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는 아주 작은 몸짓은

[책읽기가 즐겁다 255] 고쿠분 히로코, 《산촌 유학》

등록 2009.03.26 14:04수정 2009.03.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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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산촌 유학
- 글 : 고쿠분 히로코
- 옮긴이 : 손성애
- 펴낸곳 : 이후 (2008.7.4.)
- 책값 : 12000원

 (1) 집과 마을


 겉그림.
겉그림.이후
"이 책을 읽고도 시골에 갈 생각을 안 한단 말예요?" 하고 묻는 옆지기한테, "우리가 갈 만한 시골이 있어야지." 하고 대꾸합니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이 앞날을 생각할 뿐 아니라, 우리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도시 살림이 아닌 시골 살림이 우리한테 걸맞고, 우리들뿐 아니라 이웃들 삶을 헤아려서라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 집이라도 더 늘어야 마땅합니다. 마음은 도시에 없습니다. 그러나 몸은 도시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내 한 몸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내 한 몸만 떠나서 될 일인가 싶습니다. 우리가 시골로 간다고 하여도 우리네 세상 흐름을 돌아보면, 시골 구석까지 파고드는 아파트에다가, 값싼 논밭과 산을 사들여 공장을 지으며, '서울-인천' '서울-부산'으로 하여 엄청난 물길을 내는 공사가 거침없이 밀어붙여집니다. 2020년까지 고속도로 숫자가 지금보다 곱절로 늘어난다 하고, 그 뒤에도 끝없이 새 고속도로를 닦을 텐데, 고속도로뿐 아니라 고속국도는 훨씬 더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옆지기는 시골에서 살림을 꾸려 보지 못했고, 저는 시골에서 세 해 반 남짓 살림을 꾸려 보았습니다. 제가 살림을 꾸리던 마을은 스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아주 외딴 조용한 산골마을이었다지만, 한 해 두 해 공장이 늘고 인삼밭이 늘면서 공기가 도시 못지않게 나빠졌습니다. 도시처럼 자가용이 씽씽 내달리지 않으나, 집집마다 자가용 없는 데가 없고 짐차 없는 데가 없으니 자동차 숫자는 적어도 매연은 늘 있습니다. 쓰레기가 나오면 집집마다 알아서 태우고, 농사를 지은 비닐을 또 태우니, 언제나 쓰레기 재와 연기가 날립니다.

찻길을 넓히는 공사는 마을 바깥에서 끝없이 이루어졌으며, 차가 거의 안 다니는 잘 닦인 고속국도가 하나 놓여졌음에도 바로 그 옆에 또다른 고속국도가 닦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또다른 고속국도 하나를 닦는 모습을 보았고, 이 고속국도가 다 닦이기 앞서 그 산골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무렵, 제가 지내던 외딴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가까운 곳에도 공장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 이런 산촌 유학이 시골에서 머무는 하숙이나 홈스테이와 다른 점은 생태 교육에 대한 철학과 교육관을 가진 활동가나 농가 부모가 산촌 유학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 정해진 시간과 빠듯한 일정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배우는 맛보기 체험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시골 농가의 삶을 몸으로 익히게 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 자신이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고 지켜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산촌 유학은 그것을 자연이라는 위대한 교사 밑에서, 말 그대로 몸을 통해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현실에서는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울고 웃는 나였다 ..  (258, 153쪽)

나라안에도 틀림없이 《산촌 유학》에 나오듯 '산마을 배움터'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 보지 못했으나,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산촌 유학'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배움과 나눔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큰 다음이 아닌, 바로 지금 옆지기네 어린 동생(저한테는 처남)을 그곳으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로서는 처남이든 우리 아이이든, 산마을 배움터에 보내는 일을 하기 벅찹니다. 살림이 빠듯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클 때, 인천에 있는 대안학교이든 다른 데에 있는 대안학교이든, 제도권 교육에서 홀가분한 배움터에 보내는 일 또한 살림이 빠듯하여 이루지 못할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가 나중에 컸을 때 입시학원에 보낼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입시학원이 아닌 다른 학원에 보내기 버겁습니다. 그때가 되면 조금 나아질는지 모릅니다만, 나아진다고 한들 얼마나 나아지랴 싶고, 나아진다고 하여 섣불리 입시학원에 아이를 몰아넣는 일이란 하나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망가지고, 우리는 우리대로 마음이 무거우면서 우리 마음도 다치니까요.

