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유족의 요청을 받은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희생자인 미국인 청년 2명의 사진과 국화꽃을 놓았다. 한국에 오지 못한 유족과 지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우성
정임씨는 기록 활동가다. 과거 노동 전문 잡지에서 일하며, 주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런 작업을 통해 정임씨가 깨달은 게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이다. 그러니까,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게 우리 일상인데, 참사는 누군가의 일상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더군다나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임씨는 그날을 더욱 죄스럽게 기억한다.
"세월호 때는 제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배가 부른 상태로 안산에 가서 추모 정도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컸음에도, 이 참사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더라고요. 녹사평역 쪽 분향소에 가서 슬퍼하고 그랬는데, 그냥 그때 힘들고 괴로워하는 마음만 잠깐 가졌을 뿐이라는 데 미안함이 있어요.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기성세대가 비슷한 무력감을 가질 거예요. 기록으로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집회 현장을 다녀 본 정임씨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그만한 위험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날의 슬픔을 어찌해야 할까. 참사 이후 현장 골목에는 샴페인과 와인 등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앞치마를 두른 채 담배를 태우는 한 상인의 모습이 정임씨 눈에 밟혔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정임씨는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만난 기록단에 저절로 애정이 갔다. 대부분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신청한 지역 주민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SNS에서 기록단 모집 공지를 봤을 때는 저처럼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지역에 살면서 참사를 겪고 느낀 답답함, 트라우마, 괴로움을 공유할 사람들이 모인 거잖아요. 다들 이런 계기를 원했던 거겠죠. 어쩌면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풀어낼…"
우리는 당사자를 좁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 유가족을 인터뷰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정임씨는 지역 주민을 만났다. 그렇게 모두가 참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점점 실감했다. 그 현장에 없었거나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누구든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을 수 있다고.
"우리는 당사자를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가족뿐만 아니라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근처에서 춤추고 있던 사람들도 트라우마를 겪을 거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멋모르고 즐기고 있었다는 데 죄책감도 느낄 거고요. 그리고 멀리서 접한 사람들 역시 잠자고 있었거나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냈을 텐데, 그 미안함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도 당사자다. 때문에 유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당사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일까. 이미 많은 인터뷰를 했던 정임씨에게도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인터뷰 도중 민희씨의 손이 벌벌 떨리자 정임씨는 생각했다. '아, 조금 더 긴장하고 왔어야 했구나.' 결국 참사는 현장에서 다치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문제였다.
"인터뷰이분들이 다 너무 빨리 잊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누군가의 기억에 이 참사가 계속 남아 있다는 거, 아직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 지역이 다시금 살아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걸 드러내는 게 기록단 활동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
한편, 정임씨는 기록단 활동을 통해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새로 배웠다. 물론 정임씨 또한 과거 용산에 5년 정도 거주했지만, 이태원에 가 볼 기회가 없었을 뿐더러 이전까지는 참사 그 자체에만 주목했다. 그런데 민희씨가 전한 이태원의 일상, 핼러윈의 풍경에는 다름이 공존하는 이태원의 특별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임씨가 민희씨의 남편 원기씨를 인터뷰이로 추가 섭외한 까닭도 이태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이 지역을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를 깨달았어요. 원기씨는 자기 추억이 사라질 것 같아서 두렵다고 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 공간이 다시 보여요.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흔히 말하는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살고 있는 곳, 누군가 추억으로 삼고 애정을 품는 곳이구나."
덕분에 정임씨는 민희씨와 원기씨 두 사람을 만나고도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 속에 지역 주민들이 느끼고 있을 생각과 감정이 살아있으므로. 다만, 보다 높은 연령층의 이야기는 또 어떨지 궁금했다. 같은 지역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간직할 게 분명했으니.
유가족의 마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지난 주말에 광주에 북토크를 하러 가서, 기록단 활동에 대해 말했거든요. 그러면서 참사로 몇 분이 돌아가셨는지 아시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몰랐어요. 159명이란 걸. 그런데 원기씨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시잖아요. 158명에 한 분 더 돌아가셔서 159명이라고. 그리고 그 중 한 명이라도 얼굴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고요."
정임씨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이 독자들에게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떠났으니까, 그 순간은 상실감을 크게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자신과 같은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니까."
정임씨는 우리 사회에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마다 자기 살기 바쁘지만, 나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어쩌면 기록단 활동이야말로 정임씨에게 다른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올해 핼러윈은 없을 것 같았는데, 없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요. 작년에는 초등학생 딸이 학원에서 핼러윈 파티한다고 마녀 옷 이런 거 다 샀거든요. 그렇게 나의 아이만 생각하다가, 이제 나의 아이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아니니까 한 번 가보고 싶어요."
- 인터뷰어 : 이상민 / 인터뷰이 : 김혜영,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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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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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이란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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