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명만 빼고 다 바꿔야 산다

[정치 톺아보기] 10.3 전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으려면

등록 2010.10.01 20:25수정 2010.10.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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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되나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사옥에서 열린 TV초청토론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정세균, 최재성, 박주선, 천정배, 이인영, 손학규, 조배숙 후보. ⓒ 남소연


'제1 야당호'를 이끌 선장과 지도부를 뽑는 10.3 민주당 전당대회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일찍이 우려했던 대로 '그들만의 리그'가 된 탓이다. 그러니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과 흥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요원하다.

이번 경선은 순수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따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동시에 뽑는 통합선거 방식으로 치러진다. 1인 2표제의 대의원 투표 70%와 당원 여론조사 30%를 합산한 경선 최다 득표자는 대표, 차점자 5명은 최고위원으로 각각 선출된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도입한 국민참여 경선처럼 일반 국민의 참여를 이끌 장치가 없는 대의원과 일부 당원, 즉 '그들만의 리그'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 20%를 가미한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보다 더 폐쇄적인 체육관 선거다. 게다가 당의 '간판'인 당대표 선출에 근접한 유력후보들은 한결같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일반 국민의 참여를 이끌 견인장치도, 호기심을 자극할 참신한 새 인물과 콘텐츠가 없는 판에 관심과 흥행을 기대하기는 무망하다.

누가 당대표 되건 '카드 돌려막기'

이른바 '빅3'라고 불리는 3인은 당 대표를 역임했거나 대선후보를 지낸 인물들이다. 정세균 후보는 민주당이 7.28 재보선 패배로 비대위 체제로 바뀌기 직전까지 당대표를 지냈고, 손학규 후보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총선 패배로 정세균 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당대표를 지냈고,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정권을 내준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다. 그러니 누가 당대표로 선출되건 일반 국민에게는 '리사이클'(재생)이나 '카드 돌려막기'와 다름없다.

그래서일까?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HRC)의 9월 정기여론조사(25일) 결과에 따르면, 전체 국민은 물론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이번 전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8.7%)이 '관심 없다'(38.7%)거나 '모름/무응답'(10.0%)이었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세 명 중 한 명 꼴(33.8%)로 '관심 없다'(24.2%)거나 '모름/무응답'(9.6%)이었다.

이런 무관심은 '민심'과 '당심'의 괴리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국민참여경선은 둘째 치고 '전 당원 투표제'마저 무산되어 대의원과 일부 당원만이 참여하는 경선방식에서 일반 국민의 민심을 반영하는 장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경선을 좌우하는 대의원들의 세대와 지역 그리고 계층별 분포도 일반 국민의 그것들과는 괴리가 크다.


이를테면 지난 6.2지방선거의 유권자 연령별 분포는 ▲19세 1.7% ▲20대 17.9% ▲30대 21.4% ▲40대 22.4% ▲50대 17.2% ▲60세 이상 19.4%였다. 그런데 민주당 대의원들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20대 1% ▲30대 7% ▲40대 34%인 반면에 ▲50~70대가 50%를 넘는 '역피라미드' 구조다. 유권자의 50대 이상 비율은 36.6%인데 비해 민주당 대의원의 50대 이상 비율은 58%다. 일반 국민의 다채로운 민심을 담기에 민주당 대의원들은 너무 '노쇠'한 셈이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선거인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21.1% ▲경기-인천 28% ▲부산-울산-경남 16% ▲대구-경북 10.5% ▲대전-충남-충북 10% ▲광주-전남-전북 10.3% ▲강원-제주 4.2%였다. 반면에 민주당 대의원의 지역별 분포는 ▲서울 21.6%  ▲경기-인천 26.9% ▲부산-울산-경남 13.5%  ▲대구-경북 7.2% ▲대전-충남-충북 9.8% ▲광주-전남-전북 16.6% ▲강원-제주 4.4%이다. 이는 호남에서 강세이고 영남에서 약세인 민주당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호남의 대표성이 과잉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당의 비정상적인 대의구조와 '사당화'

