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저랑 같이 살아보실랍니까?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20] 같이 좌충우돌할 사람, 구합니다!

등록 2013.06.02 11:43수정 2013.06.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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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의 청보리밭 풍경. ⓒ 조남희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평화로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참, 별 일이 다 생기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은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서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로드킬(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길가에 누워있는 고양이의 처연한 눈을 본 순간 참았던 울음이 왈칵 터져 나왔다. 

다음 달 즈음이면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어가고, 연세로 빌린 대평리의 집도 만기가 다가오기에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곧 시작될 장마와 몰려들 무시무시한 태풍을 생각하면 마음은 급한데 좀처럼 들어 갈만한 집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크고 좋은 빈집이 있다 길래 가보았더니 집주인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 봉변을 당할 뻔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내 한 몸 편하게 쉴 방 한 칸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방이 여러 개 되는 집을 구해보려고 했다. 별 일이 다 생겨가면서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주도가 좋아서 내려왔지만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른 현실


제주도는 끊임없이 육지의 인구가 유입되는 곳이다. 관광객뿐 아니라 살기위해 내려오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섬이 답답하다며 육지로 나가지만, 오히려 육지에서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해 내려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젊은이들 또한 제주도에 살기 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가 좋아서 내려왔지만 일자리 부족, 외로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른 현실 앞에 결국 다시 육지 행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제주도에 살러 내려오겠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문제가 집을 구하는 일이다.
제주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이 집을 구하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다. 또한 지금 살고 있는 대평리의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일구 아저씨는 모 TV프로그램에서 '인생 뭐 있습니까! 전세 아니면 월세지'라고 말하지만, 제주도는 전세도 월세도 아닌 '연세'가 있다. 일 년치를 선불하고 사는 '연세'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집을 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돈 많은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의 빈 집들을 많이 사 버린 데다 남아있는 빈 집들도 대부분 폐가다.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연세로 내놓는 집이 어디 있는지도 알기가 쉽지 않다. 돈이 많아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돈이 없는 사람은 제주도에 살 수 없단 말이 되니 돈 없이 제주도에 내려온 대표주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운 좋게 좋은 집을 구한다고 해도 육지와는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른 제주도의 생활을 해본 후 스스로에게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 그게 몇 달이 되었든 우선 살아보고 자신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조남희 기자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 책임지라'는 독자 분들에게 말씀드린다.

'나하고 삽시다. 그럼!'

제주도가 좋아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착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벌려나갈 공간을 마련하려 한다. 집을 구할 수 없다면 방 한 칸씩 빌려줄 테니 몇 달이 되었든 살아보면서 판단하시라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님을 밝혀둔다.) 같이 살아 보겠다는 분이 있다면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다. 길치인데다 잘 할 줄 아는 음식도 별로 없고, 고사리가 어떻게 생긴 건지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그런 차가운 도시여자였던 데다, 제주민속오일장에서 업어온 사람을 물어뜯는 '못 배워먹은' 새끼고양이마저 키우고 있는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라고 물어야겠다. 이런 내가 괜찮다면 그 다음은 '이런 우리 집이라도 괜찮겠니'를 물어야 한다.

직접 겪어본 무시무시한 태풍이 매년 제주도를 덮치는 것을 고려해서 해안가가 아닌 중산 간 마을인 한경면 저지리에 집을 하나 구했다. 저지오름과 곶자왈, 오설록이 가까이 있는 곳이 저지리다.

방은 작지만 네다섯 칸이 나온다. 집 뒤 켠엔 귤나무들이 있는 작은 밭이 있어 텃밭 가꾸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삼겹살 파티를 할 만한 마당도 있다. 하지만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다 살림집으로 쓰던 공간이 아닌지라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서는 필자와 같이 '노가다'를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벌레와 함께 상생해야 하는 마을의 농가주택에 너무 많은 기대와 환상을 품지 않고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해군기지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강정마을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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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 써있는 글. 제주도에서 역사선생님을 하고 계신 이영권 선생의 글이다. ⓒ 송지영


이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 육지와 비교해 무엇이 없고 부족하고 불편하다는 불만을 늘어놓지 않을 사람, 육지 것이 아니라 제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 어디 없을까.
#제주도 #SHARE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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