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선 부산경찰청장 '욕설' 사과... 그걸로 끝?

[取중眞담] 경찰은 관대하다, 단 고위경찰관들에게만

등록 2015.01.09 18:31수정 2015.01.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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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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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부산지방경찰청장. ⓒ 부산지방경찰청


부하 직원에 대한 도를 넘은 욕설과 모욕으로 비난을 받아온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끝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권 청장은 9일 부산지방경찰청 브리핑실에서 "저의 언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고쳐나가겠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는 8일 언론에 배포한 사과문을 통해서도 "앞으로 자숙의 시간을 가지면서 저의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고, 조직 운영 방식을 바꾸어 나가겠다"면서 "낮은 자세와 따뜻한 마음으로 동료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존중하면서 부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욕설을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소통하며 일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한 애초의 인식이 문제란 걸 알아차린 것만큼은 다행입니다. 모두 8일 강신명 경찰청장으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은 뒤의 일입니다. 권 청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진상조사에 나섰던 경찰청 입장에서는 하루 만에 권 청장을 구두로 경고하는 선에서 사태의 진정을 바라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여론이 그렇게 호락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는 권 청장이 부산에 내려오기 전 근무했던 경북경찰청에서도 숱한 언어 폭력을 휘둘러왔다는 내용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동행하던 간부를 고속도로 중간에서 내리게했다는 보도는 흡사 제멋대로 비행기를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했다는 어느 항공사 회장님의 따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징계는 계급에 반비례... 청장이 욕하면 사과, 하급자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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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부산경찰청장(오른쪽)이 지난달 3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 및 현장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정상회의 장소를 살펴보고 있다. ⓒ 부산지방경찰청


그런 권 청장에게 경찰청이 한 일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엄중경고'입니다. 근데 이게 말이 거창해 엄중경고이지 공식 징계도 아닌 그저 상급자의 따끔한 말 한 마디 같은 겁니다. 여론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거지요.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마저도 그저 그런 제식구 감싸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면 경찰의 징계는 어깨에 붙은 계급장 무게와는 반비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거든요. 어쩌면 이 사례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2월 경기도에서는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경찰관이 상관에게 욕설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위 계급인 경찰관이 부서 이동에 불만을 품고 경정 계급인 경찰관과 말다툼을 벌였던 거였죠. 이 일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어땠을까요? 사건이 벌어졌던 일산경찰서는 인사위원회를 열고 욕설을 한 경위를 해임했습니다. 뒤늦게 해당 경찰관이 선처를 구했지만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상명하복이 핵심인 제복 공무원 사회에서 하극상은 큰 잘못입니다. 하지만 해임과 단순 경고의 차이를 불러올 만큼의 잘못인지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반복된 욕설로 '욕쟁이 청장'이란 비아냥까지 듣고있는 권 청장에게 한 구두경고에 비해 꽤 과감한 결정이었던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비슷한 일은 공교롭게도 권 청장의 전임자였던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 때도 일어났습니다. 이 전 청장이 집무실에서 500만 원과 그림을 건네받았고, 그것이 관련 법률을 어겼다는 것까지 드러났지만 경찰청의 징계는 무디기만 했습니다. 이 청장은 사과로 일을 마무리했고 퇴임 때까지 무사히 부산 경찰의 수장을 맡았습니다. (관련기사: 청장이 돈 받으면 관행? 이해 못 할 부산경찰청).

경찰청이 이런 자신들의 잣대가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도 그럴 거란 착각을 해선 곤란할 것 같습니다. 부디 경찰청이 욕쟁이 청장을 벌주는 것보다 시민에게 욕 먹는 걸 편하다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기선 #부산경찰청장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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