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체국에서 노숙 시도... 절대 하지마세요

[시골 한의사, 미국을 달리다] 미국 자전거 횡단 60~62일

등록 2012.11.27 18:15수정 2012.11.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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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금요일

Dubois, WY - Signal mountain campground, Grand teton national park, WY
63 mile = 101.4 km


오전 5시. 로스(Ross)가 잠에서 깨 짐을 챙기고 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잭슨까지는 100마일.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조(Joe)와 가이(guy)도 어느덧 일어나 아침 식사를 서두른다.

출발 준비를 마친 로스가 내게 다가왔다. 하이파이브에 이어 사나이의 진한 포옹까지. 그와 함께 했던 지난 5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규. 또 보자고!"

기약할 수 없는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는 못 볼지도, 아니 평생 못 볼지도 모른다. 사인 그래프와 코사인 그래프가 다시 한 번 접점을 이룰 날은 언제일까.

남은 우리는 느긋하게 출발 채비를 했다. 배웅을 위해 교회 담임목사님이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 코니글리오(Frank Coniglio). 그가 처음부터 목사였던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미 공군에서 활동했던 프랭크는 근속연수 25년째 되는 해 돌연 군인의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신학대학교에 진학하여 목사가 됐다. 그 후 또다시 25년의 세월이 지났다. 어쩌면 피로 점철된 군인의 업보를 씻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칠리아 태생의 아버지와 제노바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랭크. 그의 성 코니글리오(Coniglio)는 이탈리아어로 '토끼'를 뜻한다. 성명학적으로 그는 이제야 진정한 '토끼'가 된 셈이다.

예전에 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을 상대로 선교를 자주 했던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날로 약해져 가는 미국인들의 가족관계에 비해 놀랍도록 끈끈한 아시아 사람들의 가족애.

그의 근원적 고향인 이탈리아 또한 두터운 가족 관계가 특징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5년 전 대장암으로 막내가 세상을 떴다. 담담하게 말을 잇는 그의 눈동자에 감출 수 없는 쓸쓸함이 깊게 배어 나왔다.

자전거에 짐을 다 실은 우리에게 프랭크는 평안한 여행을 기원했다. 종교의 신성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들었던 교회를 떠났다.

노익장의 페달질...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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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Joe)와 가이(Guy) 익살스러움으로 무장한 두 노익장들의 기운을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다. ⓒ 최성규


톡티 패스(togwotee pass)까지 오르는 첫 30마일은 난코스였다. 헐떡이며 옆을 둘러보니 노년 라이더들의 노익장이 대단하다. 네 개나 되는 페니어백을 자전거에 잔뜩 싣고는 쉼 없이 달린다. 속도도 나보다 빠르다. 내가 클릿 슈즈(Cleat shoes)를 신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체력이다.

지나던 트럭 운전사가 뭐라 소리를 쳤고 조와 가이는 내게 손짓을 하며 멈춰 세웠다.

"앞에 곰이 있어. 더 가면 안 돼."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우리는 조심스레 앞으로 이동했다. 마주 오던 차 한 대가 도로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가로지르는 검은색 물체들. 어미 곰 한 마리와 새끼 곰 두 마리가 도로를 넘어 산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새끼를 동반한 어미 곰은 모성본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무척 공격적이다. 어설프게 다가갔다가는 곰의 앞발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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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티 패스(togwotee pass) 가는 길 잠시 후 우리는 그토록 기대하던 야생 곰과 마주하게 되었다. ⓒ 최성규


곰 가족이 반대편 숲으로 사라지고 숨죽이던 운전자와 라이더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힘든 오르막을 간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덕분에 오늘 코스의 최고봉인 톡티 패스를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질주하다 보니 공사 안내판이 보이고 인부가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정지 표지판을 든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공사 현장과 통화를 한다.

"자전거 라이더 세 명이 도착했다. 거기 상황은 어때?"
"차량들 인솔해서 가고 있다. 그 친구들, 물 좀 마시고 있으라 그래."

순한 양이 된 듯 우리는 물통을 꺼내어 물을 마셨다. 한참을 기다리니 차량을 통제하는 픽업트럭이 나타나 우리를 자전거와 함께 짐칸에 태운다. 3마일 동안의 공사 구간을 통과한다. 불도저와 포크레인 등의 특수 차량들이 산 옆구리를 깎으며 길을 새롭게 다듬는 중이었다. 9월에 공사가 완료된다고 하는데 그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무척 궁금하다.

톡티 패스에서 20마일 정도 지나쳐 오자 캠핑장 하나가 나타난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조와 가이가 하룻밤 머물 휴식처다. 돌연 조와 가이가 속행을 결정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일러.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야. 더 가보세나."

