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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복수하고 싶었던 수학 선생님

평생 수학을 가르치던 사람이 색소폰을 연주하다

등록 2023.04.10 11:33수정 2023.04.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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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기억


코찔찔이 조무래기들이 옆 교실에서 풍금을 옮긴다. 다음 시간이 음악 시간이기 때문이다. 표면이 긁히고 벗겨진 허름한 풍금은 묘한 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신나게 발을 구르며 풍금으로 노래를 가르치셨다.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 음악에 대한 추억이다.

하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소리를 이웃집에서 들을 수 있었다. 사촌들이 살고 있는 윗집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기타라고 하는 악기, 길게 이어진 철사 줄을 튕기면 묘한 소리가 났다. 먹고 살기 힘겨웠던 우리 집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중학교엔 브라스밴드라는 것이 있었다.

엄청난 큰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에 기가 질렸다. 둥그런 수자폰이 있었고, 발악하는 듯한 심벌즈 소리에 이런 악기도 있음을 알았다.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안 것으로 만족하던 시절, 어설픈 노래 두어 마디로 받은 실기 점수야 뻔하지 않겠는가?

늘 시원치 않은 음악 점수는 필기시험으로 복수를 했다. 음악시간마다 출제되는 갖가지 악상기호 및 음악용어를 모조리 외웠다. 음악 교과서를 외우고, 음악에 필요한 용어를 무조건 외워 복수를 했다. 실기점수에 대한 만회를 필기시험으로 조금은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에 대한 기억은 밴드부와 노래 몇 소절로 시험을 봤던 기억이 전부다.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여기쯤 부르면, '그만~'이라는 소리와 함께 음악시험은 종료되었다. 음악 점수가 좋을 리 없던 음치에 박치의 소유자, 언제나 음악에 대한 복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에 관해 지식이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다.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음악에 많은 관심이 있던 친구들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만들었던 기억들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통기타를 구경할 수 있었으니, 이웃사촌들이 가지고 놀던 기억 속 악기를 대학 시절에야 알게 된 것이다. 음악, 어떻게 복수를 할까?

음악에 복수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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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하 연주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사람, 어렵게 색소폰을 배웠다. 동호회원들과 연말 연주회를 하고 때론 결혼 축가를 연주한다. 은퇴후의 삶에 재미를 주는 음악, 무모한 도전이 안겨준 선물이다. ⓒ 박희종

 
기어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피아노 연주였다. 비 오는 오후, 이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일층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희끗한 미술교사의 피아노 소리였다. 이선희의 'j에게'. 봄비 내리는 오후, 피아노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야,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맛과 멋을 주는구나! 언젠가는 해 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세월은 또, 흘러갔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언제나 바쁘게 살던 시절, 왜 그렇게도 고3 담임은 맡겨지던가? 

레슨을 받을 시간이 없어 아내가 레슨을 받고, 아내에게 배우기로 했다. 강사를 초빙해 아내를 통해 배우려 한 피아노는 배움에 한계가 있었다. 쉽지 않은 피아노를 접고 또, 세월이 흘러갔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누구도 관심이 없던 시절, 거금 100만 원을 투자해 알토 색소폰을 구입했다. 모두가 무슨 짓이냐는 반응이었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조합,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색소폰 연주를 한다고 한다. 기어이 악기를 배우고 색소폰 연주를 꿈꾸게 된 것이다. 처절한 고3 담임은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늦게까지 가르쳐야 하는 고3 담임, 오랫동안 발목을 잡았다. 왜 그렇게 고3담임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했을까? 도저히 그냥 지날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거금 100만 원이 아까워 레슨을 받으며 연습을 시작했다. 어디서 연습을 할까?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은 노래방을 임대하는 것이었다. 노래방 한 칸을 사용하며 손님이 찾으면 언제라도 비워준다는 조건이었다. 틈만 나면 노래방으로 갔고 그것도 어려우면 강가로 나섰다. 강가에서 연습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의 항의, 쉬러 나온 사람들이 어설픈 색소폰 소리에 화를 내는 것이다. 쉴 수 없으니 조용히 하라는 항의다.

최종적으로 찾아간 곳이 색소폰 동호회였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회원들과 어울려 연습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어둑한 지하실서 수없이 연습을 한다. 서서히 자리가 잡히면서 쉬는 날 없이 드나들었다. 회원들과 합주와 독주 연습을 병행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자리를 잡은 후, 연말 연주회를 해 보기로 했다. 

순수한 아마추어가 하는 연주회, 연주 공간을 빌려 음악회를 열었다. 가족과 친지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연말 음악회를 많은 가족, 친지 앞에서 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한을 풀어내고 싶었다. 회원이나 친지들의 결혼식 축하연주도 병행했다.

아들과 딸의 결혼식에 축하연주는 아직도 최고의 이야깃거리다. 음악을 알지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색소폰을 들고 나섰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 소리가 날까 의심했단다. 거뜬하게 연주를 하고 나서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지금도 결혼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 운영은 힘겹기도 하다.

은퇴 후 삶의 흥겨운 놀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해 모였다. 회비를 내고 연습실을 임대해 일 년 동안 연습을 한다.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 모두의 사랑방과 같다. 시간 있으면 나오고, 지나는 길에도 찾는다. 가끔 소줏잔이라도 나누는 날이면 언제나 연주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내가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를 해보겠느냐는 자랑이다.

생각도 못한 연주회를 하고, 색소폰 경연대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여름이면 악기를 들고 야유회를 나선다. 야유회장이 음악회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운영된 음악실의 경력이 무려 15년이 되고 있다. 15년,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세월이 반이 지나갔다.

아직도 연주회는 계속되고 있다. 음악실엔 저녁마다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잔 술에 얼큰한 길손이 들어선다. 저음의 색소폰 소리에 이끌려 찾은 것이다. 배우고 싶었지만 멀쩡한 정신이 돌아오면 망설인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이 쉬울 리 있을까? 음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 감히 접근하지 못할 분야에 체면을 무릅쓰고 도전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텔레비전 채널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하다 설명한다. 훗날 외로움을 달래줄 소중한 재산이라고. 은퇴 후의 삶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람의 경험 이야기다. 어쩔 줄 모르던 시간을 멋지게 보내고 있다고. 어설픈 색소폰 연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늙어 가는 청춘은 뿌듯해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면서 삶의 모습은 다양해졌다. 동호회원들과 합주를 하고 연말 연주회를 한다. 회원이나 가족의 결혼 축하연주를 한다. 지금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색소폰 연주, 은퇴후의 삶에 큰 밑천이 되고 있다.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하고 싶었던 도전, 음악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나이들 줄 몰랐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는 색소폰과 어우러지는 삶의 이야기다.
#음악 #색소폰 연주 #은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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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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