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왼쪽)와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이상 네잎클로바)
신은미
무시무시한 인권 말살, 하지만 아름다웠다
2011년 10월, 내 인생에 기적처럼 찾아온 첫 북한 여행을 통해 나는 그곳에서 우리와 같은 '일란성 쌍둥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떠난 북한 여행은 감동과 감격의 연속이었다. 이질감은커녕 동질감을 느끼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수양가족마저 생겼으니, 나 자신이 이산가족이 돼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여러 차례 북한을 더 여행한 뒤 <오마이뉴스>에 기행문을 연재하고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는 통일에 대해 문외한이다. 내가 쓴 두 권의 북한 기행문도 '통일 이야기'가 아닌,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형제들을 만나 정을 주고받은 '사랑 이야기'다.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나의 간절한 염원'은 북한을 여행하며 북한동포들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많은 단체로부터 통일 관련 강연을 요청 받았다.
지난 2014년 여름, '6.15 남측위원회 서울본부'라는 단체로부터 9월에 예정된 '통일 토크콘서트'에 초대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해 11월 서울에서 열릴 친조카 결혼식과 시조카 손주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갈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게다가 이왕 서울에 가는 길에 평양까지 가서 두 수양딸(설경·설향)과 수양손자도 만나고, 최근 개장했다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계획이기도 했다.
6.15남측위 서울본부는 이런 내 일정을 고려해 통일 토크콘서트를 11월 말과 12월 초에 전국 순회 형태로 열기로 결정했다. 나는 2014년 11월 19일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당일 조계사에서 열린 첫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콘서트가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종북몰이'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