 산마을 배움터를 다니는 아이들.
산마을 배움터를 다니는 아이들.고산산촌유학센터

.. 채식의 효과가 있었는지 몸이 조금 가벼워진 아이는 이제 무려 2시간 이상 걸어서 야자부에서 돌아왔다. 배도 고프고 피곤했지만 재미있었다며 다음날에도 시도했지만 귀가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역시 도시는 재미없어. 빌딩은 매일 봐도 똑같지만 나무는 볼 때마다 다르거든." … 하지만 3년차 여름방학이 끝나고 돌아갈 때, 도모는 마치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저는 역시 도쿄가 싫어요. 친구들은 텔레비전 게임만 하고 야사카처럼 다 같이 함께 놀 수가 없어요." ..  (207∼208, 200쪽)


지금 지내는 집이 이태 계약이 끝나고 방을 뺄 날이 다가옵니다. 새로 얻어 살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아직 마땅한 방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옆지기는 도시를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꾸준히 합니다.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고, 고속도로와 철길과 공장과 물길과 인삼밭과 농약농법 들에서 훌훌 벗어나 있는 시골마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바지런히 찾으면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이러한 마을을 찾는 한편으로, 앞으로 도시에서 남아 살림을 꾸리는 동안에는 도시에서도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마음'으로 우리 일을 하고 우리 이웃과 어울리며 우리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작은 하나가 되든, 작은 하나마저 되지 못하든, 우리 식구는 어느 곳에서 살아가더라도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며 땅ㆍ바람ㆍ물을 고마워하는 가운데 책 하나 즐길 줄 아는 매무새를 가꾸고 싶습니다.

입으로 외는 믿음이 아닌 몸으로 나누는 믿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머리에 채우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땀흘리는 슬기를 닦고 싶습니다. 한두 푼이나마 벌어들인 돈으로 우리 은행계좌를 불리기보다 한두 푼 적은 돈이라 하여도 이웃과 나누는 살림을 가꾸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뜻을 품지 못하여도 우리 스스로를 바꾸는 뜻을 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지 못하여도 우리 살림살이를 바꾸는 꿈을 꿉니다. 지구사랑이나 나라사랑이나 고향사랑과 같은 커다란 일은 바라지 못하여도 내 몸과 내 마음을 사랑하는 자그마한 일을 바랍니다.

오늘 하루 쓰는 글 한 조각을 사랑합니다. 오늘 하루 찍는 사진 한 장을 사랑합니다. 오늘 하루 빨아 널고 개는 기저귀와 여느 빨래 한 점을 사랑합니다. 오늘 하루 씻어 불리고 안쳐 냠냠짭짭할 콩팥 섞은 누런쌀밥 한 그릇을 사랑합니다. 오늘 하루 손에 쥐어 밑줄 그어 가며 읽는 책 한 권을 사랑합니다.

제가 발디디며 살아가는 이곳에서 제 나름대로 꾸리는 삶을 사랑합니다. 제가 몸 부대끼며 지내는 이곳에서 제 깜냥껏 일구는 삶을 사랑합니다. 제가 몸뚱이 누이며 숨쉬는 이곳에서 저 스스로 돌보는 삶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손수 거둔 먹을거리를 들고 나와서 팝니다.
아이들이 손수 거둔 먹을거리를 들고 나와서 팝니다.고산산촌유학센터

.. "농가에서 제일 좋은 것은 언제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겁니다. 일하고 있는 아버지를 볼 수가 있고, 같이 모여 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교육입니다." 하고 아오키 선생님은 말한다 ..  (118쪽)

아이 얼굴과 몸에 갑작스레 생겨나 퍼지던 아토피가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젖을 먹이는 옆지기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아이 몸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했을 텐데, 우리 식구가 마시는 바람과 물 때문에도 아이 몸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결핵을 안고 살았다 하는데, 배불리 못 먹은 탓에다가 고되게 일을 한 탓, 그리고 깨끗하지 못한 물과 바람을 마신 탓이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 결핵이지만, 그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는 아토피입니다. 아토피 말고도 수많은 새로운 병이 끝없이 나타납니다. 유전자를 건드리고, 항생물질을 쏟아내고, 화학물질이 넘쳐나기 때문에, 우리 몸이 이런 어마어마한 흐름에 견디지 못하고 말썽이 생깁니다.

