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화장터 주변 가트에서 만난 선재씨. 포목점을 운영한다는 그는 매일 아침 가트에 나와 명상을 하는 인도 요기이기도 했다.
송성영
이 선생은 잠들어 있다. 어젯밤 만취한 상태로 신세를 진 이 선생의 숙소를 빠져나와 곧장 새벽 화장터로 나섰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하다. 화장터로 향하는 골목길은 머릿속에서 침침하게 맴돌고 있는 술기운같은 어둠이 남아 있다. 만약 자동차를 몰고 나섰다면 틀림없이 음주 측정기에서 불량한 소리가 났을 것이었다. 오늘은 시신을 태울 불을 지피기 위해 장작을 쌓고 있는 화장터 앞을 건성으로 지나친다. 바라나시 화장터를 찾은 지 일 주일째 되다보니 주검들이 무감각한 일상처럼 다가온다.
500루피어치 염주를 사다오늘은 평소와 달리 화장터에서 왼쪽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화장터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강물에 목욕하고 기도를 올리는 인도 순례자들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메인가트가 나오는데 왼쪽 편 가트는 한가하다. 화장터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는 둥그런 가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트 바로 앞으로 갠지스 강이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 그 앞으로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어질어질한 술기운을 내린다.
시간이 지나면 술기운은 저 쉼 없는 강물처럼 흘려가 버리지만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주검 앞에서도 여전히 옳고 그름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내가 있다.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마음을 다잡아 가면서도 여권이며 돈이 들어 있는 전대며 사진기와 손전화기가 들어 있는 천 가방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그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일 주일 내내 바라나시 화장터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으면서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누군가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온다.
"헤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피부색이 꺼뭇한 스무한 두 살 정도 돼 보이는 인도 청년이다. 그가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있다. 인도 청년을 인식하자마자 나는 옆에 놓여져 있던 붉은 천 가방을 슬그머니 품 안으로 끌어당긴다.
"한국 사람인데요...""이것들 좀 구경 좀 하세요."
그때서야 나는 그의 팔과 목에 염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자 다시 말한다.
"사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아, 예...""당신은 라마승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