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0. 5.28
연합뉴스
가면을 쓴 중국인
중국은 전란시대가 길고 평화 시대는 짧았다. 수천 년 동안 드넓은 중국 대륙은 늘 패권을 다투는 영웅호걸들이 나타나 세력을 다투는 각축장이 되었고, 전란이 그치는 날이 드물었다. 그런 탓에 중국인들은 여러 왕조가 일어나는 동안 그들이 일으키는 흙먼지와 발 발굽에 짓밟혀야 했다. 중국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시간을 버느라 행동은 굼떠졌고, 얼굴에는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는 민족성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어도 그들은 쉽사리 웃지 않고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감정을 억누르며 잘 표현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공개적으로 사랑을 표시하는 것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국인을 처음 대한 외국인들은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얼굴인지 잘 구분을 못한다. 어느 정도 중국인들과 친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외국인도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을 때, 아주 가면을 벗지 않는 중국인들의 진면목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국인들의 보호본능이다.
중용(中庸)에서는 희로애락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정신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희로애락이 일어났을 때의 상태를 '화(和)'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화'의 상태로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들은 늘 희로애락을 숨기고 억제하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은 꾸며 낸다. 이것은 노인에게나 젊은이에게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중국인들은 20세기 들어서도 외세의 침략과 국공내전을 겪었고,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후에도 수십만 명이 숙청을 당하는 문화대혁명이란 커다란 소용돌이를 겪어야했기에,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G2대열에 들어선 아직도 굳어 버린 표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에 가면은 웃고, 웃고 있을 때에는 가면은 울고 있는 듯이 보여질 때가 있다.
사이비(似而非)
맹자에게 어느 날 제자 만장이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향원(鄕原:지방의 토호)들은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비난하시는 것일까요?"
맹자가 대답했다.
"그들은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만한 구실이 없으나, 그들은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하는 무리들이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세속에 아첨하고 남에게 잘 보인다든지 자기만족을 하고 있는 설익은 족속일 뿐, 도저히 도(道)를 펼 만한 인물들이 아니다. 공자는 말씀하고 계시지 않느냐?
'나는 같고도 아닌 것(似而非者)을 미워한다.'
즉, 그들은 선량해 보이지만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자들이다. 그들은 오직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감복케 하고, 칭찬을 받으며, 자신도 만족한 삶을 누리는 것뿐 결코 성인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이들이야 말로 '덕의 적'이라 하고 그런 '세상의 사이비한 인간을 미워하신다. 말하거니와 돌피는 잡초에 불과하나 벼 포기와 비슷한 까닭으로 더욱 성가시다. 공자께서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함은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을 증오하는 까닭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 맹자, 진심장구하편 (盡心章句下篇)
공자는 겉만 번지레하고 속셈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싫어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
말재주가 교묘하고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비위를 맞추는 표정을 짓는 자들 중에는 성실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또 공자는 반대로 이렇게도 말했다.
"무뚝뚝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은 '인(仁)'에 가깝다.(剛毅木訥 近仁)"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仁:덕을 갖춘 군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인' 그 자체는 아니라고 공자는 말한다.
"문질빈빈한 연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文質彬彬 然後君子)"
즉, 형식과 실질적인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군자라는 뜻이다.
공자는 무엇보다도 말과 표정으로 사람을 속이는 교활함을 가장 미워했다. 교언은 입에 발린 말이나 알랑거리는 말, 영색은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꾸며서 웃는 얼굴빛을 말한다.
그런데 중국인들만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일까?
생존경쟁에 바쁜 현대인들은 누구나가 중국인들처럼 가면을 쓰고 산다. 현대인들은 자기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자신을 그럴 듯하게 보이려고 한다. 힘 있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는 복종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생존 방식이고 출세를 위한 처세술이라고 여기며 행동한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돌아다닌다. TV에서 유행하는 말투를 쓰고 그럴듯한 태도를 지어 보이면서 스타들의 표정이나 차림이 자기 것이나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한다. 그들은 몇몇 선택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말투와 행동이 미리 훈련받고 조작된 태도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그들을 흉내 냄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 자신의 영혼마저 잃어버린다.
이러한 상업주의 큰 폐단은 다른 사람의 인권은 물론이고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민주적 시민 사회나 합리적인 산업 사회 이상 미덕이 될 수 없게 된 낡고 퇴행적인 가치관이 되어간다.
"자네 저 친구 말을 신용해서는 안 되네. 교언영색 하는 무리니까 말야."
우리는 친구들 사이에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이것은 중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손창섭은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이기도 한 현대인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생이 숫제 연극인 걸요!"
"그럴까? 인생은 모두가 연극일까? 좀더 진실한 인생도 있지 않을까."
"그저 진실한 체해 보이는 거죠. 누구에게나 진실하게 보이리만큼 진실한 체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닐 거예요. 연기란 결국 거기까지 가야 되니까요."
"위선도 일종의 타락이 아닐까요? 선생님은 미술가이면서, 왜 공식적 사고방식을 못 버리셔요. 인간이 습성화된 위선의 가면을 벗지 못하는 한, 그 생활 자체가 도저히 멜로드라마 이상일 수 없는 거예요."
-소설 '설중행(雪中行)' 중에서
이처럼 인간들은 거짓 간판을 내걸고 명예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무엇을 얻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차라리 가면을 쓴 듯한 중국인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내 행동은 내 존재를 부분적으로 반영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 행동은 대부분의 경우 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내가 겉으로 드러내는 가면이다. 우리는 그 가면을 과감하게 벗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은 그 사람이며, 명성은 그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남에게 이기는 사람은 힘이 강한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굳센 사람이다. 죽어가면서 이것으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이 말처럼 현대인의 갈 길을 제대로 제시한 말은 없다.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려면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나는 해학이란 것을 하나의 가면으로 본다. 가면의 표면에는 구멍 있는 가면이 있다. 가식적인 웃음에서 진정한 웃음을 표하는가 하면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의 가면, 꿈을 꾸는 가면, 행복이나 후회, 사랑의 메시지를 주는 가면이 있다. 이러한 범주의 가면들은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가 없다. 해학이라는 가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해학은 알리바이가 있고 자기방어가 있고, 위장이 있고, 수줍음이 있다. 그것은 감동을 감추고 감동을 억제하는 밸브 역할을 한다.
- T.메이예르, <위트와 유머의 차이에 대해서>에서
이것은 가면으로서 가면을 벗는 방법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자가 덕행을 쌓을 때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모름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2500년 전에 공자가 꿰뚫어 본 일이 오늘날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대로 진리로 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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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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