우리 아이한테도 찾아온 아토피를 보면서, 환경병이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을 가꾸지 못하면 환경병은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 모두한테도 퍼지게 됨을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더 많은 물질문명 누리는 이 흐름을 끊지 않으면 환경병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인 우리한테도 짙게 그늘을 드리우게 됨을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덜 쓰고 덜 사고 덜 버리는 가운데 더 나누고 더 사랑하고 더 아끼는 삶으로 거듭나면서 자본주의 소비사회 고리를 떼지 않으면 환경병은 더 크고 무시무시하게 우리를 잡아먹고야 말겠다고 느낍니다.

지나치게 쓰기 때문이니까요. 넘치게 누리기 때문이니까요. 마구 쏟아붓고 함부로 버리기 때문이니까요. 알맞음을 잃었으니, 골고루를 버렸으니, 차근차근을 잊었으니.

 손수 거둔 푸성귀를 먹는 맛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기 마련입니다.
손수 거둔 푸성귀를 먹는 맛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기 마련입니다.고산산촌유학센터

 (2) 길과 동네

인천에서 일산으로 오는 길에 동네 골목길을 살짝 에돌며 걷습니다. 아기와 옆지기를 생각해서라도 좀더 서둘러야 할 길이지만, 5분쯤은 나한테 쓰자고 생각하며 골목을 사뿐사뿐 거닐면서 구석자리 햇볕 잘 안 드는 자리에도 피어난 개나리를 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막 봉오리 올리는 꽃송이를 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골목 가득한 꽃그릇마다 새잎이 돋은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도시에서는 봄이 골목부터 찾아옵니다. 골목 가운데에서도 손바닥 텃밭을 일구고 스티로폼 농사를 짓는 골목에 먼저 찾아옵니다. 기껏 서너 평쯤 될까 싶은 작달막한 텃밭에 고랑이 가지런히 만들어져 있습니다. 겨우내 쓰던 연탄재를 바수어 놓았고, 먹고 남은 찌꺼기를 삭여서 섞어 놓았습니다. 말랑말랑해진 흙은 봄비를 맞으면서 더 말랑말랑해질 테고, 흙힘이 살몃살몃 살아나면서 2009년 올 한 해도 기쁘고 흐뭇하게 온갖 푸성귀가 넘치겠구나 싶습니다.

.. 초ㆍ중ㆍ대학교까지 학원이 몰려 있고, 야스쿠니 신사는 아이들 통학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새싹이 돋는 나무들과 꽃봉오리에 눈을 줄 수 있을까? … 나는 부모로서 하나의 가치 선택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성적, 입시, 편차 등 좁고 위험으로 가득 찬 도시의 수많은 규칙들, 그 속에서 부모는 자식을 속박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반발한다. 매일 잔소리꾼이 되어 가는 나 스스로에게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도와야 할지 생각하게 한 것도 동기 중 하나이다 ..  (250, 219쪽)

전철역에 닿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와 저잣거리를 걸으니 다시 겨울입니다. 아니, 무슨 철인지 모르겠습니다. 타는곳에서 전철을 기다립니다. 이곳에서도 무슨 철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전철을 탑니다. 자리를 못 얻어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섭니다. 이곳에서도 무슨 철인지 도무지 알쏭달쏭입니다.

