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1924.7.25)에 기사화된 서금교
동아일보
청와대로 인한 학교생활의 제약1989년 이 학교는 현재의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하였는데, 그 이전 이유에는 도시공동화로 인한 입학생의 감소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청와대 옆이라는 지리적 요인 또한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 교도주임이었던 교사 조연희의 말에 의하면 운동회 때 박수를 치면,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각하께서 오수를 즐기시는데 박수 좀 자제하면 안되냐'고, 청와대에서 어떤 분들이 나와" 통제하였다는 것이다. 또 졸업식 때면 고 3학생들이 반별로 파티를 하고 그 뒤 아이들이 즐거워 옥상에 가서 사진도 찍고 싶어하는데, 사진도 못 찍게 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사대문 안 학교들, 강남으로 가다>,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 3200평의 작은 학교라 운동장이 너무 좁아 옥상에 올라가 무용도 하고 체육도 하고 그랬는데 박정희정권 말기부터 점차 통제가 심해져 옥상 올라갈 때마다 청와대의 허가를 받고 올라가고 평소 때는 열쇠로 꽁꽁 잠가 놓았다고 한다. 하다 못해 옥상에 국기게양대가 있는데 태극기 올리고 내리는 것 조차 힘들어 아예 나중에는 국기게양대를 2층으로 내려놓았다고 한다.
1970년대 중후반 박정희정권의 서울 인구 분산정책으로 사대문 안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해 갈 때 조차 안 떠나고 경복궁 옆 창성동에 있었지만 더 이상 쉽지 않았던 것이다. 급기야 전두환정권 때 목동으로 이전해 달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이러한 외적 요인에 공간적 비좁음과 도시공동화 등의 이유가 겹치면서 결국 현재의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대한제국 황실 엄귀비의 지원 속에 설립된 학교로 '황실학교'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또 다른 이름을 가졌지만 현재의 황실인 청와대에 의해 창성동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황실학교의 자리에는 청와대 기동경찰대가 입주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명여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의 상징처럼 생각해 온 운동장에 있던 커다란 고목 홰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평민에서 최고의 후궁 '귀비'로 오른 비운의 엄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