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탐구해 얻은 앎을 전한다, 비판철학·의료사학·정신분석학 박사가 쓴 책 세 권

[김성호의 독서만세 102] <배제, 무시, 물화> <질병의 사회사> <미의 심리학>

등록 2017.01.26 09:46수정 2020.12.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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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남긴 <논어 해제>에는 공자가 말한 학문의 목적을 풀어쓴 대목이 나온다. '선(善)이 남에게 미쳐 내가 탐구해 깨달은 것을 남이 알게 되고, 내가 가능했던 것을 그 또한 가능하게 되면 그 즐거움이 매우 크다'는 것으로 학문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나의 앎을 남에 전하는 데 있음을 뜻한다.

이 같은 목적에 충실한 책 3권을 여기 소개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은 앎을 밖에 전하는 책이다. 한 사람은 자신이 박사과정까지 전공한 비판철학을 동원해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며 다른 한 사람은 동아시아인의 시선에서 근대의학의 탄생과정을 찬찬히 서술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수십년간 일선 심리학자로 환자들을 겪어온 경험을 살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현대인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돌아본다.


김원식, <배제, 무시, 물화>

배제, 무시, 물화 책 표지 ⓒ 사월의책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내놓을 수 있듯, 문제를 알아야 개선할 수 있다. 문제가 지엽적인 요인에서 출발한 게 아닐 때, 표피 아래 깊이 자리잡은 문제에서 파생된 것일 때 치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확한 진단은 섬세하고 진득한 관찰을 요하며 대응은 근본적인 문제를 완화하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두 불편하고 거추장스런 작업이다.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이와 같은 작업을 묵묵히 행한 책이 있어 소개한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과거와 현재가 상호작용하는 복잡다단한 공동체를 대상으로 일관된 흐름을 찾아 파고들어 마침내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문제를 바로잡는 건 오롯이 이 책을 읽는 독자와 한국사회의 역할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원식씨의 <배제, 무시, 물화>는 기존 사회비판이론의 틀을 검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사회에 유효한 비판이론을 모색하고 이를 한국사회에 적용해 구체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같은 논의로부터 한국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적 과제를 독자에 제안하고자 한다.

모두 8장으로 구분된 책은 앞 4장을 할애해 기존 비판이론을 검토하고 유효한 비판론을 모색한다. 이후 이어진 4장에선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거침없이 파헤쳐 드러낸다. 저자가 수면 위로 올린 근본문제는 모두 세 가지로 경제적 배제와 문화적 무시, 삶의 물화가 그것이다. 저자는 지난 수 십 년 간 이와 같은 현상이 스스로를 강화하며 사회구성원을 조금씩 탈락시켜 폭압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왔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배제는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세계적 흐름이 사회를 급속히 양극화시키고 이로부터 약자를 경제적으로 도태시키는 것을 뜻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사회 가운데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오늘날 기계화되고 분업화된 경제체제가 더는 다수의 착취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배제의 흐름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적은 일자리를 놓고 다수가 경쟁을 벌이고 그로부터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배제에 대한 두려움은 다수의 수평적 연대 대신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을 가능성이 있는 자, 선택받을 수 없는 자 사이의 구분과 갈등을 낳는다.

문화적 무시는 문화적 자산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받게 되는 여러 종류의 무시를 가리킨다. 상대적 주류가 비주류의 요구를 무시하고 부당한 억압을 가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로 계급과 성별, 학벌, 외모, 인종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문화적 무시가 만연한 사회에서 다수자는 소수자의 입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고 실제로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로부터 무시의 매커니즘이 심화되고 갈등은 격화된다.

삶의 물화는 물질일 수 없는 삶이 물질화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등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체제가 시민의 일상적 삶에 침투해 삶 자체를 물질화시킨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다종다양한 가치가 물질적인 논리로 획일화된다. 다양한 직업관이 연봉이 얼마냐 따위로 획일화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화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노동자 파업과 세월호 침몰참사, 환경운동 등 각종 사회적 의제에서 경제논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 여러 가치를 밀어내는 모습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물화된 개인이 물화된 개인을 낳고 물화된 사회가 물화된 사회를 낳는다고 우려한다.