앉거나 선 사람들 얼굴을 가만히 둘러봅니다. 모두들 뚱하거나 찌뿌둥하거나 차갑거나 어둡습니다. 굳게 다문 입술이거나 손전화에 대고 큰소리로 재잘대는 입술입니다. 맑게 웃는 얼굴이나 환하게 펴진 얼굴을 찾기 어렵습니다. 너무도 고단한 얼굴이며 참으로 지친 얼굴입니다. 모두들 무슨 일을 하기에, 모두들 어떤 살림을 꾸리기에, 모두들 무엇을 바라거나 꿈꾸며 지내는 삶이기에, 이다지도 괴롭고 힘겨운 매무새여야 할까요. 틀림없이 시골마을에도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봄기운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을 텐데, 도심지 한복판과 전철ㆍ버스 같은 데에서는 아무런 봄기운이 피어날 수 없을까요. 아무리 지치고 고달픈 하루하루요 일이요 삶이라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신나는 삶자락을 추스를 수는 없을까요.

 아이들이 손수 불을 지펴 밥을 하며 얻은 이야기들은 몸과 마음에 고이 새겨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손수 불을 지펴 밥을 하며 얻은 이야기들은 몸과 마음에 고이 새겨지게 됩니다.고산산촌유학센터

.. "고쿠분 씨, 아이들한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면 돼요. 부모들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라 줍니다. 특히 도모는 방목해서 키우는 게 좋아요." … 돈을 들여 바쁜 틈을 내어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만들어 준 것을 함께 맛보는 것만으로 좋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애써 과일주도 만들어 음료 코너도 만들어 주었는데 아무도 가 주지 않았다 ..  (167, 131쪽)

3호선 끝 대화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려 합니다. 내내 서서 왔더니 다리가 아프고 등허리가 쑤십니다. 가방 가득 짐을 메고 왔더니 허리를 굽히기도 힘듭니다. 일산집에 닿으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굽히고 쉬어야 할 듯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얼굴을 살짝살짝 엿봅니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던 때하고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용산과 종로3가에서 갈아타며 본 서울사람들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괴롭고 찌푸려진 얼굴일 뿐입니다. 하기는, 길을 다니는 사람들로서 무슨 웃고 핀 얼굴이 되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느 길이 우리한테 웃음과 밝음을 선사하는 길이 되랴 싶습니다. 온통 물건 사고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 가게만 넘치고 있는 길인걸요. 다리 아픈 사람이 잠깐 쉬었다 갈 만한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길인걸요. 버스역이나 전철역이라고 걸상이 제대로 있던가요. 시골길은 아예 사람이 걸어다닐 틈마저 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보도블록이라고 있지만 갖가지 걸림돌이 길에 깔려 있는데다가 가게마다 내놓은 물건 때문에 걸리적거리고 수많은 자동차가 버젓이 불법무단주차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보도블록을 거닐면 찻길에서 차에서 내는 소리며 바스라지는 바퀴 고무가루며 매연이며 엄청납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전화를 받으면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만, 길에서도 차소리 때문에 전화가 잘 안 들립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올라탑니다. 사람들은 서로 새치기를 하려고 몸을 밀고 밀칩니다. 히유. 기다리며 맨 마지막에 탑니다. 버스에 타서 손잡이를 미처 못 잡았으나 버스는 부웅 하고 급발진을 합니다. 버스기사는 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립니다. 다른 찻길 차들이 빵빵거려도 버스기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신호를 어기며 네거리에서 꺾고 달리고 ……. 엊그제에도 이랬고 지난주에도 이랬습니다. 오늘처럼 내일모레도 마찬가지일는지. 엊그제와 지난주에도 '버스이용불편신고엽서'를 뽑아들어서 보내려 하다 말았는데, 참지 말고 신고엽서를 보내야겠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다른 손님들도 버스가 이처럼 마구 내달리고 있어도 신고를 않으니, 버스기사도 버스회사도 함부로 휘젓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신고엽서를 보낸들 얼마나 나아질까 모르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하여도 거칠고 아슬아슬한 버스를 타면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야겠습니다.

