 달려있는 그가 이제 피난을 가기는 불가능해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승만과 미국을 믿고 있었다. 그는 한층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들이 미국의 저력을 모르고 잘못 덤빈 것입니다."

 

고정술은 요즘 박광태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광태가 사람을 병원 주변에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정술의 집무 테이블 뒤 벽에 걸려 있던 <최후의 만찬> 그림도 떼어지고 없었다. 그는 요즘 잠을 못 이뤄 성경을 읽으면서 밤을 지새운다고 했다. 김성식은 남이나 북이나 다 같은 우리 민족이니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료실에서 나오니 오현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에게 구급약 봉지를 건넸다.

 

바닥빨갱이 박광태의 딸 미애 

 

김성식은 배밭골을 향해 걸었다. 이미 북한산 위로 반달이 올라와 있었다. 수려한 산자락에 음영을 주는 밝고 환한 반달이었다. 개천 물소리가 유달리 쇄락하게 들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한 저녁 기운에 그는 근심과 적적함을 모두 잊었다. 그는 나지막이 노래를 웅얼거려 보았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그는 길 옆 숲 가까이 있는 바위에 가 걸터앉았다. 미풍이 불자 풋풋한 배 향기가 느껴졌다. 배 향기는 그의 얼굴 언저리에 머물다가 정밀한 달빛에 녹아 흐르는 듯했다. 숲과 달빛이 점묘처럼 퍼져 있는 여름밤이었다. 그는 성냥을 켜달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통통하게 차오른 반달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저 반달도 인민공화국의 것은 아니겠지?'

 

얼마 후 그는 집에 가서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솔잎을 털고 난 그는 오솔길로 올라섰다. 그는 다시 반달을 올려다보았다. 동네 입구에 이르러 가게 앞을 지났다. 마을이 오히려 숲보다 더 고요한 듯했다.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왠지 마을의 정적을 깨면 안 될 것 같아서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가 그는 선뜻 놀랐다. 달빛을 머금고 있는 한 처녀의 얼굴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박광태의 딸 미애였다. 미애는 하얀 얼굴로 김성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달빛 아래에서 윤기 나는 머리칼이 쓸려 내려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미애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서 김성식의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말하곤 하던 처녀였다. 자기 아버지의 고발로 김성식이 인민군에 붙잡혀 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고맙구나. 밤길에 혼자 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려무나."

 

그는 젖어 있는 미애의 눈을 외면하면서 다시 하늘 위에 반달을 쳐다보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미애도 잘 자거라."

 

사악한 부모를 둔 착한 자식은 언제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미애는 아버지 박광태와는 심성이 전혀 다른 아이였다. 어떻게 그런 아버지 밑에 저리도 착한 딸이 있을 수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어서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싶었다.

 

김성식이 보았던 반달이 오동통하게 차오른 것은 불과 이틀도 안 되어서였다. 이른 저녁을 먹은 조수현은 배밭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그녀는 어젯밤 읽은 고전소설 <심생전>의 감동을 가슴에 묻어 두고 있었다. 조선 시대 길에서 마주치는 남녀의 섬광 같은 사랑을 담고 있는 단편소설이었다. 열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심생이 야밤에 여인의 집에 월담해 들어가 구애하자, 당황한 낭자는 방에 자물쇠를 채우지만, 설렘과 미련 때문에 밤새 적삼에 손을 얹고 잠을 못 이룬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어서 전쟁이 끝나 평양 보통강 언덕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금세 남해바다로 쫓겨날 것 같았던 남조선 군대는 미군의 지원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완강히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머지않아 조국이 통일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미군과 유엔군의 개입이 적극적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물론 남조선의 이승만 정부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승만은 전면전 발발 후 정부 주도의 성급한 후퇴와 한강다리 폭파로 인한 무고한 인명 희생 등에 대해 책임지기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승만은 기만적으로 서울을 버리고 간 것에 대한 비판이 일자 '합심해서 한 길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당국의 흠집을 가리어 인심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애국자의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나라나 이러한 경우에는 정상적인 유지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제갈공명이 국무총리가 되고 관우와 장비가 총사령관이 된들 어떻게 공산군의 장총과 대포와 전차를 막아내었을 것인가?" 라고 되물었다고 했다. 

2009.02.27 13:04 ⓒ 2009 OhmyNews
#이승만 #좌익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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