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CEO 눈에는 돈·권력밖에 안 보이나"

[取중眞담] 국정원까지 등장한 광양제철소 제방 붕괴 사고

등록 2009.10.20 12:39수정 2009.10.20 12:39
0
원고료로 응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a

조뇌하 포스코 광양제철소장이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와 관련 여야 의원들의 질책을 받았다. ⓒ 최경준

"'정준양 확약서', 다 지켰습니까?" (박대해 한나라당 의원)
"시행하고 있습니다." (조뇌하 포스코 광양제철소장)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영산강유역환경청. 증인으로 나온 조뇌하 소장은 박대해 의원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박 의원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몇 년 전 광양제철소 소장이었을 때, 국정감사에서 환경오염 실책을 지적 받고 '정준양 확약서'를 작성했다"며 "기업이 존경을 받으려면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의원은 "시행하고 있다"는 조뇌하 소장의 답변에 대해 "다 시행했는데 이런 사고(8월 23일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가 터졌느냐"며 "지역 언론에서 제방이 이상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무시해놓고 다 했다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조 소장은 다시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런 부분도 다 경청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 소장의 답변을 들은 광양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날 오전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온 국회의원들을 향해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은 "철면피 포스코를 혼내주세요"라고 외쳤다. 오후 국감이 열린 영산강유역환경청 정문 앞에서도 그들의 원성은 끊이지 않았다.

"철면피 포스코를 혼내주세요"

'정준양 확약서'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던 2004년 국감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광양제철소장이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제 또 오늘 제철소에서도 그랬고 위원님들이 여기 들어오실 때도 환경운동연합에서 여러 가지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국민기업인 광양제철소로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광양만권 전체 지자체, 시민단체와 서로 협의하겠고, 지금 광양시에서 협력위원회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니까, 거기에 적극 참여해 가지고 풀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준양 회장은 이듬해 5월 ▲ 환경개선협의회 구성 ▲ 환경조사 실시 ▲ 민·산·관 환경협약 체결 ▲ 환경정보의 신속한 공개 ▲ 연간 환경보고서 발간 및 배포 ▲ 불측 환경사고 대책 및 환경훼손 복원 등 10개 항목이 담겨 있는 확약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5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조 소장은 "확약서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날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주식 전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 이날 여야 의원들의 질의 과정에서 포스코가 얼마나 광양만 주변 환경 개선 의지가 없었는지 명백히 드러났다.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의 직접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 광양지역 환경오염의 주체이자, 환경 문제를 풀어 가는데 앞장서야 할 주체인 포스코의 '무신경'이 이번 환경 재앙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5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국정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날 국감에서 광양제철소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이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와 관련해 국정원에 '일일보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제방안전 문제에 대한 수차례의 문제제기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던 영산강환경청이 사고가 나자 대책마련은 뒷전인 채 국정원에 일일 보고하기 바빴다"(민주당 논평)는 것이다. 이는 국외정보와 국내보안정보만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정보원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도대체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가 안보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홍희덕 민노당 의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

광양지역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은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방 붕괴 사고 현장 시찰에 맞춰, 피해 대책과 재발 방치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 최경준


"국정원,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포스코와 싸워?'"

더 큰 문제는 국정원이 이번 사고에 직접 개입한 흔적들이다.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붕 붕괴 책임을 둘러싸고 포스코측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오종택 인선ENT(주) 회장은 이날 국감에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포스코와 싸우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광양시청에 있는 모 인사가 저희(인선ENT) 편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으로부터 뒷조사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추미애 위원장은 조뇌하 소장을 상대로 동호안 제방에 대한 보강 공사를 하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포스코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으려고 얼마나 로비를 했는지 아느냐"며 "여기서 왜 국정원이 등장하나. 증인의 로비 때문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사실 이번 국감을 앞두고 환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조뇌하 소장이 아닌 정준양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고 했다.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의 본질은 결국 동호안을 비롯한 광양만 전체 환경오염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정 회장의 증인 채택은 무산됐다.

추 위원장은 "지난 17대 국회 국감에서 굉장히 많은 문제를 지적했고, 그 때 이미 (정준양 회장은) 오염총량제를 하겠다고 했는데,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일부 언론과 소리 없이 죽어가는 광양주민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 국정원이 등장하니까, 이제 알 만 하다"고 꼬집었다.

a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추미애 위원장이 19일 영산강유역환경청 대상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방 붕괴 사고와 관련 조뇌하 광양제철소장을 상대로 동호안 제방에 대한 보강 공사를 하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최경준

조 소장은 이날 국감 내내 의원들의 따가운 질책을 받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제 국감이 끝났기 때문에 포스코로서는 당장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포스코는 각종 의혹에 대해 꼬리 자르기식으로 대처하다가 부정적인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광양주민과 환경단체들은 지난 5년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정준양 확약서'를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 추미애 위원장의 국감 마지막 정리 발언은 포스코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포스코가 국민의 기업인가, 정권의 기업인가? 포스코가 돈을 벌면 누구에게 돌아가나? 아니,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나? 제방도로를 모래로 편안하게 물막이용으로 쌓아놓고 그 위로 덤프트럭이 지나다니는데, (포스코는) 모르쇠로 일관하면 되나? 그렇게 해놓고 권력기관을 이용해서 겁을 주면 되는가?

(포스코) CEO 눈에는 돈 밖에 안 보이나? (포스코) CEO 눈에는 권력만 보이나? 국민들은 이 자리에 증인들로 나와 있는 여러분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철학과 개념 없는 기업 경영가와 공직자들의 말씀이 다 속기록에 남을 것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정준양 포스코 회장 #국정원 개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