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도 외면했다... 박희태의 '치욕'

[取중眞담] 임기 4개월 남기고 '총체적 난국' 상징된 국회의장

등록 2012.01.19 13:44수정 2012.01.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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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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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서 소정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공항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여러 의견들이 오갔으나 그중에서 이승윤 부총리가 오늘의 이런 전반적인 사회상을 영어로 '토털 크라이시스'(Total Crisis)라고 규정했고, 참석자들이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그런데 오늘 회의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Total Crisis'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연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2006년에 쓴 '대변인' 113쪽)

총체적 난국, '정치조어의 달인'으로 인정받는 박희태 의장이 대변인 시절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로, 지금은 완전히 사회화된 용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부동산 투기광풍, 물가 급등, 주식시장 대혼란 등 경제난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자신이 '총제적 난국'에 빠진 한국 정치의 상징이 돼 버렸다.

박 의장이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건은 두 가지다. 우선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공격사건이 있다. 그의 의전비서 김아무개씨가 이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가 경찰수사를 받자 바로 사표를 받고 정리했지만, 최소한의 관리책임이 있는 박 의장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300만 원 돌려받은 전 비서 고명진... '박희태 돈봉투' 존재 이미 확인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보통의 불법자금 수수사건에 비해 그 정황이 처음부터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현직 국회의원이 액수와 전달시기와 방식, 경로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또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전달사실은 부인하면서도, 고 의원이 돌려보낸 3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했다는 점에서 '박희태 후보가 보낸 돈봉투'의 존재는 확인된 셈이다. 박 의장은 당시에는 명함도 없었고, 기껏해야 '선거용 명함'이 있었을 뿐이라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고승덕 의원은 "정치인들이 보통 명절선물 때 쓰는 이름만 적힌 흰 명함"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지역 30개 당협(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에게 50만 원씩을 돌리라고 자신의 지역구 구의원 5명에게 2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안병용건'도, 2000만 원을 받았다는 복수의 구의원들이 분명하게 관련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


'디도스 사건'은 국가기관 '공격'을 통해 선거결과를 왜곡하려 한 것이고, '돈봉투 사건'은 매표행위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드는 국기문란사건들이다. 두 사건의 직·간접 관련자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희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박 의장의 귀국 기자회견은, '6선의 정치경륜'을 기대하면서 최소한 의장직 사퇴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기대했던 한나라당 사람들까지도 실망시켰다. 박 의장에 대해 말할 때 여전히 이런 저런 존대어를 붙인 한 중진 의원은 "의장께서 검찰수사결과를 지켜보면서 판단하시겠다는 것 같다"며 "오랜 해외 순방뒤 귀국이라는 점에서 좋은 타이밍이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냉정하게 판단하는 분인데, 아무 효과도 없을 총선불출마를 꺼내놓은 걸 보면 정작 당신 일이라 상황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위원장쪽 "정말 답답... 법리적 판단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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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수사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벌인 뒤 압수한 자료를 들고 나서고 있다. ⓒ 유성호


'디도스 위기'로 등장하자마자 '돈봉투' 폭탄을 맞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쪽도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박 위원장의 한 측근은 "정말 답답하다"며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면서도 사죄한다, 검찰수사결과에 책임지겠다고 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장으로서가 아니라 고검장까지 꺼낸 검사출신으로서 법리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외체류 중 고명진 전 비서와 통화했다는 박 의장이, 고 전 비서나 안병용 위원장 등이 사건의혹을 부인하면서 검찰수사가 교착돼 있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행정부 견제의 상징인 국회의장실은 '툭하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장소가 돼버렸다.

검찰은 20일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과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 사무실, 여비서 함아무개 보좌관이 근무하는 국회의장 부속실을 압수수색했다. 조 수석은 문제의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 의장의 재무담당이었고, 이 수석은 공보담당이었으며, 함씨는 회계책임자였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15일에도 디도스 사건 관련으로 국회의장 부속실에 들어왔었다. 

검찰은 디도스 사건 때는 영장이 있음에도 임의제출 형식으로 김아무개 전 비서의 자료를 제출받았으나 이번에는 사전통보없이 압수수색을 벌였다. 4년 전 사건에, 사무실도 완전히 다른 공간이고, 박 의장측이 이미 정리 등의 대비를 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압수수색은 증거확보용이라기보다는 기선제압용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한나라당 '박희태 의장 사퇴촉구 결의안' 수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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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김유정, 이윤석, 안규백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 유성호


박 의장이 6선을 했고 당대표를 지낸 한나라당도 사실은 그를 버린 상황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어제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국회 문제이므로 여야 원내대표들이 조속히 현명하게 처리해 달라"고 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한나라당 사건을 왜 '국회문제'라고 한 것일까. 박 의장이 당적도 없기 때문에 출당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이 낸 '박희태 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수용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은 19일 본회의도 박 의장이 아니라 해외체류중인 정의화 부의장을 급거 귀국토록해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박 의장으로서는 그토록 바랐던 국가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 임기 4개월을 앞두고 퇴로없는 위기에 빠졌다.

헌정사상 최장수 대변인(4년 3개월)으로, "보라매 집회는 보람이 없었다, 여의도 집회는 여의치 않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촌철살인을 날려 온 자칭타칭 '명대변인 박희태'는 지금의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논평할까.
#박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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