.. 4월 1일. 아침부터 가랑비가 뿌렸다. 아침 식사 전에 아이들은 뒷산으로 버섯 균을 식균하러 나갔고, 부모들은 가까운 다카카리산에 올랐다. "너희들이 오늘 아침에 먹은 표고버섯은 3년 전에 형이랑 누나들이 균을 심어서 키운 것들이란다. 이제부터 야사카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희들도 형이란 누나들처럼 잘해 주리라 믿어." 아침 라디오 체조 시간 뒤에 아오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물질의 생성 과정을 알게 되고, 타인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를 알아 가게 되나 보다 ..  (51쪽)

탄현동 로데오거리에 내립니다. 제법 늦은 저녁이라 옷가게에 손님이 거의 없을 테지만 문을 닫고도 가게 안 불은 끄지 않습니다. 간판 불도 그대로입니다. 장사를 하는 동무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밤에도 간판불을 끄지 않는 까닭이 광고 때문이라던데, 문을 내린 옷가게에서도 간판이나 가게 안 불을 끄지 않는 까닭은 광고 때문일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켜 놓은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느끼'거나 '마음이 끌리'거나 '익숙한 모습'이 되면서 나중에 그곳에 가서 옷을 사게 된다는 뜻일까요.

풀포기 하나 만지기 어렵지만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는 동네입니다. 흙땅 하나 밟기 어렵지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는 동네입니다. 아파트마다 꽃밭이 마련되어 있으나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자리는 그냥 지나치게 되는 자리이고, 나무에 새싹이 돋고 새잎이 나고 새꽃이 피어도 가만히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없게 되리라 봅니다. 길에 자동차는 넘치고 아파트마다 불빛 환하며 옷가게마다 새로 나온 옷이 그득한데, 이 길을 걸어 일산집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뻑적지근합니다. 뒷목이 당기고 으슬으슬합니다.

이러한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내고 학교를 다닌다면, 누구한테나 이곳이 고향입니다. 이 동네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는 아파트마을이 고향마을입니다. 저희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재개발을 해야 하여 사라지게 되는 집이지만, 그래도 고향마을입니다.

어쩌면 고향이라는 곳을 처음부터 만들어 놓지 않게 하려는 아파트이고, 고향이란 없어도 된다고 여기게 하려는 우리 산업사회 도시 문명인지 모릅니다. 한 곳에 오래도록 뿌리내리면서 동네 이웃과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조촐하게 꾸리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게 하면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며 더 많이 쓰는 삶이야말로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려는 도시 삶터인지 모릅니다.

벌어서 쓰는 흐름은 있으나 얼마나 벌어야 알맞는지를 잊게 된다고 할까요. 움켜쥐고 누리는 흐름은 있으나 무엇을 움켜쥐어야 좋은가를 잊게 된다고 할까요. 쓰는 즐거움이란, 누리는 즐거움이란, 함께하는 즐거움이란, 또 나누는 즐거움이란 처음부터 찾아보지 않도록, 아니 잊어버리도록 한달까요.

집이 집이 될 수 없고, 동네가 동네가 될 수 없는 데에서만 지내왔던 옆지기가 도시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느끼겠습니다. 히유, 한숨을 쉬면서 우리 세 식구 앞날을 걱정합니다. 너무 늦지 않게 우리가 조용히 깃들 보금자리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놀이가 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꾸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배우게 됩니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놀이가 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꾸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배우게 됩니다.조희은

 (3) 《산촌 유학》이 말하는 배움터

미국이나 유럽 같은 앞선 나라로 보내는 '유학'이 아닌, 자기가 살아가는 나라에서 '도시 → 시골'로 보내는 유학을 이야기하는 《산촌 유학》을 읽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일을 놓고 '유학'이라고 말할 줄 아는 일본은 참으로 놀라운 나라로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골살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일 수밖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한테 시골살이는 모조리 배움입니다. 거꾸로, 시골에서 살던 사람한테도 도시살이란 몽땅 배움일 테지요.

그러면, 도시사람이 시골에서 배우는 삶과 시골사람이 도시에서 배우는 삶은 어떠하겠습니까. 두 가지 배움과 삶은 어떠하겠습니까. 얼마나 배움다운 배움이며 얼마나 삶다운 삶이겠습니까.