민주당의 본질적인 문제는 당의 비정상적인 대의구조다. 당대표를 선출하고 당 대의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원들은 기본적으로 평당원들이 직접 선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도부의 공천권 독점으로 '내 사람'을 지역위원장에 심고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을 통해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의 대의원 분포는 선출직보다 지명직이 더 많을 만큼 기형적 구조다. 민주당은 당원이 주인이 아닌 '사당'(私黨)인 셈이다.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 겉그림. ⓒ 모티브북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때마침 10.3 전대를 앞두고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이하 <민주당이 나라를…>, 모티브북)는 도발적 제목의 맞춤형 정치 팸플릿 책이 나왔다. 전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위원장과 사무부총장을 역임한 김태일 교수(영남대 정외과)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가 공동저자이다.

영호남 출신 공저자의 '전 시당위원장'과 '전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에서 짐작하듯, 철저히 '평당원'의 눈높이에서 쓴 책이다. 당내 민주주의 강화와 진보적 당 정체성 확립으로, '2012 진보 연대'를 이루고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로 쓰자는, 영호남 출신 당원 2인의 민주당을 향한 파격적인 비판과 제언을 담은, 철저히 '민주당의 민주당을 위한 민주당에 의한' 정치학 개론서이자 정당론 교과서이자 정당 개조론이다.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그동안 끊임없이 현실에 개입해 발언해온 두 저자는 민주당에서 한국정치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그 돌파구의 시작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빛나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한국정치가 미래로 도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다.

"'붕어빵에 붕어 없고, 민주당에 민주 없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진실이다. 더 이상 민주당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계파라는 이름의 줄 세우기와 당권에 기반한 승자 독식주의만이 판을 치는 원시 정글형 세계일 뿐이다." (<민주당이 나라를…>, 37쪽)

"정당 구조부터 민주화되지 못한 오늘의 민주당은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는 '불임 정당'이 되어 시민들의 정치적 혐오증을 확산시킨다." (위의 책, 33쪽)

국민들이 인식하는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는 불임정당'

두 공동저자의 이같은 진단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케이스파트너스'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분석한 '국민 생활환경 및 정치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이 인식하는 한나라당은 '불통(不通) 정당'이고 민주당은 '불임(不姙) 정당'이다. (관련기사 : 한나라당은 '불통 정당'... 정권 재창출에 '부정적' 56%, 민주당은 '불임 정당'... 변화와 쇄신-인물교체 필요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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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존재감 없음' 한나라당은 권위적이고 늙었지만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인 반면에, 민주당은 한마디로 말해 '존재감 없음'으로 요약된다. ⓒ 오마이뉴스-한백리서치


또한 같은 조사결과에서 국민들이 인식하는 정당 정체성을 비교하면, 한나라당은 권위적이고 늙었지만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인 반면에, 민주당은 한마디로 말해 '존재감 없음'으로 요약된다. '보수'와 '성장'은 한나라당에 내주고 '진보'와 '복지'는 민주노동당이 선점하는 동안, 민주당에는 이도 저도 아닌 '잡탕 정당'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국민이 민주당에 관심도 바라는 바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관련기사 : 한나라당 '늙고 권위적, 성장 중시 보수정당', 민노당 '진보-복지 중시', 민주당 '존재감 무')

정당에게 국민의 '무관심'보다 무참하고 비참한 것은 없다. 국민은 민주당에 대해 정부여당의 실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야당,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야당, 특정정치세력이 중심이 된 폐쇄적인 야당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만년야당'이 아닌 '수권정당'이 되려면 현재의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하고 당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인물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두 공저자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민주'가 있는 민주당, 당원이 주인 되는 '당원당권론'를 주창하고, 그 전제로서 당의 비정상적인 대의구조를 정상화하자는 긴급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요체는 '당의 정상화'와 '진보의 재구성'

그것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당의 정상화'이자 '진보의 재구성'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전략의 실패와 신자유주의 경제 대응전략의 실패라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두 가지 뼈아픈 경험에서 찾은 대안이다. 두 공저자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정당정치를 망치는 세 가지 장애물로 ▲노선 갈등 ▲소수파 콤플렉스 및 패배주의 ▲선거 만능주의를 꼽았다.