이 양반들. 체력도 좋다. 7000피트에서 9500피트까지 2500피트를 올라와 놓고도 힘이 줄지 않았다. 우리는 그랜트 티턴 국립공원을 향해 나아갔다. 저 멀리 그랜드 티턴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꼭대기에는 순백의 만년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곰이 올 수도 있어"... 초조한 밤

"자네 티턴이 뭔지 아나?"

프랑스어로 티턴(Teton)은 여성의 젖, 유방을 가리킨다. 즉, 그랜드 티턴(Grand teton)은 큰 가슴이다. 직접 눈앞에 직면하게 되면 그 의미를 절절히 느끼게 된다. 하늘을 향해 젖가슴을 우뚝 드러낸 산맥은 신비로울 정도로 파아란 기운이 서려 있다. 웅장한 규모지만 보는 이를 숨 막히게 압박하지 않는다. 강한 듯하면서 부드러운 손길이 능선을 따라 어려있다. 태고에 생명이 시작되었던 성소인 마냥 그랜드 티턴은 우리에게 고향 같은 친근한 느낌을 안겨줬다.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진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귀청을 때렸다. 혼자였다면 황급히 피할 곳을 찾았겠지만 든든한 일행의 존재가 담을 키워줬다.

"지금도 감성적이야?"

조가 물었다. 점심 무렵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비가 오면 감성적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건 아니지. 나에게 센티멘탈함이란 두 가지 조건을 수반한다. 비를 맞지 않는 실내에 있을 것. 창가에 부닥치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홀짝일만한 여유를 지닐 것. 비에 흠뻑 젖은 생쥐마냥 춥고 배고파서야 어찌 낭만적 감상에 젖겠는가.

하늘은 시커멓지만 저 멀리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그랜드 티턴은 밝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경이롭다. 바다처럼 큰 파도가 넘실대는 잭슨 호수가 그 아래 보인다. 위대한 대 자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드디어 시그널 마운틴 캠프그라운드(signal mountain campground) 표지판이 보였다. 우리는 희희낙락해 고함을 지르며 입구로 들어섰다. 캠핑장은 이미 만원이었지만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쪽 구석에 버려진 자갈밭을 세 명이서 단돈 5달러에 빌린다. 엊저녁 식사에 대한 답례로 내가 5달러를 냈고 조와 가이는 돈 굳었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캠핑장 곳곳에 곰에 관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 냄새가 풍기지 않게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한밤중에 냄새를 맡은 곰이 다가오지 않도록 근처 철제 캐비닛에 음식 일체와 향기를 풍기는 비누, 치약 같은 제품까지 모조리 집어넣어야 한다.

캠핑 관계자에 따르면 한 해 15번 정도 곰을 사살할 수밖에 없는 위급상황이 일어난다고. 깜박해서 음식을 방치하면 굶주린 곰이 캠핑장으로 접근한다. 굶주린 곰은 매우 공격적이라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한 경우에 국립공원 측에서는 인명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곰을 사살한다.

"You don't want bear to come inside of your tent."(곰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달갑지는 않을 거야)
"He can not bear it."(성규는 견딜 수 없을 걸세)

가이(Guy)가 곰을 주의하라고 하자 조(Joe)가 재치로 받아넘긴다. '곰'과 '견디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 'Bear'를 이용한 언어유희다. 서서히 내려앉은 어둠이 대지를 차갑게 적시는 가운데 나는 곰에 대한 걱정과 추위를 온몸으로 버티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7월 14일 토요일

Signal mountain campground, WY - grant village, WY
45.5 mile = 68.4 km

곰의 습격 없이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 조와 가이는 잭슨으로 떠난다. 잭슨은 루프 코스(loop course)이기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 일정이 빠듯한 나로서는 굳이 갈 필요가 없지만 평생을 벼르고 벼렸던 자전거 여행에 도전하는 그들은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을 터였다.

몸을 자연에 맡기다... 이게 바로 여행자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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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티턴(Grand teton) 하늘과 맞닿은 듯한 산맥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 ⓒ 최성규


로스가 떠나고 만 하루 만에 또 다른 이별과 마주한다. 갈림길을 앞에 두고 우리는 악수를 건넸다.

"로스와 헤어지고 3주 만에 다시 만났어. 우리도 만날 날이 꼭 올 거야."

그랜드 티탄을 왼쪽에 두고 앞으로 나아간다. 슬금슬금 비가 내린다. 산봉우리를 적신 빗물이 산자락을 타고 잭슨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 안경에 물기가 점점이 박히면서 앞이 뿌옇다. 다시 혼자가 됐다. 옆구리가 허전했다. 고독이 두려워 제 갈 길을 회피한다면 그 또한 못할 짓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 좁은 2차선 도로를 부지런히 달린다. 관광객을 태운 차량들이 옆을 무수히 스쳐 지나간다. 비에 젖은 몸이 축축하고 오한이 들지만 후련하다. 이 정도 난관이 없다면 진짜 라이더가 아니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던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는 왜 산에 오르려 하냐는 질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게 거기에 있으니까요."(Because it's there) 나 또한 길이 있으니 그 위를 달린다.

