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로동적위군 열병식 날의 또 다른 평양 모습.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신은미
열병식 참관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또 다른 평양의 모습이 비친다. 어린 아이가 할머니의 팔에 매달려 응석을 부리며 걸어간다. 한 엄마는 딸과 손을 꼭 잡은 채 어디론가 향한다.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씽~씽~'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남한 방송매체가 내보내는 소름 끼치는 북한군 열병식, 핵실험 뉴스, 미사일 발사 장면을 보면서 남한 국민들은 북한 동포들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동포애는커녕 적개심만 더해진다.
북한의 동포들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중앙TV에 비치는 남한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미군 폭격기의 핵폭탄 투하 연습, 핵잠수함, 핵항공모함, 한미연합군의 상륙 훈련 모습은 북한동포들의 마음을 살 수가 없다.
북한을 여행하기 전까지 나는 북한사람들은 모두 집권자들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꼭두각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도 주민들 사이에 흐르는, 무시되지 않는 정서가 있고, 여론이 있다.
북한이 남한 동포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처럼, 남한 또한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고 북한 주민들은 말한다. 소위 '6·15 시대'(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부터 이명박 정부 전까지)라고 불리는 그 시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당시에는 남한 정부의 발표나 언론 보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단다. 그렇다, '신뢰'는 생겨나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다.
현수에게 보내는 쪽지노력동원에 나간 현수는 여전히 세포등판에 있다고 한다. 나는 현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쪽지와 함께 안내원에게 건넸다.
"현수야, 나 미국 이모야. 목장을 일구느라 고생이 많겠구나. 힘들지? 지난 8월에 와서 설경이도 보고 신랑도 만났어. 집에 찾아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봤어. 배가 잔뜩 불러 오늘 내일 하고 있었단다. 네가 평양에 있다면 너희 집에 가서 애들도 보고 애기 엄마가 만들어 주는 꿩냉면도 먹어봤을 텐데 너무나 아쉽구나. 내년(2014년) 겨울에 다시 오기로 했어. 이모부가 널 데리고 대동강에 가서 얼음낚시 하겠다고 벼르고 계셔. 잡은 고기를 갖고 너희 집에 가서 매운탕 끓여 소주도 한잔 하시겠대. 부디 몸 조심하고…. 안내원 선생님께 보따리 하나 전해달라고 부탁드려놨어. 그 속에 들어 있는 홍삼은 부모님께 드려.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 그리고 다친 곳 없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야 해. 내년 겨울에 만나. 미국에서 온 이모가."단동행 기차를 포기하다호텔에서 다시 만난 김필주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나를 보고 안내원 김 선생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신 선생님, 이거 큰일 났소. 단동으로 가는 기차표가 앞으로 3일간 다 나가 없다카니. 아, 이거 어까면 좋갔어요?"평양을 떠나 기차를 타고 내 조국 땅을 달려 대륙으로 가겠다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옆에 계신 김필주 박사님께서 제안을 하신다.
"신 선생, 내가 내일 모레 과기대 졸업반 아이들을 데리고 단동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하루만 기다려 볼래요? 혹시 못 가는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니.""아녜요, 선생님. 그냥 원래 일정대로 비행기 타고 북경으로 가겠어요. 고맙습니다."순간 '하루 정도 기다려 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일생에 한 번 있을 졸업여행, 그것도 외국으로 가는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설사 못가는 학생이 생기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빈자리를 두고 떠나는 열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안녕, 평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