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좀 냈더니, 거울 속에 돌아가신 엄마가!

[엄을순의 아줌마 이야기 ⑫] 형제들에 대한 섭섭함 거두게 한 '엄마의 마음'

등록 2012.03.22 16:20수정 2012.03.22 16:2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 싸이더스 FNH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슈퍼로 달려갔다. 돼지 목살 4근과 삼겹살 6근을 사서 부지런히 집에 돌아오니 막내 동생네 식구들은 벌써부터 몰려와 부산을 떤다.


"누나, 우리 밥 좀 줘. 아침도 못 먹고 왔어."
"그래, 해장국 데워 밥 줄게. 빨리 들어와."

아직 세수도 못했는데 저것들이 벌써부터 와서 설쳐대니 걱정이다.

"너네 식구들 다 먹을 거니?"
"아냐. 난 집에서 빵 먹고 왔고 이 사람하고 아들만 챙겨줘."

'바빠 죽겠는데. 지가 먹을 것도 아니고 자기 부인 밥 챙겨달라니… 원.' 투덜대면서도 밥에다 국에다 나물에다, 알뜰살뜰 챙겨 먹였다.

시끌벅적 오빠의 환갑 잔치... '엄마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오빠의 환갑 잔치. 나랑 7살 터울인 막내 동생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지난 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오늘 메뉴는 잡채, 삼겹살, 목살 바비큐, 각종 나물, 야채와 묵, 그리고 해장국과 가마솥 밥. 고기는 아침에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꼭두새벽부터 슈퍼에 갔더니 그동안 동생 식구들이 먼저 와서 밥 내놔라 국 내놔라 설쳐대고 있는 거다.

점심 먹기로 한 모임이니 아직 3시간이나 남았다. 마음은 분주하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잡채거리를 열심히 볶고 있는데 주인공인 오빠 식구들도 오고 시골 사는 언니며 가까운 친척들도 하나둘 다들 도착했다. 가까스로 시간 맞춰 잡채를 버무려 그릇에 담고, 가마솥 불도 지펴 밥도 안치고, 바비큐 불도 피우고 이것저것 반찬이며 김치며, 평소에 아껴둔 고급 양주도 꺼내고 와인도 따고, 야외용 테이블 하나 가득 펼쳐 놓고 보니 그런대로 훌륭하다.

4남매 중 바로 밑 동생은 캐나다에 있어서 불참을 했지만 시골 사는 언니까지 합세하고 사촌들과 그 아들 손자며느리까지 모두 모이니 어른만 20명, 집 안팎으로 바글바글하다. 사촌의 손자 손녀들은 물도 없는 개울가를 기웃거리며 돌도 던지고 바위도 들추고. 잠이 덜 깬 개구리라도 찾나보다. 가마솥에선 김이 모락모락. 바비큐 그릴에선 고소한 구운 고기 냄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잔치하는 집답다. 차려놓은 음식. 각자 알아서 먹고 마시고 뒹굴고. 이런 날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실까.

혼자서, 그것도 딸인 내가, 몸도 사리지 않고 친정식구들을 이리 거둬 먹이는 나를 보고 엄마는 얼마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까.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려 본다.

'엄마, 나 예쁘지?'

골치 아픈 짐이 되어버린 엄마... 야속하다, 야속해

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 싸이더스 FNH


5년 전인가, 엄마 돌아가시기 전 난 친정식구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남은 재산도 없이 일찍 혼자되신 엄마. 오빠가 처음에는 모시고 살았지만 새언니와의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엄마는 분가를 하셨다. 나중에 몸 거동이 힘들어지면 다시 합친다는 조건이었다. 한동안은 매우 행복해 하셨지만 엄마가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 슬슬 몸은 아파지고. 이미 떨어져 살아 본 새언니는 합치는 걸 탐탁해하지 않고. 오빠는 오빠대로 난감해하고. 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내가 모시려 해보기도 했지만 장남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엄마의 고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시절.

늘 여자 편에서 이해하려 하고, 힘든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준다고 큰소리 펑펑 치던 나. 정작 내가 개입이 되니 자꾸 전형적인 시누이 입장이 되려 하는 내 자신이 미워서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힘들면 모시지 않으려 저럴까'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그렇지, 애초부터 모셔야 될 입장이란 걸 각오하고 결혼했으면서' 하는 야속한 맘도 들고. 남동생들도 피하긴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누군가가 떠 맡아야 할, 말 그대로 골치 아픈 짐이었다.

혼자 살면 살았지 사위랑 살기는 부담스럽다는 엄마. 세상이 변했건만 딸 맘도 몰라주고. 속상했다. '엄마 모시기를 다들 피한다고? 그래, 좋다. 엄마만 돌아가셔 봐라. 오빠, 동생 아무도 안 보리라. 다 남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시더니 5개월 후 그만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제 세상천지 우리 4남매 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얼굴 자주 보자'라고 했던 오빠 말을 무시하고 난, 1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다.

'흥, 행여 짐을 맡게 될까봐 부담스러워 피해 다니더니 이제 홀가분들 하시냐? 미안하네요. 엄마 없으면 난 형제들 볼 이유가 없네 그려.'

끈 떨어진 연 신세된 형제들... '이젠 내가 돌아가신 엄마다'

매몰차게 연락도 안 하고 살다가 엄마의 첫 제삿날이 돌아왔다. 골치 아픈 짐이 없어져서 다들 가벼운 맘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웬걸. 엄마의 빈자리가 꽤 컸던 모양이다. 삼형제들이 다 풀이 죽어 있다. 만날 때마다 엄마 욕을 해대던 올케들도 조용하다.

"누나, 엄마가 해주던 김치만두 어떻게 해? 요즘 만두가 생각나면서 엄마 많이 보고 싶더라."
"여보, 엄마한테 그것 좀 배워놓지 그랬어."
"전에 만드시는 걸 봤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누난 엄마 청국장하는 거 배웠지?"
"…"

오빠나 동생이나 엄마 없이 씩씩하게 잘도 살 것 같더니만 '끈 떨어진 연' 신세인 건 나랑 매 한가지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에이그 내 새끼들. 니들 좋아하는 것 실컷 해주고 죽을걸' 하는… 그래, 알았다. 지금부턴, 내가 돌아가신 엄마다.

"내가 해줄게. 다음 주 우리 집에 모여라, 다들."

이렇게 시작한 엄마 역할. 이번 오빠 환갑 잔치 같은 이런 모임들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다섯 번 정도 열린 것 같다. 예전에 엄마가 자식들에게 그랬듯이, 아무런 이해관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그들만의 먹거리를, 그리고 만남들을 챙기고 있다.

그 많던 술이 동이 났는지 더 가져오란다. 몰래 숨겨뒀던 좋은 와인들을 몽땅 풀었다. 다들 기분 좋게 취해 흥이 났다. '시누이인 내가 왜 다 해야 돼?'란 투정 대신 '아이고 내 새끼들, 많이 먹고 건강하게 오래만 살아다오'란 마음이 드는 건, 내 생각인가 엄마 생각인가.

잔치는 끝났건만 남은 음식이 지천이다. 가는 사람들에게 봉지마다 조금씩 담아서 몇 개씩 안겨주고 배웅을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봤다. 거울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돌아가신 엄마였다. '어머! 엄마 흉내 좀 냈더니 점점 돌아가신 엄마 모습으로 내가 변해가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가 그리울 때면 거울을 보면 되니까. 내 새끼들, 가면서 운전하다 졸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엄마 #환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3. 3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