광대한 잭슨 호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대신 루이스 호수(Lewis Lake)가 나타났다. 이제껏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하늘이 순식간에 맑아진다. 일렁이는 물결에 무수히 산란되는 햇살이 보석과 같이 반짝였다.

나무들 사이로 드러난 물가에 나아가 발을 담갔다. 청명한 호숫물이 발가락 사이를 넘나들며 온몸에 짜릿한 기운을 전해준다. 자전거 여행의 낭만은 이런 것이다. 실컷 달리다가도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자연에 몸을 내맡길 수 있다는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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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호수(Lewis Lake) 비 내리던 하늘이 순식간에 맑아지고 그림같은 호수 하나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 최성규


오늘의 목적지 그랜트 빌리지(Grant Village)에 들어섰다. 샤워실 근처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가벼운 인사치레로 시작된 대화. 내 신분을 밝히자 대화는 금세 활기가 생겼다. 멜린다 블래어(Melinda Blair).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그녀는 시애틀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동 중이다. 워낙 자연과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가는 도중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들러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즐겁게 담소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비가 다시 몰아친다. 상당히 거세다. '음, 미리 텐트를 설치해 두길 잘했군.' 앞일을 내다본 혜안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잠자리로 정했던 땅의 지대가 낮은지라 바닥에 나린 빗물이 어느새 냇물을 이뤄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어느덧 텐트 바닥에는 물이 흥건히 고였다. 방수천이라 물이 새진 않았지만 바닥은 물침대마냥 물컹물컹하고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를 어쩐담. 안에 있지도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저녁 식사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빨 수는 없는 법. 과감히 입구를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 큼지막한 천막 아래에서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저녁을 해야 하는데 자리 조금만 내줄래요?"

흔쾌히 테이블 구석을 내준 그들 덕에 난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친 나는 그들을 둘러봤다.

미국인이 물어본 미국, 제 대답은요...

남자 3명, 여자 2명으로 이뤄진 이 그룹은 몬태나 주에 소재한 가톨릭 학교 동기들이다. 학생이 1500여 명밖에 되지 않아 전공이 달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로스(Ross)와 테리(Terry)는 생물학, 세레나(Sarena)는 간호학, 짐(Jim)은 심리학, 에이미(Amy)는 교육학을 각각 전공했다. 거주지가 다양한 이들에게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딱 중간지점. 친목을 다지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는데 2박 3일간의 캠핑이 내일로 끝나게 된다.

경제침체의 여파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미국 젊은이들에게도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로스와 테리는 아직 학생 신분. 세레나는 이제 취업을 앞둔 상태. 짐은 직장에 다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 에이미만 꾸준히 교사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을 벗 삼아 우리는 근심 걱정을 맥주 한 캔에 털어 넣었다. 꼬챙이에 마쉬멜로를 꿴다. 모닥불에 갖다 대니 잼처럼 물컹하게 변했다. 두 장의 비스킷 사이에 구운 마쉬멜로를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에이미는 마쉬멜로가 들어간 비스킷을 다시 불에다 갖다 댔다. 필요 이상 열이 가해진 마쉬멜로가 바깥으로 터지며 삐져나왔다. 하얀색 덩어리가 덕지 덕지 달라붙은 과자를 먹는 그녀의 모습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여행하면서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어?"

매번 나오는 질문이다. 솔직 담백하게 말을 받았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아. 미국 정부가 그동안 약소국에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호감을 가질 수가 없지. 단,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할게. 내가 만났던 미국인들은 친절하고 상냥했어. 모두가 그런 모습일 거라 믿어. 미국 사람과 정부는 전혀 다른 존재니까."

밤이 이슥해질 무렵,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로 돌아간다. 나랑 에이미만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의 열기로 볼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말없이 새빨간 숯불을 바라보았다.

피곤한 기색이 완연했지만 그녀는 최대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에이미에게 깊은 내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밤하늘의 별이 그대로 박힌 듯 반짝이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시간이 이대로 흘러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규야. 너랑 대화 즐거웠어.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모닥불 곁을 지켰다. 발이 시렸다. 불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냥 잠들기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밤이다.

7월 15일 일요일



Grant village, WY - West yellow stone, MT
49mile = 78.9 km

한여름에 엄동설한을 겪었던 밤이다. 아주 차가운 물침대에서 잠을 잤더니 삭신이 쑤신다. 오죽하면 캔자스의 뜨거운 태양이 그리웠을까.

