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델하우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20] '요정의 굴뚝'이 있는 이상한 나라, 카파도키아

등록 2013.10.01 14:21수정 2013.10.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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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터키에 다시 온다면 그건 동양에서 일어나 서양으로 출근하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도,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온천도 아닌 지중해 때문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에 둘러싸인 푸른 바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얀 집이 엮어 내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홍해까지 많은 바다를 거쳐 온 나는 이번만은 꾹 참기로 했다. 혼자 찾기에 지중해는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지금은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맬 때야'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는 터키 지도의 중심부에 있는 카파도키아(Capadoccia)로 향했다.

야간버스에서의 긴 밤이 지나고 아침에 도착한 마을 괴뢰메(Goreme)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풍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줄지어 있는 수많은 여행사들 너머로 보이는 삐쭉삐쭉 독특한 지형, 언덕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작은 집들과 하늘을 수놓은 열기구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꺼내들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카메라로 연신 하늘을 찍어대고 있자니 어느새 바짝 다가온 호객꾼들이 말을 건넨다. 불편한 밤을 보내고 덜 뜬 눈으로 숙소를 찾아 헤매는 일은 꽤 고달팠지만, 이번만은 미리 봐둔 숙소로 가기로 했다. 모처럼 요정들이 산다는 마을에 왔으니까.

'트래블러스 케이브(Traveller's Cave)'라는 이름의 호스텔은 과연 참신하고 훌륭했다. 비록 카파도키아의 버섯집을 본 따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깨끗한 로비와 창이 없는 방을 가득 메운 특이한 색감의 벽돌들, 차가운 바닥을 덮은 터키스러운 양탄자와 벽에 부딪혀 묘한 색깔을 만들어 내는 불빛이 어쩐지 진짜 동굴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Korean(한국사람이냐)?'이라고 물으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친절한 숙소 관리인까지, 트래블러스 케이브는 여행 중 묵었던 호스텔 중에 최고라 부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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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긴 버섯을 닮은 요정의 굴뚝 ⓒ 김동주


드넓은 카파도키아를 어떻게 둘러볼지 고민하다 "남자는 자전거"라는 숙소 관리인의 말에 목적 없이 자전거를 빌려 몰고 가다 아침에 지나쳤던 표지판을 만났다. 이름 모를 외국의 글씨지만 어쩐지 그 표지판을 따라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날 수 있을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들길을 지나 구석진 곳으로 달렸는데 뜻밖에도 홀로 동떨어져 있는 '요정의 굴뚝'을 만났다.

하늘에 구름이 없으니 어쩐지 가짜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모습에 누군가 재치있는 사람이 '요정의 굴뚝'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영락없는 버섯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바위에 구멍을 파고 살았던 고대의 인간들의 밥 짓는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진짜 요정의 모습을 본 사람이 지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누군가 살았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막연한 이질감. 카파도키아는 동양도 서양도 아닌 '이상한 나라'다.

점점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한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와 오후에 시작하는 로즈 밸리 투어에 참여했다. 숙소의 여행자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걷는 길, 누런 황무지 땅을 색칠하듯 흙길 너머로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났다. 그 길을 따라 드디어 카파도키아, 요정이 살지도 모른다는 계곡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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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밸리 트래킹의 입구 ⓒ 김동주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아주 오래 전 인근에 있는 산의 화산폭발로 쌓인 화산재를 빗물과 용수가 긴 세월에 걸쳐 침식시켜 생겼다고 한다. 자연이 만들어낸 그 조각품의 결과가 하필 목이 긴 버섯 같은 모습임은 단지 우연일까. 푸른색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그 계곡 사이를 걷고 있자니,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개구쟁이 스머프'로 유명한 벨기에의 작가 피에르는 이 기괴한 모습을 보고 스머프 속 버섯 집을 그려냈으니 어찌보면 이 기암괴석은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델하우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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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동굴집 ⓒ 김동주


덩치가 작은 외계인에게 적합할 것 같은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는 기암들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으며 뱀 교회, 어둠의 교회, 사과 교회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교회들을 지나쳤다. 가이드 알리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 속에서 외계인이 살던 이 바위 속에 굴을 파고 최초로 정착했던 사람들은 아시리아 상인들이란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가운데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으로 교통의 핵심이었던 것. 후에 로마가 카파도키아를 손에 넣으면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로마의 탄압을 피해 찾아온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이르러 굴을 파고 여기저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려 2세기에 그려진, 벽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화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 그려진 덕분에 아직까지도 생생한 모습이었다. 프레스코화는 예수와 성모를 포함한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후세 이슬람 세력에 의해 이들의 얼굴이 모두 지워졌다고 한다.