정당에서 노선 투쟁은 일상적인 것이다. 문제는 "정세가 바뀔 때마다 중도적 진보 혹은 중도적 보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당의 이념적 분열증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승리는 정당의 존재 이유다. 선거에서 이겨야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이념과 노선 그리고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공저자는 승리만을 위한 선거공학적 접근과 선거 만능주의를 배격하고 오히려 '우리 안의 적'들에 맞선 '정면 승부'를 주창한다.

당내의 패배주의, 즉 '우리 편만 갖고는 안 된다'는 소수파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16대 대선 당시의 지역할거구도에서 불가피하게 승리방정식으로 동원된 'DJP연합'과 17대 대선 당시 개혁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흡수하기 위해 정몽준 '국민통합 21'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이룬 기억으로 각인된 소수파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승리'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정당은 시대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인물로 경쟁하고 승부한다. 사실 민주당이 '중도 개혁'이라는 미명 하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두루 춘풍당'을 떨쳐 버리고 '우리 안의 적들과 정면 승부'할 토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튼실하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최근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강했던 국가들은 모두 진보적인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되었다. '시대정신의 강력한 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공저자는 그것을 '권력이 시장에서 국가로 돌아오는' 신호로 규정한다.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정치와 시장 사이의 영구적인 갈등 속에서 지금은 의문의 여지없이 정치가 우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국가가 되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그 권력이 시장에서 국가로, 시장에서 정치로, 재벌에서 정치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위의 책, 102~103쪽)

'돌아온 국가의 정당한 개입'은 '진보의 길'이자 헌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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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으로 변화해야 한국 사회가 향후 지향해야 할 정치사회적 성향에 대해, 개인의 정치성향과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66.4%가 '진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오마이뉴스-한백리서치


그런 정황은 한국 사회에서도 읽힌다. 앞서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의 성향을 묻는 질문에서 모든 계층이 '보수'(66.3%)로 확연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향후 지향해야 할 정치사회적 성향에 대해서는 개인의 정치성향과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66.4%가 '진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결과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온 보수화에 대한 경계 심리와 변화에 대한 기대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사안에서도 시민들의 진보지향성이 확인된다. 개인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검증을 겸한 정책 지향점을 묻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48.6%가 '분배 중심'의 정책지향을 선택했고, '성장 중심'의 정책지향은 30.2%에 머물렀다. 또 응답자의 64.2%가 '노동자 중시'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에 '기업 중시'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11.5%에 불과했다.

그래서 두 공저자가 구현하려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가치의 출발점은 ▲민족적 측면의 통일지향적인 '평화 프로세스' ▲정치적 측면의 '강화된 민주주의' ▲경제적 측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공성 확보' 그리고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돌아온 국가의 정당한 개입'이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헌법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저자는 "헌법적 이상에 비춰보더라도 진보의 가치는 당연한 의무"라고 선언한다. 미국 헌법에도 없는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제119조 2항), "바로 이 지점에 민주당의 할 일이 있"고 "민주당이 이 지점에서 진보의 깃발을 휘날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일-최재천은 마지막으로 민주당과 당원들에게 다시 이렇게 묻는다.

"이름만 빼놓고는 다 바꿔야 한다. 역사성과 정통성만 빼놓고는 왕창 바꿔야 한다. 이와 같은 진보 정치의 실현을 위한 긴 여정의 출발점에 민주당이 있다.

다시 민주당에게 묻는다. 변할 것인가, 산화할 것인가. 선택의 민주당 몫이다. 변화하는 순간,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위의 책, 187쪽)

이 작은 책은 민주당의 운명과, 나아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대의원들이 '전국대의원대회'에 가기 전에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는 팸플릿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문고판처럼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결점은 너무 늦게 나왔다는 점이다.
#10.3 전대 #김태일 #최재천 #진보 가치 #불임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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