경제적 배제와 문화적 무시, 삶의 물화라는 세 갈래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을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답을 구하고픈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라 판단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적 과제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불의와 병리현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동등한 자유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차이 나는 존재들의 민주적 연대를 형성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적 왜곡을 극복하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는 주체들이 형성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63p

신규환, <질병의 사회사>

질병의 사회사 책 표지 ⓒ 살림

한국에 흔치 않은 의료사학자 신규환 교수의 저작 <질병의 사회사>는 질병이 인류의 삶과 역사에 미친 무시할 수 없는 영향,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해 온 위생의료체제에 대한 조명을 통해 지난 시대의 사회상을 조명하는 책이다. 의료와 위생의 관점에서 역사와 사회를 돌아보는 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라 판단한다.

일반 독자에게 익숙치 않은 주제다보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대표적으로 질병을 오리엔탈리즘이 배어든 관점으로 바라보는 서구 학자들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서술하는 부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충분한 근거 없이 만성전염병의 발원지가 동양으로 추정되고 있는 학계의 실상을 전하고 이와 같은 오해와 편견을 막기 위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질병사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다수 만성전염병의 근원이 아시아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충격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서구 의료사학자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뿐 아니라 동·서양 방역대책의 차이나 근대 이후 꾸준히 발전해온 위생의료체제에 대한 서술 등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저자는 위생의료체제가 단순히 순수한 의학과 공익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제국주의국가의 식민지배에 이용된 측면에 주목해 논의를 진전시켜 나간다.

사스나 메르스 등 치명적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국가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하는 체계에 그 나름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위생의료체제는 의료보험제도와 같이 국가가 관장하는 의료체제의 양대 축을 이루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위해 필수적인 체계다. 이론적으론 너무도 당연한 개념이지만 실생활에서 위생의료체제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사와 경제사 위주로 서술된 주류 역사학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고픈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앨런 싱크먼, <미의 심리학>

미의 심리학 책 표지 ⓒ 책세상

아름다움의 시대다. 모두가 더 예뻐지기를 갈구한다.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강남 일대는 성형외과가 점령한 지 오래고 피부과나 치과도 각종 시술을 내세워가며 예뻐지고 싶은 이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거리에 자리한 화장품과 악세서리, 의류판매점은 세계적 불황에도 그 수가 줄어들 줄 모른다.

<미의 심리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기저에 어떤 심리적 요인이 있는지 파헤쳐 드러내려는 인문학 서적이다. 심리학 박사로 미국 뉴욕에서 상담소를 운영하는 엘런 싱크먼이 현대인의 심리 가운데 내재한 여러 가능성을 분석적으로 탐구했다. 때로는 신화와 동화에서, 때로는 자신과 동료의 상담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소개한다.

모두 13장으로 이뤄진 책은 저자가 신문, 잡지, 학술서적 등에 기고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하나의 일관된 주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매체에 소개된 칼럼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처럼 불규칙한데 아름다움이라는 키워드로 사람의 심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일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필요에 따라 정신분석학부터 진화심리학, 신경심리학, 신경미학 등 심리학에 인접한 최신학문을 넘나들며 아름다움 이면에 잠재한 사람들의 심리를 낱낱이 해부한다. 미술과 패션, 의사소통 등 논지와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대목도 일부 등장하지만 대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시도로 책 전반이 꾸려진다.

물론 정신분석 기법이 더는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이 시대에 이와 같은 책을 읽는 걸 무의미한 시도로 판단하는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특정 사례를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분석하려는 태도에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동화 <라푼젤>이나 신화 속 괴수 메두사를 끌어들여 머리카락과 성기 등에 대한 각종 상징해석을 시도하는 대목이 대표적으로 이 부분에 공감하는 독자는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평생을 정신분석에 몸바쳐 환자를 상담해온 일선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학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여전히 학계에서 지지받는 정신분석학적 심리상담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와 같은 틀에서 바라본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 한 책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제, 무시, 물화 / 사월의책 / 김원식 지음 / 2015. 08. / 17000원>
<질병의 사회사 / 살림 / 신규환 지음 / 2006. 09. / 3300원>
<미의 심리학 / 책세상 / 엘런 싱크먼 지음 / 2015. 03. / 17000원>

배제, 무시, 물화 -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김원식 지음,
사월의책, 2015


#배제, 무시, 물화 #질병의 사회사 #미의 심리학 #김성호의 독서만세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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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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