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역 4거리의 말죽거리 표지석양재동 일대는 오래전에 말죽거리로 불렸다.
강대호
시흥군에서 영등포구로
1963년 1월 1일부로 한강 이남의 많은 지역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이때 서울이 되었는데 강남은 광주군 언주면이, 서초는 시흥군 신동면이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이 된 옛 경기도 땅에 구청의 출장소를 개설했다. 출장소는 본청과 멀리 떨어진 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본청 직할의 행정기관을 말한다. 지금의 강남구 지역에는 성동구 언주출장소가, 서초구 지역에는 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니까 강남은 성동구, 서초는 영등포구였다.
당시 자료들을 종합하면 경기도에서 서울이 된 지역들의 모든 행정 업무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관된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면사무소에서 보유한 재산은 물론 부채까지 서울시가 인수했는데 소속 공무원도 신분을 보장해 주었다. 경기도의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이 된 것이다.
경기도민에서 서울 시민으로 신분이 바뀐 주민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도민증' 대신 '시민증'이 발급되었다. 도민증은 한국전쟁 후부터 각 도의 규칙에 따라 도민에게 발급되었던 신분증명서를 말하고, 시민증은 서울특별시에서 발급했던 신분증명서를 말한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신분증인 주민등록증 발급은 1968년 주민등록번호 제도와 함께 시행되었다.
이외에도 농촌과 도시가 각기 다르게 적용하는 건축 규제와 농업 정책 때문에 혼란을 겪는 사실을 당시 신문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남땅은 예로부터 농촌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서울시 고위 공무원으로 도시개발 과정에 관여한 '손정목'은 회고록에서 강남의 1950년대와 60년대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강남의) 농업경작 형태가 벼농사 중심에서 소채재배 중심으로 변해갔다. 한국전쟁 후 (중략) 서울 시민의 채소 공급은 주로 강남 지역 일대에서 맡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 한강의 남북을 왕래한 나룻배는 채소 보따리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3권 본문 중
'말죽거리' 일대가 강남 농업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농지도 넓고 주민도 많아 뉴스에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기도 했다. 과거 기사들을 보면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죽거리를 언급하며 동 이름은 괄호 안에 넣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죽거리(영등포구 양재동)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