종교를 전혀 믿지 않는 나는 그들이 이런 혹독한 환경에 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먼 훗날 유럽에서 종교에 의한 광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할 것을 그들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누군가는 종교를 위해 살아가고 누군가는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니 인간의 믿음이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알리의 긴 설명이 끝나고 여행자를 위해 마련된 카페에서 애플티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간간이 모래가 섞인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이토록 거룩한 자연경관 앞에서 얼굴을 찌푸릴 수 없었다. 느긋하게 담소에 빠져있던 티타임이 끝나자 가이드의 발걸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서서히 해가 질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드넓은 카파도키아를 배경으로 지는 해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을 법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혹시라도 아름다운 순간을 놓칠 새라 성격 급한 사람은 벌써부터 아찔한 바위 끝에 걸터앉아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또 다른 누군가는 미리 준비해온 와인을 꺼내 들고 설정에 들어갔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긴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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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가 장미빛으로 물드는 순간 ⓒ 김동주


이윽고 선글라스 너머의 붉은 빛이 강렬해지고 그림자는 한없이 늘어져 바닥을 어지럽히고 멀리 유난히 밝은 달이 벌써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이 계곡 이름의 의미를 깨달았다. 로즈 밸리(Rose Valley), 모든 것이 붉어지는 이 순간 로즈밸리의 사암 언덕에 부딪힌 노을은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 대지를 물들이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숙소에 걸려있던 터키의 국기가 떠올랐다. 붉은 바탕에 달과 별이 그려진 터키의 국기는 어쩌면 바로 이 로즈밸리의 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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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석양 ⓒ 김동주


마침내 온 하늘을 붉게 피워내며 스러져가는 태양은 외계행성 카파도키아가 선물하는 최고의 비경이다.

풍선을 타고 날다

로즈밸리의 밤이 깊어지고 숙소로 와서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는 새벽같이 출발하는 벌룬투어 때문이었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에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꾸었지~♬'로 시작하는 노랫말과 달리 이제 곧 현실이 될 그 꿈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늦은 시각까지 로비에서 방황하던 여행자들은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 밤의 와인파티를 벌였다. 그렇게 술의 힘을 빌려 짧은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다시 눈이 떠졌다. 여전히 창 틈으로 들어오는 빛도 없을 정도의 이른 새벽, 방 안이 조용한 걸 보니 조금 더 자도 되겠거니 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온 숙소 내의 알람이 동시에 울어댔다. 풍선을 타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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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의 푸른 새벽을 밝히는 풍선들 ⓒ 김동주


픽업을 온 투어차량을 타고 이륙장으로 가보니 이미 어두운 대지 곳곳에 먼저 온 차량들이 가득했다. 투어회사에서 준비한 과자와 차를 마시며 새벽 추위를 달래고 있으려니 여기저기에 숨을 죽이고 누워있는 대형 풍선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쓰러져 있는 거인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잠시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기구가 불을 뿜고, 쓰러진 거인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이륙 준비를 한다.

어쩌다가 카파도키아에 이토록 특별한 열기구 투어가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열기구를 타기 전의 그 두근거림은 마치 여행을 출발하기 전날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노래가사가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를 앉고 차례로 열기구에 올랐다.

둥근 풍선 안에서는 맹렬한 불꽃이 계속해서 풍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조종사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바구니를 꼭 붙잡으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고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다른 열기구의 탑승객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들려올 때 쯤 나도 모르게 '어… 어… '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계속해서 불을 뿜어내는 기구의 요란한 소리가 없었다면 스무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심장소리로 제법 시끄러웠을 벌룬은 카파도키아의 푸른 새벽빛을 뚫고 기암괴석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까지 금방 솟아 올랐다. 지금 이 순간, 아마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서 일출을 본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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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그림처럼 수십개의 풍선이 동시에 하늘을 난다 ⓒ 김동주


벌룬과 함께 태양이 떠오르면서 드디어 먼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수십 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고도에 오른 벌룬은 그저 떠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 사이를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갔다.

