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 하굣길에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신은미
나는 이 여학생이 입고 있는 하얀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칭찬해줬다. 그러자 학생은 내게 "집에 갈 때는 일본 학생들의 폭력에 대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간다"라고 대답한다. 분노와 함께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나 지금 재일동포들의 '우리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 난관은 바로 재정 문제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가 고교 교육 무상화 제도에서 유독 '우리학교'만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일동포들과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합세해 함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엔에서도 논의 대상이 되고,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을 철회하라'고 권고도 하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교육을 정치와 연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편협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이 대국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재일동포들의 '우리학교'는 이대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우리학교'의 탄생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해방된 후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의 얼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학교를 세울 당시의 이야기들은 감동 그 자체다. 환갑잔치 비용을 내놓은 노인, 결혼 자금을 기부하며 결혼식을 미룬 젊은 연인들, 자그마한 내 집 장만을 위해 모아놓은 돈을 흔쾌히 쏟아놓은 부부까지…. 이렇게 세워진 학교가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코하마에서의 강연도 대성황이었다. 빈자리가 없다. 마치 리틀엔젤스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세계 각국을 돌며 공연했을 당시,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에 빈자리가 있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조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생각으로 공연한 그때의 마음이나 통일을 염원하며 강연을 하는 지금의 마음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일본에 만연한 '재일동포 차별'호텔로 걸어가는 길에 남편이 일본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찌노 아카리가 도테모 기레이네 요코하마 부루라이토 요코하마~.""무슨 뜻이에요?""거리의 불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요코하마, 푸른빛 요코하마. 뭐 대충 그런 뜻일 거야. 소문에 의하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시다 아유미도 한국(조선)계 일본인이라는 것 같아. 그게 사실인지 이곳 동포들에게 물어봐야겠네."일본의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 중 일본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실은 재일동포들인 경우가 꽤 있다는 말을 미국에 살고있는 재일동포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에 의하면, 민족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출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 연예인이 되거나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3세, 4세임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이 없음은 물론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게다가 많은 일본의 유수 기업들은 재일동포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으로 귀화한다고 해도 '신일본인'이라는 기록이 3대에 걸쳐 남는다고 한다. 이 시대에 과연 이런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나마 다행히 겉모습으로는 전혀 구분이 되지 않으니 망정이지, 만약 생김새마저 달랐다면 재일동포들이 겪었을 고통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의 제도적 차별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차별은 엄청난 인권유린이다. 이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반드시 국제적으로 여론화해야 할 대상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앞으로 재일동포를 향한 일본의 차별에 대항해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조선학교에서 만난 '금도끼와 은도끼'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잠을 설쳤다. 미국을 떠난 이래 3일 동안 10시간도 자지 못한 것 같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있다. 왼팔 마비 증세도 더 심해진다. 식욕도 없어 커피 한 잔 마시고 진통제를 먹으니 속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강연장을 메우고, 눈물을 글썽이는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는다. 게다가 일본 일정을 마치면 평양에 가 수양딸 설경이를 만나 푹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이 정도는 견딜만 하다.
오늘(6월 17일)은 신칸센을 타고 '천년 고도' 교토로 간다. 이곳에서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도착하자 마자 '우리학교'를 방문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