엊저녁의 5인방도 모두 일어나 있었다. 이들은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로 예배를 드리러 갈 예정. 우연하게도 나와 행선지가 겹친다. 그들이 탄 차는 캠핑장을 빠져나간다. 나 또한 페달에 발을 올렸다. 다시 마주칠까 하는 기대에 부지런히 속도를 올렸다.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자그마한 파란색 승용차가 경적을 울렸다.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이는 어제 샤워실에서 만났던 멜린다 아줌마가 아닌가.



그녀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녀의 몸집만큼 작은 차에는 산더미 같은 짐이 들어차 있었다. 멜린다는 집이 없다. 대신 차 안에 모든 생필품을 쟁여뒀다. 모자·휴지·세면도구·커피 포트·보온병·버너·침낭·매트리스·화분 심지어 곰돌이 인형까지.

경치는 햄버거...사람은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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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린다 블래어(Melinda Blair)의 차 내부 이제껏 이렇게 많은 물건이 차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최성규


"대체 잠은 어디서 자요?"



대답 대신 멜린다는 안을 가리켰다. 뒷좌석에 그득 쌓인 잡동사니를 옆으로 젖히니 매트리스 하나가 보였다. 여자 한 명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이었다.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기 때문에 집은 굳이 필요 없다는 반응이다. 올겨울에는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으로 집을 장만한다고 하니 그때쯤이면 유랑생활이 끝날 것인가.


우리는 함께 올드 페이스풀을 둘러봤다. 여기에는 수십 미터까지 온천물을 뿜어내는 간헐천(geyser)이 있다. 이미 두 번이나 간헐천을 구경한 멜린다가 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러 간헐천(geyser) 중에 저게 가장 규칙적이야. 1시간 30분에 한 번씩 뿜어내지."



수많은 관광객이 간헐천 주위로 넓게 원을 그리며 퍼져 있다. 곧 있을 분출을 앞두고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수줍음을 타며 몇 번 꼼지락거리던 간헐천(geyser)이 드디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다들 손뼉을 치며 야단인데 나는 금세 식상해졌다. 내 개똥철학에 의하면 경치는 햄버거고 사람은 설렁탕이다. 제아무리 좋은 광경도 보다 보면 질리지만 사람은 만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여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느끼기 위함이다.



또다시 길이 엇갈린다. 멜린다는 북쪽 5마일에 위치한 폭포를 보려 하고 나는 웨스트 옐로스톤으로 향한다. 시애틀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 주 경계선이 와이오밍에서 몬태나로 바뀌었다.

잘 곳 없어 간 우체국... 봉변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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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의 간헐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자연이 은밀한 속내를 드러내길 기다리고 있다. ⓒ 최성규


그리고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웨스트 옐로스톤(west yellow stone).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총 5개 출입구 중 서쪽 출입구에 잇닿은 곳이다.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잘 곳을 찾아 동네를 서성거렸다. 순간 여행 초반 만났던 라이더 '제이콥 버크홀즈(Jacob Birkholz)'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내가 힌드만(hindman)에서 여성 라이더 한 명을 만났는데 말이야. 정말 야생 버라이어티더구만. 우체국에서 잤대."



한국과 달리 미국 우체국은 밤에도 로비를 열어둔다. 다만 직원들이 일하던 업무 처리 창구만 셔터를 내린다. 그래, 그 친구처럼 우체국 신세를 살짝 져볼까나.



실내는 대낮같이 환했다. 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신경 쓰지 않고 텐트천을 바닥에 깔았다. 발자국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한밤중에도 사람들은 우편물을 찾으러 우체국에 드나들었고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30분도 채 안 지났을 무렵, 딱딱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소리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기둥 뒤에 엎드려 있던 나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리고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여기서 도대체 뭐하는 거야?"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는 그는 경찰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몰랐어요. 정말 몰랐다고요."



당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다가온 경찰은 내 손목을 갑자기 뒤로 꺾었다. 다른 손으로 내 몸을 아래에서 위로 툭툭 쳐댔다. 흉기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좋은 놈 같아 보이는데 왜 이런 짓을 하지?"



내 여권을 펼쳐 든 그는 본부에 내 인적사항을 조회했다. 결과를 들은 그의 안색이 누그러졌다. 한국에서 경찰서 한 번 간 일 없는 내게 특별한 흠이 있을 리가 없었다.



"험험. 암튼 아까 거칠게 대한 건 미안하네. 다 자네가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이런 데서 자다가 범죄자들의 표적이 된단 말이지."



어느새 친근해진 경찰관은 하룻밤 지낼 만한 장소를 알아봐 줬다. 시간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락을 구하고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지친 몸을 바닥에 뉘였지만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다. 생전 처음 당해본 일에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데 내가 경찰관을 만난 게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긍정의 힘으로 다시 잠을 청한다. 하아, 오늘 밤은 굉장히 길구나.
#미국 #자전거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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