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로 수학여행 못 간 친구, 사진으로 함께 갔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310] 세월호 생존자 박준혁군

등록 2016.03.25 18:06수정 2016.03.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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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SBS 스페셜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편이 방송되었다. 배우 여진구씨가 나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해 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박준혁군의 사연을 소개했다. 해당 방송분은 박군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친구들 사진을 가지고 제주도를 다녀온 이야기를 담았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지난 17일 죽전역 인근에서 박군을 만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군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제주도로 떠난 박군 "친구들이 못다 한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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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 희생자 분향소 찾은 단원고 학생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지난 1월 12일 정오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유성호


- 대학 생활을 한 지 2주가 지났는데, 어떤가요?
"글쎄요. 고등학교 때보다 과제도 많고 통학도 힘드네요. 아직 적응을 잘 못 하고 있어요."

- 대학 생활을 할 생각에 부풀었을 것 같은데요.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힘들긴 한데, 재미는 있어요.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지내는 것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는 학문을 배우니 재밌어요."

- 대학 친구들이 단원고 출신이라는 걸 아나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 지난 2월 28일에 SBS 스페셜 출연분이 방송되었잖아요. 어떻게 보셨어요?
"제가 생각했던 걸 찍어서 방송했으니까 저에겐 새로울 게 없었어요. '생각을 잘 전했구나'라는 생각,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어요."


- 주위 반응은 어땠어요?
"생각보다 좋았어요. 악성 댓글도 없었고 격려나 응원해 주는 분이 많아서 좋았어요."

- 방송 출연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동안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었고, 친구들을 위해 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렵지 않았어요."

- 졸업 후 친구들 사진을 들고 제주도에 다녀왔잖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평소 친구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때 마침 방송국에서 '친구들을 위해 뭘 하든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하다가 친구들이 못다 한 수학여행을 같이 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제주도에 처음 간 건 아니더라도 느낌이 보통 여행과 달랐을 것 같은데.
"말로 다 표현을 못 하겠어요. 신나기도 했었지만, 조금 가서 섭섭하기도 했었고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어요. 뭐라 꼭 짚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 친구들에게 여행 계획을 말했을 때 반응은 어땠어요?
"말했을 때 반응이 가겠다는 애들과 안가겠다는 나뉘더라고요. 안 가겠다는 애들은 가기 싫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방송 촬영 때문에 노출이 싫은 거였어요."

- 어디 어디 갔어요?
"섭지코지, 산굼부리, 정관폭포 등이요. 수학여행 갔다면 가봄 직한 곳을 갔어요."

"친했던 친구들, 같이하던 걸 할 때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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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자 박준혁군 ⓒ 이영광


-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겠어요.
"당연하죠. 더욱 그랬던 게, 사진을 가져갔잖아요. 사진 보며 많이 생각했어요. '같이 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매우 춥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갔던 친구들과 끈끈해졌고, 회를 주문해서 먹는데 할머님들이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술을 주셨어요. 그래서 친구들 사진 앞에 술도 뿌렸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 5명 친구의 사진을 가져 갔는데,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었나요?
"네, 친했어요. 딱히 친구들과 놀러 간 적은 없지만, 학교생활 같이했던 친구들이라서 데리고 갔죠."

- 친구들에 관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기수하고는 같이 배드민턴을 자주 했어요. 경빈이하고는 PC방 가서 같이 게임도 했거든요. 그런 게 기억에 남죠."

- 언제 가장 생각이 나요?
"같이 하던 걸 할 때죠. 배드민턴 할 때 기수 생각나고 PC방 가면 경빈이 생각나죠."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2년이 다가오잖아요. 2년이 고통의 세월일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에 와서는 아프고 슬픈 감정보다는 그립고 아련해지고...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 같아요."

- 2년을 어떻게 보냈어요?
"정신없이 보냈어요.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방송 촬영도 하고. 게다가 고3 생활을 했잖아요. 학업 때문에 정신없기도 했어요."

- 주위 시선은 어때요?
"인터넷에서 좋지 않은 댓글도 보긴 했지만, 제 주위에서는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선 외에는 느껴지지 않아요."

- 참사 당일 아침 얘기 좀 해주세요.
"아침에 평화로웠어요. 자유롭게 일어나서 놀거나 쉬는데, 배가 확 기울어서 사고 난 걸 알았어요. 방송이 나와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면서 기다리다가 물이 차올랐을 때,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나왔어요."

- 요즘 보면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당사자로서 이런 시선, 어떤가요?
"좋지 않아요. 저희를 안 좋게 보거나 잘못된 점을 비판할 수는 있죠. 하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거나 원래 있던 사실을 왜곡하며 욕하면 그때 마음이 많이 상해요."
#박준혁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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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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