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강연 종료 후 재일동포 독자들에게 책 사인을 하는 모습.
신은미
재일동포 청중들의 모습과 분위기는 한국이나 미국의 동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내가 북한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들을 이야기하면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조국'이나 '통일'이라는 말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손수건을 꺼내 들고 눈물을 훔쳤다. 이게 바로 재일동포다.
온갖 멸시와 차별을 경험하면서 타향살이의 설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실감하며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에게 '조국'이란 말은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다. 게다가 조총련에 속해 있는 동포들은 한국의 선산에도 갈 수 없다. 이들에게 '통일'은 곧 '성묘'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국'과 '통일'이란 말에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일본서 태어난 아이의 말... "내 고향은 경북 상주"멀리 구마모토에서 오신 한 독자분께서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에 참석했다. 그분은 "구마모토는 말고기가 유명하다"라면서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팩에 정성 들여 싸온 말고기 육회를 꺼내놓으셨다. 그러더니 어서 한 점 들어보라 권하신다. 아, 그 '맛있다'는 개고기도 입에 못 대는데 말고기를…, 그것도 날것으로….
무척 당황해 젓가락을 들었다놨다 하는 걸 본 한 여자 아이가 내게 "정말 맛있습니다, 어서 드셔 보세요"라면서 덩달아 초조해 한다. 잘됐다 싶어 미적거리면서 들고 있던 젓가락을 슬그머니 놓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고마워. 너도 혹시 고향이 구마모토니?""아니에요. 제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입니다.""경상북도 상주?""네.""일본에는 언제 왔어?""저는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재일동포 4세입니다." "지금 방금 고향이 경상북도 상주라고 했잖아.""아, 네…, 저희는 할아버지께서 태어나신 곳을 내고향이라고 합니다. 증조 할아버지께서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셨답니다. 언젠가는 꼭 가볼 거예요."재일동포 4세 어린 아이로부터 '가보지도 못한 할아버지의 고향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말을 듣다니…. 울컥,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목구멍까지 복받쳐 오른다. 말고기 한 점을 나도 몰래 꿀꺽 삼켜버렸다.
재일동포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우리나라 지명을 댄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을 절대로 고향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조총련 동포 대부분이 북한과 지역적 연고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경상도·제주도·전라도 등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분들의 후손들이었다. 그럼에도 조총련에 속한 동포들의 경우, 남녘 고향에 갈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와서 한동안 가능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한국 방문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인도주의에 입각해 북한 정부에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반면, 조총련 재일동포의 성묘나 친척 방문을 위한 입국은 불허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문제 또한 거론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는 '북한인권사무소'마저 설치됐다. 그러나 멀리 북한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조총련 재일동포들의 모국 방문부터 허락해야 한다. 유교적 전통이 뿌리 박혀 있는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인권 중의 하나가 조상 성묘 그리고 가족상봉이 아닌가.
"내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라는 재일동포 4세 아이의 말을 되뇌이며 호텔로 돌아왔다. 얼마나 많은 재일동포가 지금 내가 밟고 걷는 이 땅, 이 길을 따라 고향을 그리며 고개를 떨궜을까. 무거운 발걸음에 나도 그만 주저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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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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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안다고 북한 얘기하나?" 내 답변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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