그때마다 터져나오는 탄성들과 안도의 한숨. 천천히 흘러가는 아래의 풍경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을 느끼다가도 가끔씩 강한 바람이 불어와 바구니가 흔들리면 화들짝 놀라고 눈부신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가도 다른 벌룬을 스쳐지나가면 한 순간 전기가 나간 것처럼 시야가 어두워진다.

하늘에 점점 푸른빛이 돌기 시작하니 어제 봤던 로즈밸리와 점점이 흩어진 요정의 굴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성냥처럼 앙증맞은 기암괴석이 올망졸망하게 펼쳐지고, 떠오르는 태양이 금빛을 더하는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 위에서 나는 몇 번이고 이 투어를 생각해낸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이윽고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지면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다른 벌룬 들과 멀어져 투명한 공기 말고는 주위에 비교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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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타고 '이상한 나라' 를 여행하는 특별한 기분 ⓒ 김동주


어느덧 풍선은 정점에 오르고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시려 올 때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 풍경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했다. 파아란 하늘, 따뜻한 금빛으로 물든 대지, 마치 만화처럼 바구니를 타고 날아오르는 사람들, 풍선이 하늘을 가린 외계행성.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고 오로지 이 '이상한 나라'의 아름다움에 빠져든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조종사가 착륙준비를 한다. 아쉽지만 그 황홀한 풍경을 뒤로하고 돌아갈 시간이다. 기구는 또 다시 요란하게 불을 뿜고 조종사는 숙련된 솜씨로 거짓말 처럼 대형풍선을 다시 지상으로 돌려놓았다. 그 커다란 풍선 속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그제야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하늘에 머문 시간들이 아득히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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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룬투어의 끝을 장식하는 샴페인파티 ⓒ 김동주


벌룬투어의 마지막은 무사히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이 함께 했다. 샴페인 너머로 이제야 지상으로 내려온 풍선들이 다시금 생명을 잃고 서서히 꺼져가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재미있다. 여기저기서 '펑' 소리와 함께 샴페인이 거품을 터트리고 시원한 청량감이 목을 적시니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꿈 같은 현실이 지나갔다. 깃털처럼 하늘을 유유히 나는 이 쾌감을 과연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 때로부터 꼭 1년이 지났지만 유난히 파란하늘이 펼쳐지는 날이면 하늘 가득 여운이 짙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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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 꿈만은 아니다 ⓒ 김동주


간략여행정보

카파도키아를 보기위해서는 인근 마을인 괴뢰메(Goreme)로 향해야 한다. 걸어서 20분이면 온 마을을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인 괴뢰메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한데 모여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전혀 없다. 괴뢰메에서 할 것이라고는 어떤 투어를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 뿐이다. 크게 벌룬투어와 트레킹으로 나뉘는데 벌룬투어의 경우 회사에 하늘에 떠 있는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같은 상품이라도 투어회사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니 여러 곳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트레킹의 경우 코스가 따라 3가지로 나뉘며 일몰을 보기 위한 투어인 로즈밸리투어를 빼고는 모두 오전부터 시작한다. 아래는 카파도키아 여러 투어 정보(모든 가격은 2012년 9월 기준이며 단위는 유로).

* 그린투어(Green Tour) – 45EUR
: 파노라마 언덕 – 데린쿠유 지하도시 – 으흐랄라밸리 – 셀리메 수도원 - 피죤밸리

* 레드투어(Red Tour) – 35EUR
: 괴뢰메 야외박물관 – 차우신 올드빌리지 – 파샤바 – 데브란트밸리 – 우치사르 – 우르굽 – 아바노스

* 로즈밸리투어(Rose Valley Tour) – 15EUR
: 해질무렵 3시간 정도 로즈밸리 트레킹

* 벌룬투어(Ballon Tour) – 100EUR

#카파도키아 #괴뢰메 #벌룬투어 #열기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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