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 우선 도로도로를 달리다 보면 불쑥불쑥 소,양,말들이 끼어 들었다.
전병호
앞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 나라가 유목민의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재미있는 일을 고속도로에서 겪었다. 비슈케크에서 첫날밤을 묵고 이식쿨 호수 근처 유르트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라 하는데 톨게이트나 어떤 표식도 없이 황량한 벌판에 도로만 뻗어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원이라고 하기엔 황량한 넓은 벌판과 그 너머 수 없는 민둥산 모습들을 넋 놓고 보며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섰다. 분명 고속도로라고 했는데 난데없이 도로 한가운데 말과 양떼들이 걷고 있었다. 달리던 차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속도를 줄여 멈췄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마디로 이 나라는 차보다 양, 말들이 더 우선시 되는 우마우선 도로인 나라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녁뉴스에 나올 만한 상황으로 소방차나 경찰차 수십대가 출동했을 터인데 고속도로 위를 유유히 건너는 양떼들을 보니 딴 세상 같았다. 여행은 낯섦이 주는 떨림과 호기심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팍팍 꽂혔다.
그립다, 모든 시간들이...
짧은 여행이었지만 키르기스스탄은 처음 가본 러시아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이슬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유목민의 나라였다. 여행은 내가 알던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여행의 순간순간 모든 것들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겹게 보았던 민둥산들이며,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 같은 초원 같지 않은 초원, 여행객에게 불쑥 달려와 말타기를 권유하던 소년, 바다 같은 이식쿨 호수, 점심 먹으며 무심히 마셨던 아르빠 맥주, 그저 밀가루 맛만 나던 식은 레뾰쉬카빵, 오줌 한 방울도 돈을 내야 했던 지저분한 화장실, 비슈케크 거리에서 수제 목걸이를 팔던 소녀, 이제는 모두 추억이 돼 버린 모든 시간들이 그립다. 다시 한번 비슈케크 그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바에서 낮술을 하고 싶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