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
오마이뉴스
'페미니스트 남성'이라는 말이 내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폭력과 억압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난 적어도 30년, 흔하디흔한 한국 남자로 살아왔고, 여전히 내 안의 남성성들을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갈등하고 경합하는 나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난 점점 내 안의 남성성과 가부장성을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웠고 말을 아꼈다. 난 '한남'으로 분류되는 것도 두려웠고 '페미니스트 남성'으로 여겨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페미니즘은 어느새 내게 침묵해야 할 무언가로 변해있었다.
난 이와 같은 침묵이 나 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안의 가부장성에 대한 성찰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침묵을 낳는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정치적 올바름일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이 변화에 필요한 시간마저 속박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올바름일까?
나는 우리 모두가 과정적 존재이며, 다중적 존재이며, 변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남성과 한남, 두 가지 종족만이 존재한다는 접근과 이것에 대한 승인을 페미니스트 여성에게 구함으로써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하는 정치는 많은 진실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 남성의 이야기도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한 남성의 이야기도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되어 보려 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내 안의 가부장성과 만나고, 싸우고, 결별하는 과정과 만나지 못하고 부정하고 안도하는 과정 등 다양한 감정과 인식이 경합하는 과정에 살아가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은 내게 시시각각 다른 의미로 말을 건넨다. 어떨 땐 나를 지지해주는 충만함으로, 어떨 땐 죄책감으로, 어떨 땐 또 다른 무언가로. 나는 be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being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언제나 그것만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아닌가.
페미니즘은 내게 충만함이었다 2016년 여름, 지인의 제안으로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들었다. 100시간의 수업 동안 강의실 안을 흐르던 다양한 사실과 감정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되기도 했고 수업이 끝난 후 강의를 같이 듣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시간들은 내게 충만함 그 자체였다.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나누고 서로에게 귀 기울였던 그 시간들은 나를 페미니즘에 더욱 관심 갖게 했다. 내게 페미니즘은 나를 지지해주고 수용해주는 너무나도 따뜻한 충만함이었다.
동시에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분명한 계기였다. 어느 날 수업 도중 한 친구가 울면서 이야기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임신에 대한 공포로 두려운 시간을 마주하며 살아가는지 아십니까?!" 그 친구의 분노는 강의실 전체를 울렸고 둔탁한 떨림으로 내 가슴을 내리쳤다. 나는 나를 돌아보고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억을 따라가다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던 나의 경험들에 '폭력'이란 이름을 새로이 붙여주고 이를 내 삶에 통합시키는 건 생각보다 두려웠다. 기억은 따라갈수록 새로운 기억을 낳아 실핏줄같이 퍼져있는 수십 가지 경험들을 떠올리게 했다. 또렷해지는 만큼 무서웠다. 그렇게 마주한 기억들을 안고 어쭙잖은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가해자의 일방적인 사과는 내게 새로운 질문이 되어 돌아왔지만, 시간은 흘렀고 한참을 잊고 살았다.
나는 나 자신을 못내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못했지만 이를 반성하고 사과하려 했던 나에 대해 스스로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질렀던 더 많은 폭력과 억압의 기억들을 마주하자 이를 드러내는 일이 두려워졌다. 내가 저질렀던 이 많은 폭력들을 누군가 안다면?
끔찍하게 나쁜 사람으로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릴까 무서웠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덮여 내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사과하고자 했던 나와,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내가 경합했다. 내가 자랑스레 여겼던 진심은 기만적인 날 것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난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사과할 수 있었다. 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저질렀던 폭력들을 누가 알게 된다면... 두려웠다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경험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내게 충만함이었던 페미니즘은 죄책감이 되어갔다. 나는 점점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신나기보다 두려워졌다. '내 안의 가부장성과 그것이 낳은 수많은 폭력들을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나는 침묵했고, 관계를 멀리했다.
차라리 난 페미니스트 남성이 아니라 30년간 한남으로 살아오고 이제야 약간 바꿔보려는 사람이라고 털어놓는 게 편안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용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변화하고 있다'는 말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내 잘못들을 너그러이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반성하고 있고 변해가고 있다며.
그런데 정작 내가 무엇을 변화시켜가고 있다는 것일까. 나는 과거의 내가 남성중심적이었다고 인식하는 정도의 변화를 겪었을지언정, 정작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실천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실천한 것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지 않는 아들이었고 여성과의 관계 맺기에 대해 특별히 고민한 적 없는 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