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살던 집은 1933년 매매된 이후 위와 같이 필지가 분할되었고, 그 일부가 현재 '이상의 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유영호
이 집은 필지가 꽤 컸지만 1933년 주택업자에게 팔린 뒤 지금은그 필지가 분할돼 여러 집들로 새로 지어졌고,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이상의 집'일 뿐이다. 그러니 이상이 살던 집은 지번상 통인동에서 154번지를 쓰는 모든 필지였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모르고 성급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해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 집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어쨌든 시인 고은이 인물시집 <만인보>에서 평했듯, 건축가·문인·화가였던 이상은 당대 문화판을 뒤흔든 기행들로 천재의 신화를 쌓았다. 여기에 평론가 장석주는 아예 이상의 등장 자체를 '한국 현대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라고 평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나는 수없이 이상에 대해 배웠지만 그의 시 어디가 독자들을 사로잡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오감도>처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암호화된 문구로 활자화돼 독자인 내게 그 해석까지 요구하는 것이 불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또 기생 금홍 등 숱한 여인들과의 퇴폐적 연애로 염문을 뿌렸고, 다방을 룸펜 문인들의 아지트로 만들어버렸다.
어쩌면 그가 어린 시절 양자로 들어가 눈치를 봤던 불우한 경험과 페결핵으로 삭아 들어가고 있던 자신의 육체에 대한 원망을 누구도 알 수 없게 활자로 쏟아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자신의 내면을 꺼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삶은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며, 편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 <날개>의 서두에서 "박제가 된 천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그의 별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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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2015), 『서촌을 걷는다』(2018) 등 서울역사에 관한 저술 및 서울관련 기사들을 《한겨레신문》에 약 2년간 연재하였다. 한편 남북의 자유왕래를 꿈꾸며 서울 뿐만 아니라 평양에 관하여서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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