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35화

어떤 '협동조합주의자'의 고백..."협동조합 바람이 위기"

[e사람]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등록 2013.04.03 10:36수정 2013.04.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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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지원센터 이사장. ⓒ 권우성


그는 스스로를 '협동조합주의자'라고 불렀다. 20여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이다. 그는 국내 몇 안 되는 협동조합 이론가다. 물론 현장경험도 만만치 않다. '농협' 이외에 다른 '협동조합' 자체가 무색하던 1990년대 초, 그는 그렇게 협동조합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3년 봄, 한국사회 변화의 한 축으로 협동조합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협동조합 붐이다. 작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나서부터다. 이미 전국적으로 350여 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택배 배달부터 대리운전기사를 비롯해 은퇴자, 성노동 여성 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실험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최근 지원센터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물론 이곳도 협동조합 기업이다. 그를 비롯해 변호사, 세무사 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이들과 함께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그는 "우리나라 초보 협동조합주의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그와 마주 앉았다.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다. "요즘 협동조합을 보면 감개무량하시겠다"는 말을 건네자 잔잔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2층 테라스에서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그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역설?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리라 꿈에도 몰랐다"

- 요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그런 것 같다. 작년 6월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협동조합 강연만 126회를 할 정도였으니까."

- 주로 무슨 내용을 하나.
"(강연을 요청해오는) 단체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협동조합의 역사부터 누가, 왜,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이다."


- 작년 말 협동조합기본법 통과된 이후 벌써 전국적으로 설립신고를 마친 곳이 상당하다.
"아마 올해 2500개 정도 협동조합이 생길 것 같다. 앞으로 2~3년이 중요하다. 예전 벤처 붐처럼 한순간 크게 일어났다가 많은 협동조합이 망하게 될까 봐 솔직히 걱정이 크다."

- 책에서 '기본법이 통과됐을 때 당황스러웠다'고 썼던데.
"정말이다. 당황스러웠다. 아니 두려웠다. 그동안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바랬는데…. 막상 법이 통과되니까 기뻐하기보다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기본법 통과를 두고, "이명박 정부의 역설"이라고 했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협동조합 운영과 경제활동은 그동안 진보적 경제체제의 대안 중 하나로 꼽혀왔다. 가장 보수적이고 친기업적 성향의 이명박 정부에서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김 이사장은 "우리보다 협동조합 역사가 훨씬 오래된 일본조차도 아직 협동조합법이 없다"면서 "게다가 새누리당이 국회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 통과는) 꿈조차 꾸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법이 통과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어요. 협동조합을 제대로 경험해 본 사람도 별로 없어요. 또 사람들이 아직 잘 몰라요. 그냥 (협동조합이) 좋다더라는 식이에요. 그래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죠. 이것도 하나의 기업이에요. 협동조합주의자 입장에선 요즘처럼 이렇게 막 일어나는 것은…. 좋진 않아요."

왜 협동조합인가?... "고용불안과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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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지원센터 이사장은 최근 10년 새 한국사회의 극심한 고용불안과 양극화가 협동조합 등 새로운 대안 경제체제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 권우성


- 그런데 왜 하필 협동조합일까.
"일자리, 고용의 안정성 때문이다. 협동조합 기업은 일반 주식회사와 달리 고용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비정규직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는 최근 10년 새 한국사회의 극심한 고용불안과 양극화가 협동조합 등 새로운 대안 경제체제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현재와 같은 노동과 생산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는 것이다. 김 이사장의 커피전문점 창업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본다.

"서울에 웬만한 곳에 커피전문점 내려면 약 5억 원 넘는데요. 자, 청년 10명이 커피전문점을 하려고 할 때, 어떤 곳은 부잣집 아들 혼자 5억 투자하고 나머지 9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써가며 할 수도 있죠. 반대로 10명이 5000만 원씩 출자해서 스스로 커피집을 운영하는 거예요. 똑같은 10명이지만 한쪽 9명은 비정규직이고, 다른 한쪽은 정규직 조합원이죠."

김 이사장은 "단순 알바생이 아닌 자기 일인만큼 소속감이나 열정도 훨씬 높을 수 있다"면서 소비자들에게 협동조합방식의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착한소비 마케팅의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커피전문점의 예를 들긴 했지만 청년들이 의기투합해서 할 수 있는 업종도 많다"고 말했다.

- 어떤 업종들이 있을까.
"정보통신 벤처기업도 할 수 있고, 요즘 인기를 끄는 문화 벤처기업도 서로 힘을 모아 할 수 있다. 컨설팅이나 리서치 같은 지식분야도 그렇고…."

- 요즘 동네슈퍼마켓 업주들도 협동조합 전환 등을 고민하고 있던데.
"동네 슈퍼뿐 아니라 각종 음식 등 체인사업도 협동조합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50대 은퇴자들이 퇴직금 들고 나와서 하나같이 치킨, 제과 체인점을 차리지만 실제로 돈 버는 사업주들이 그리 많지 않다. 본사만 돈을 버는 구조다."

- 그래서 정부도 체인 본사와 점주 사이의 불공정거래 시정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체인점 사장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면 된다. 그곳을 통해 각종 재료나 자재 등을 공동구매하면 가격을 낮추고 이익도 올릴 수 있다. 본사에는 해당 브랜드 사용료만 지불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버거킹이라는 햄버거 체인이 대표적이다. 미국 체인점 사장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버거킹 본사도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몰락한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을 바로 세우는 길을 찾다

그의 다양한 협동조합의 사례 이야기는 계속됐다. 지난 대선 이후 보수 일변도의 미디어 지형을 극복하자는 움직임도 협동조합으로 결실을 맺었다. 최근 인터넷 라디오방송을 시작으로 문을 연 '국민티브이(TV)'가 대표적이다. 김 이사장은 "국민TV처럼 미디어 분야의 협동조합 실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6만여 명의 일반 국민들이 주주로 출자한 한겨레신문의 경우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경우 사업 안전성이나 확장성 면에서 모두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한겨레신문이) 협동조합으로 가게 되면 세계 유일의 영향력 있는 협동조합 신문이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한겨레 신문 예를 들긴 했지만 기존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물론이다. 쉽지 않다. 협동조합에 대한 구성원들 간의 이해도가 다르고 생각도 차이가 있다.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협동조합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조직이다. 주식회사처럼 갖고 있는 주식 수에 따라 질서가 잡히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은가.
"(잠시 생각을 하며) 그렇다. 협동조합은 의사결정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조합원 구성이 다양하고, 규모가 클수록 이럴 가능성은 더 높다. 정말 이 사업이 우리에게 절실한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따져야 한다."

- 조합원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날 수도.
"물론이다. 조합원 한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총회 등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움직이는 과정에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협동조합 운동의 전통과 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우리 입장에선 앞으로 시행착오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인터뷰 마지막 즈음에 그의 고민이 묻어났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를 겪고 대안체제를 고민했던 그였다. 스페인 대표적인 협동조합 몬드라곤을 주목한 것도 그때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과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기업을 인수하거나 정비공장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물론 줄줄이 실패했다. 그의 실패담이 지금의 협동조합주의자의 밑바탕이 됐다. 다시 그의 고백이다.

"협동조합은 휴머니즘에 기반한 기업이에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의 동업자 관계이기도 하죠. 짧은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를 겪은 우리는 '동업'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요. 지금 협동조합 바람이 불면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협동조합 기업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르죠. 이 때문에 한국의 협동조합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단순 처방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협동조합의 전통과 문화를 세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죠."
#김성오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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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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