.. 나는 신주쿠의 부도심이 싫다. 눈부신 유리창을 반짝이며 쭉쭉 뻗은 고층빌딩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이 저렇게 거만해도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대지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몇 백 년 간 살아온 나무를 잘라내고 콘크리트에 땅을 가두고 세워진 수많은 고층빌딩들. 자연은 그런 인간들의 건방에 보복하지 않을까? ..  (160쪽)

"머물면서 배운다"고 하는 '유학(留學)'입니다. '산촌 유학'이란 "산마을에 머물면서 배운다"는 소리입니다. "산마을 배움터에서 삶을 꾸린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산촌 유학》을 쓴 고쿠분 히로코 님은 왜 당신 아이를 산마을로 보내어 그곳에 머물게 하면서 삶을 배우도록 했을까요. 당신은 왜 아이와 함께 산마을로 가지 않았을까요. 아이가 산마을에서 배워야 하는 무엇인가 있었다면, 그 무엇은 당신 스스로 아이와 함께 배울 때 더 나았을 테며, 아이뿐 아니라 당신 삶을 한껏 북돋우거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글쓴이는 아이가 산마을에서 배우는 데 들어가는 삯을 벌어야 했으니 도시에 머물밖에 없었으리라 봅니다. '산마을 배움터'도 어버이는 도시에서 돈을 벌고 아이는 시골에서 삶을 배우도록 맞춰져 있으리라 봅니다. 몸과 마음을 한 흐름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배움이요 삶입니다만, 어쩔 수 없이 매여 있는 사람들한테는, 그나마 좋은 다리잇기로 구실하리라 봅니다. 아직 더 크게 힘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차츰차츰 새로워지는 길닦이 노릇을 하리라 봅니다.

산마을 배움터에 아이를 보내자면, 먼저 아이가 도시에 있는 제도권 학교에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입시학원도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를 입시지옥에 넣을 생각을 처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아이가 도시에서 돈 잘 버는 월급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영어니 지식이니 학력이니 하는 어떠한 끈하고도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만큼이라도 힘을 내어 아이를 산마을 배움터로 보내는 일이란, 어버이로서는 어마어마하게 애써야 하는 일이며 어려운 다짐이며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는 조그마한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신나게 뛰어놀지 못한 아이들은 즐겁게 일하는 삶을 얼마나 배우게 될까요.
신나게 뛰어놀지 못한 아이들은 즐겁게 일하는 삶을 얼마나 배우게 될까요.박경화
.. 지금 도쿄로 가면 스모그로 오염된 공기와 콘크리트, 일에 쫓겨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공기 좋은 지방으로 내려가 새 직장을 얻어 둘이 조용하게 사는 게 좋은 건 아닐지 고민되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늘 하던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도쿄로 돌아와 예전 일로 복귀하고 내가 조금만 더 분발한다면 수입은 탄탄할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일도 할 수 있고, 사정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여기서 어린이집과 회사를 오가면서 아이가 잠들고 나면 일을 하는 분주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허락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말을 걸었다. "어머나, 꽃이 피었네." "새싹 나온 것 좀 봐." "새가 날아왔구나." 부모가 애써 알려 주지 않으면 사계절의 변화 같은 건 그대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 도시 생활이다 … 그러던 어느 날 이 작은 골목까지 자동차들이 밀고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부터는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가슴 졸이며 지내야 되는데다가,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날에도 아이들이 민들레광장이라고 부르는 공터가 없어지고부터는 운동 부족으로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도모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  (22∼24쪽)

산마을 배움터로 갈 수 있는 집안에서는 산마을 배움터로 가야 합니다. 제도권 학교를 거스를 수 있는 집안에서는 제도권 학교를 거슬러야 합니다. 입시학원을 내칠 수 있는 집안에서는 입시학원을 내쳐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영어나 지식이나 학력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다른 무엇이 있다고 느끼는 집안에서는 영어학원이나 지식외우기나 학력늘이기가 아닌 다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을 아이와 함께 손을 맞잡고 걸어가야 합니다.

《산촌 유학》을 쓴 일본사람 고쿠분 히로코 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산마을 배움터'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느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이때에 어느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가면서 아이를 사랑하고 믿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 사랑과 믿음을 어떻게 키우고 북돋우고 가꾸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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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유학 - 우리는 시골로 유학 간다!

고쿠분 히로코 지음, 손성애 옮김,
이후, 2008


#교육책 #인문책 #책읽기 #산촌유학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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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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