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손수 불을 지펴 밥을 하며 얻은 이야기들은 몸과 마음에 고이 새겨지게 됩니다.
고산산촌유학센터
.. "고쿠분 씨, 아이들한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면 돼요. 부모들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라 줍니다. 특히 도모는 방목해서 키우는 게 좋아요." … 돈을 들여 바쁜 틈을 내어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만들어 준 것을 함께 맛보는 것만으로 좋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애써 과일주도 만들어 음료 코너도 만들어 주었는데 아무도 가 주지 않았다 .. (167, 131쪽)3호선 끝 대화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려 합니다. 내내 서서 왔더니 다리가 아프고 등허리가 쑤십니다. 가방 가득 짐을 메고 왔더니 허리를 굽히기도 힘듭니다. 일산집에 닿으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굽히고 쉬어야 할 듯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얼굴을 살짝살짝 엿봅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던 때하고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용산과 종로3가에서 갈아타며 본 서울사람들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괴롭고 찌푸려진 얼굴일 뿐입니다. 하기는, 길을 다니는 사람들로서 무슨 웃고 핀 얼굴이 되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느 길이 우리한테 웃음과 밝음을 선사하는 길이 되랴 싶습니다. 온통 물건 사고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 가게만 넘치고 있는 길인걸요. 다리 아픈 사람이 잠깐 쉬었다 갈 만한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길인걸요. 버스역이나 전철역이라고 걸상이 제대로 있던가요. 시골길은 아예 사람이 걸어다닐 틈마저 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보도블록이라고 있지만 갖가지 걸림돌이 길에 깔려 있는데다가 가게마다 내놓은 물건 때문에 걸리적거리고 수많은 자동차가 버젓이 불법무단주차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보도블록을 거닐면 찻길에서 차에서 내는 소리며 바스라지는 바퀴 고무가루며 매연이며 엄청납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전화를 받으면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만, 길에서도 차소리 때문에 전화가 잘 안 들립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올라탑니다. 사람들은 서로 새치기를 하려고 몸을 밀고 밀칩니다. 히유. 기다리며 맨 마지막에 탑니다. 버스에 타서 손잡이를 미처 못 잡았으나 버스는 부웅 하고 급발진을 합니다. 버스기사는 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립니다. 다른 찻길 차들이 빵빵거려도 버스기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신호를 어기며 네거리에서 꺾고 달리고 ……. 엊그제에도 이랬고 지난주에도 이랬습니다. 오늘처럼 내일모레도 마찬가지일는지. 엊그제와 지난주에도 '버스이용불편신고엽서'를 뽑아들어서 보내려 하다 말았는데, 참지 말고 신고엽서를 보내야겠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다른 손님들도 버스가 이처럼 마구 내달리고 있어도 신고를 않으니, 버스기사도 버스회사도 함부로 휘젓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신고엽서를 보낸들 얼마나 나아질까 모르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하여도 거칠고 아슬아슬한 버스를 타면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야겠습니다.
.. 4월 1일. 아침부터 가랑비가 뿌렸다. 아침 식사 전에 아이들은 뒷산으로 버섯 균을 식균하러 나갔고, 부모들은 가까운 다카카리산에 올랐다. "너희들이 오늘 아침에 먹은 표고버섯은 3년 전에 형이랑 누나들이 균을 심어서 키운 것들이란다. 이제부터 야사카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희들도 형이란 누나들처럼 잘해 주리라 믿어." 아침 라디오 체조 시간 뒤에 아오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물질의 생성 과정을 알게 되고, 타인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를 알아 가게 되나 보다 .. (51쪽)탄현동 로데오거리에 내립니다. 제법 늦은 저녁이라 옷가게에 손님이 거의 없을 테지만 문을 닫고도 가게 안 불은 끄지 않습니다. 간판 불도 그대로입니다. 장사를 하는 동무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밤에도 간판불을 끄지 않는 까닭이 광고 때문이라던데, 문을 내린 옷가게에서도 간판이나 가게 안 불을 끄지 않는 까닭은 광고 때문일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켜 놓은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느끼'거나 '마음이 끌리'거나 '익숙한 모습'이 되면서 나중에 그곳에 가서 옷을 사게 된다는 뜻일까요.
풀포기 하나 만지기 어렵지만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는 동네입니다. 흙땅 하나 밟기 어렵지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는 동네입니다. 아파트마다 꽃밭이 마련되어 있으나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자리는 그냥 지나치게 되는 자리이고, 나무에 새싹이 돋고 새잎이 나고 새꽃이 피어도 가만히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없게 되리라 봅니다. 길에 자동차는 넘치고 아파트마다 불빛 환하며 옷가게마다 새로 나온 옷이 그득한데, 이 길을 걸어 일산집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뻑적지근합니다. 뒷목이 당기고 으슬으슬합니다.
이러한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내고 학교를 다닌다면, 누구한테나 이곳이 고향입니다. 이 동네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는 아파트마을이 고향마을입니다. 저희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재개발을 해야 하여 사라지게 되는 집이지만, 그래도 고향마을입니다.
어쩌면 고향이라는 곳을 처음부터 만들어 놓지 않게 하려는 아파트이고, 고향이란 없어도 된다고 여기게 하려는 우리 산업사회 도시 문명인지 모릅니다. 한 곳에 오래도록 뿌리내리면서 동네 이웃과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조촐하게 꾸리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하면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며 더 많이 쓰는 삶이야말로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려는 도시 삶터인지 모릅니다.
벌어서 쓰는 흐름은 있으나 얼마나 벌어야 알맞는지를 잊게 된다고 할까요. 움켜쥐고 누리는 흐름은 있으나 무엇을 움켜쥐어야 좋은가를 잊게 된다고 할까요. 쓰는 즐거움이란, 누리는 즐거움이란, 함께하는 즐거움이란, 또 나누는 즐거움이란 처음부터 찾아보지 않도록, 아니 잊어버리도록 한달까요.
집이 집이 될 수 없고, 동네가 동네가 될 수 없는 데에서만 지내왔던 옆지기가 도시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느끼겠습니다. 히유, 한숨을 쉬면서 우리 세 식구 앞날을 걱정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우리가 조용히 깃들 보금자리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