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패션'으로 원전 전기 줄이자

[주장] 공무원들, 반바지에 샌들만 신어도 전기 아껴

등록 2012.05.31 17:48수정 2012.05.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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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는 서울 시청을 한번 구경 가 볼까 한다. 새로 지은 청사도 구경할 겸 공무원도 구경할 겸. 시청사 천장에는 반투명 태양광 전지판이 붙어 있다. 그 아래에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공무원이 넥타이와 양복을 벗고,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샌들을 신고 있을 것이다.

절전과 재생가능에너지 도입으로 원전 1기를 줄이겠다고 선언한 서울시는 올여름 '쿨비즈'(Cool Biz) 운동을 넘어선 '슈퍼 쿨비즈' 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8년 전 일본에서 시작한 에너지절약 운동인 쿨비즈는 쿨 비즈니스(Cool Business)의 줄임말인데,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쿨맵시'로 용어를 바꾸어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 운동을 추진하는 공무원은 고작 넥타이 정도를 벗는 데 그쳤다. 여전히 한여름에도 긴 팔 와이셔츠에 긴 바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슈퍼 클비즈' 운동은 반바지에 샌들까지 허용한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를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믿기지 않을 파격적 조치다.

한 여름의 건물 안은 왜 이렇게 추울까?

한여름에 관공서나 은행, 업무용 빌딩을 들어설 때면 가방에 넣어 둔 긴 팔 겉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더운 여름날에는 가끔 더위를 피해서 이런 시설이 있는 건물에 들르기도 하지만, 오래 있지는 못한다. 심한 온도 차이로 피부 표면이 축축해지는 느낌까지 드니, 겉옷을 껴입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맞춤이다. 옷으로 몸의 한기가 좀 가시기는 하지만, 샌들 신은 맨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다.

밖은 30도를 넘는 무더위로 푹푹 찌는데, 건물 안은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일하는 사람의 복장이 긴 팔인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 팔, 긴 바지 양복 차림이라서 이렇게 춥게 냉방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춥게 냉방을 해서 그런 차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작년 9·15 정전사태가 났을 때, 한 대기업에서 일하던 내 조카는 냉방으로 추워서 겉옷을 입고 있었고, 정전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양복이 필요 없는 외부사원이라 겉옷을 준비한 것인데, 제한 송전이 감행되는 와중에도 과냉방은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보험 업무를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는 긴팔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그이가 안쓰러워 시원한 카페를 골라 들어갔다. 그 친구는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옷차림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편견이 한여름의 그의 복장을 규정했다는 것이다. 글쎄, 우리가 그렇게 꽉 막힌 고리타분한 사회였나 싶다.


대도시 전기소비의 대부분은 냉·난방을 위해서 쓰인다. 정부 당국은 여름과 겨울이면 전기절약의 목소리를 높인다. 일본에서도 지난 5월 5일 전기 생산의 30%가량을 차지하던 54기 원전이 모두 멈춘 뒤, 이번 여름을 원전 없이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냉방용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다. 이제 노타이를 넘어서 반바지에 샌들까지, 슈퍼 쿨비즈 운동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원전 전기 없이 여름을 무사히 나는 게 목표고, 서울시는 원전 1기 줄이는 게 목표다. 목표가 확실하니까 절전 운동이 거침이 없다. 반면, 목표가 애매한 정부 당국의 수요관리 결과는 밝히기가 무안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수일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제3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06〜2011년 사이 연평균 전력수요증가율은 2.4%로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그 배에 달하는 4.8%로 기록되었다. 전기소비를 줄이는 수요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 우리나라는 우리보다 GDP가 높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1인당 전기 소비량이 더 많다. 지난 1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으니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전기소비 증가 국가라 할 만하다.

손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원전 전기를 줄일 수 있다

전기는 다른 에너지원을 이용한 2차 에너지로 고급에너지라 할 수 있다. 전기를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자원을 낭비하고, 지구를 파괴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것은 더 아까운 낭비다. 화력이든, 원자력(핵분열 에너지)이든,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열을 생산한다. 이 열의 30~40%만이 전기가 되는데, 전기로 다시 열을 만들어 냉·난방을 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또 발생한다.

냉방 역시 열 차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열을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전기로 냉·난방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에너지가 80%는 되는 셈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손실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건물이 잘못 지어져서다. 더운 여름날에는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다. 하지만 건물 안은 냉방을 하지 않으면 그늘인데도 숨 막힐 만큼 덥다. 유리 건물일 때는 온실 효과로 그야말로 찜통이다.

한편으로는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싼 것도 문제다. 집에서는 에어컨 좀 틀었다 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데, 업무용 건물은 가정용보다 전기 요금이 저렴하고 누진율도 없어서 전기를 많이 써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환경운동연합 건물은 전기 대신 가스로 냉·난방을 한다. 전기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60~70%의 손실을 아끼는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전기로 냉방할 때보다 비용은 많이 든다.

건물의 단열을 높이고 전기요금 체계를 정상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여름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으면서 냉방 전기를 줄이는 것은 손쉽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나가서 원전 전기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하니, 그대의 멋진 쿨 패션은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아이를 지키는 멋진 선택이다.

덧붙이는 글 | 양이원영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담당국장 입니다.


덧붙이는 글 양이원영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담당국장 입니다.
#쿨비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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